텃밭에 방아 두 포기를 심었다. 작년엔 세 포기를 심었더니 양이 많았다. 한 포기만 해도 우리 두 식구 된장찌개나 부추전에 넣을 양으로 충분하지만, 왠지 불안했다. 병충해나 가뭄으로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아는 다년생 식물이다. 밭이 넓다면 그대로 두어 작년에 심었던 방아의 씨앗이 자연발아 했을 테지만 새로 모종을 심었다. 워낙에 손바닥만 한 텃밭이라 계절 작물을 심기 위해선 철마다 밭을 다시 갈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을무와 배추를 심을 무렵이면 아쉽지만 제 할 일을 다한 방아를 흙으로 돌려보낸다. 잎으로 밥상에 향기를 얹어주던 방아는 보라색 꽃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고한다.
방아와의 첫 만남
칠 년 전 여름. 통도사 근처 식당으로 홍합톳밥을 먹으러 갔다. 연근, 꽈리고추 무침, 취나물 등 밑반찬이 담백하고 정갈해서 마음에 들었다. 향긋한 홍합톳밥과 된장찌개가 나왔다. 된장찌개 먼저 한입 떠먹는 순간 '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향이 평소 내가 끓이거나 식당에서 흔히 맛보는 찌개 맛이 아니었다. 독특한 향이, 거부감이 아니라 깊고 그윽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사장님께 물었더니 방아향이라고 했다. '방아를 넣었는데 이런 맛이 난다고?' 방아를 넣은 된장찌개는 처음이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방아가 흔한 식물이다. 주택 담벼락 밑이나 텃밭 귀퉁이에서 심심찮게 얼굴을 내민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추어탕이나 매운탕은 대부분 생 방아잎을 얹어 준다. 나는 집에서 부추전을 구울 때 방아잎을 듬뿍 넣는다. 알싸한 청양고추의 맛과 방아의 톡 쏘는 듯한 향이 어우러져 부추만 넣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혀가 춤추는 맛이 된다.
장어구이를 먹을 때 쌈으로 먹거나 초고추장에 방아잎을 잘게 썰어 넣어 먹어도 맛이 풍부해진다. 하지만 방아잎을 넣은 된장찌개는 기억에 없었다. 맛의 신세계. 그저 그런 밋밋한 된장찌개가 방아잎의 풍미가 더해져 프리미엄급으로 승격된 느낌이랄까. 그 이후로 된장찌개에 종종 방아를 넣고 끓인다. 특히 방아가 제철인 요즘은 향만 내는 게 아니라 한 줌 가득 넣어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방아의 정식 이름은 '배초향'이다. 밀칠 '排'(배), 풀 '草'(초). 향기 '香'(향) 자로 좋지 않은 냄새를 향기로 밀어낸다는 뜻이다. 남부지방에서는 방아, 방아잎이라 부르고 한약재로 쓰이는 말린 잎은 곽향이라 부른다. 서양에서 발간된 '허브 백과'에는
배초향이 '코리언 허브'(Korean HERB)라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깻잎과 비슷하나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으로 깻잎에 비해 잎의 폭이 좁고 크기도 작다. 잎의 윗면은 녹색, 뒷면은 연녹색에 잔털이 나 있다.
방아잎은 옛날부터 소화, 구토, 복통 등에 효능이 있어 약초로 많이 사용되었다. 방아를 연명초(延命草)라고도 부른단다. 옛날에 길을 지나던 어느 고승이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환자를 발견했다. 고승은 방아풀을 뜯어 와서 환자에게 먹여 목숨을 구했는데, 그 이후로 방아풀이 연명초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야생화백과사전- 임종헌의 야생화 이야기).
가성비가 높은 방아는 흔하게 구할 수 있고 값도 싸지만 그에 반해 약효는 높고 쓰임새가 다양하다. 혈관건강, 항균작용, 복통 등에 효과가 높고 차로 마실 수도 있다. 매운탕, 추어탕에 넣는 향신채로 주로 쓰이는데 방아잎이 잡내와 비린내를 잡아주는 데는 그만이다.
전이나 된장찌개에는 부재료로 사용되지만, 방아잎 나물이나 장아찌를 담글 수 있어 요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생명력이 강하고 웬만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병충해도 거의 없어 누구나 쉽게 재배할 수 있다. 요즘은 겨울철에도 하우스재배를 하여 마트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장아찌로 만들어도 기가 막히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 마당으로 나갔다. 비바람에 고추가지가 부러졌고 상춧대도 쓰러졌다. 상추는 꽃이 피고 있어 쓴맛이 난다. 끝물이다. 방아는 엊그제 뜯었는데도 그새 무성해졌다. 된장찌개에 넣는 것도 정도껏이고 날마다 전을 부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두 포기만 해도 남는다. 무성한 잎을 보니 아까웠다. 내 손으로 가꾼 것은 작은 것 하나도 버리기 쉽지 않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를 담가보기로 했다. 보드라운 새순을 뚝뚝 끊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후 그릇에 담았다. 양파 반 개와 홍고추 2개 넣고 간장 1, 식초 1, 물 1, 설탕 1, 소주 0.5의 절임물을 부었다.
요즘은 끓여서 붓지 않고 대신 소주를 넣어 변하지 않도록 한다. 하루 지나 먹어보니 회심의 미소가 절로 나왔다. 짭조름하면서 새콤달콤한 장아찌 특유의 맛에 그윽한 향이 더해지니 여태껏 내가 담가 본 장아찌 중에 단연코 최고였다.
모처럼 야외테이블에 저녁식사를 차렸다. 오후까지 비가 내리더니 날씨도 도왔다. 흐린 날씨라 해는 가려주고 바람은 선선했다. 남편과 둘이 있을 땐 귀찮아서 숯불을 피우지 않지만 오랜만에 온 아들을 위해 기분을 내본다.
큰 접시에 고기와 어울리는 장아찌를 종류별로 담았다. 명이, 취나물, 양파, 고추, 그리고 엊그제 담은 방아까지. 아들에게 골고루 먹어보고 재료를 맞혀보라 했더니 재미없게 입에 넣자마자 방아를 맞췄다. 짙은 향도 장아찌물에 묻어갈 순 없나 보다.
방아장아찌는 단연 엄지 척이었다. 만장일치로 우리 집 장아찌의 왕좌를 차지했다. 이 정도의 인기면 한 통 더 담가야 될 것 같다. 한 입 맛보고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 있으면 귀한 것이라도 되는 양, 못 이기기는 척 생색내며 덜어 주어야겠다.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해외여행이나 국내 동남아 음식점이 늘어나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인 것 같다. 고수도 방아 못지않게 향이 강한 식물이다. 고수는 잘 알면서 우리나라 향신채인 방아를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많은 것 같아 아쉽다.
방아는 된장찌개에 넣으면 색다른 맛으로 즐길 수 있고, 나물로도 먹을 수 있다. 부추와 함께 전을 부쳐도 맛있는 방아. 고기와도 어울리고 밑반찬으로 만들어도 좋다.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먹어 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방아에도 적용될 것 같다. 기회가 닿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방아의 매력에 풍덩 빠져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