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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부산 다대포 불꽃축제에 다녀왔다. 해운대가 아닌 다대포해수욕장에서 하는 최초의 불꽃놀이라 그런지 축제장은 순식간에 인파로 가득찼다. 차가운 바다에 발을 담그고 가족과 함께 본 화려한 불꽃의 향연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불꽃쇼가 끝난 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순간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사람들이 멈췄다. 나가는 길은 하나뿐인데 유동이 많다 보니 병목현상이 심했다. 끝없이 펼쳐진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뜨거웠던 불꽃의 감동이 구멍 난 풍선처럼 푸쉬쉬 빠져나갔다.

'만약 1cm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밀집해 있는 와중에 칼부림 사고라도 난다면?' 

대로변과 해수욕장 곳곳에서 도로통제를 하는 경찰들을 보면서 불현듯 불안함이 엄습했다. 불꽃놀이가 진행된 당일, 개인 SNS에 '8월 6일에 부산 서면에서 칼부림할 예정'과 같은 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왔던 것.
 
 ‘오리역 부근에서 칼부림을 하겠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경찰도 죽이겠다’는 범죄 예고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가운데,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오리역 구내에서 방패, 삼단봉, 방검복 등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오리역 부근에서 칼부림을 하겠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경찰도 죽이겠다’는 범죄 예고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가운데,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오리역 구내에서 방패, 삼단봉, 방검복 등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 권우성
 
하나의 유행처럼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살인 예고글들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마음 한편에 불편하게 부유하고 있었다.

너도나도 각자도생 외치는 사회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는 '남들에게는 괴물로 보이는 두 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또래 아이들은 정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윤재와 곤이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윤재와 곤이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의 존재감을 지워나갔다. 교실에서 그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의 표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몬드> 책 표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의 표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몬드> 책 표지. ⓒ 창비
 
사랑과 기쁨, 슬픔 등 감정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남에게 공감하지도, 제대로 대화를 하지도 못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곤이는 외롭고 두려운 마음을 남을 향한 적대감과 폭력으로 표출했다. 단정짓기는 어렵겠지만, 책을 읽으며 윤재와 곤이를 상징하는 단어들(사이코패스, 불우한 성장환경, 혐오, 폭력)이 뒤섞여 작금의 '칼부림 사건'이라는 현실로 재탄생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회는 흉측하고 잔인한 사고들에 대해 '각자도생, 처벌강화'의 원칙으로 대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음주운전, 살인, 강간 같은 강력범죄에 대한 국가의 처벌이 선진국에 비해 약하다는 것에 나 또한 공감한다. 피해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이 고작 몇 년의 징역형으로 재단되는 것 같은 뉴스들을 볼 때면 분노와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놓고 볼 때 처벌을 무조건 강화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기로 작정할 정도로 삶이 무너진 사람이, 법이 더 강화된다고 해서 (남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돌이킬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아서다. 법과 제도의 개선과 동시에 스스로도, 다른 사람에게도 '살인의 충동'을 느끼지 않게 하는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언제고 될 수 있다, 피해자도 괴물도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책 <아몬드> 245쪽)

<아몬드>에서는 수학여행에서 발생한 현금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곤이가 지목되었고, 곤이의 아버지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곤이에게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분실된 돈에 대한 조치를 해버린다. 최소한의 관심과 애정조차 없이 점점 극단적인 괴물이 되어가는 곤이. 그런 곤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곤이의 가족이 아닌 '또 다른 괴물'로 드러나는 윤재였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것처럼 보이는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가 마음의 거리까지 가까운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에게 버려지고,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당하며, 때로는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역으로 자식이 부모를 해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의 목숨이 무가치한 세상, 최소한의 도덕과 윤리,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언제든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괴물'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바빠요.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정말 무관심해요. 누가 힘들든 말든, 죽든 말든. 자기 마음이 편하면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은유 작가,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  203쪽).

<있지만 없는 아이들> 책의 부제는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다. 실제 존재하지만 국가에 공식 등록이 되지 않아 '없는 사람'인 이들처럼, 우리도 생각해보면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불의의 사고와 재난으로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그럴 리 없다 믿으며 이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을뿐더러 관련된 소식조차 불편하게 여기곤 한다. 극한 시대에 강요되는 각자도생은 인간다운 삶이 아닌 분열과 소외, 냉담과 혐오로 이어진다.    
 
 사람을 향한 작은 관심이 병든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을 향한 작은 관심이 병든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 픽셀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아이가 온전히 자라기 위해서는 가정과 사회, 지역과 국가 전체가 필요하다. 공동체끼리 건강하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태어난 이상 사람은 누구나 사랑과 존중을 받아 마땅한 존재임에도 누군가는 오늘도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듯한 이들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돈과 자본이 아닌 작은 관심이 아닐까.
     
다른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공감과 연대가 모여 확실한 실체를 갖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은 아마 단시간에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 '사람'으로 존재하는 삶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괴물#사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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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래를 좋아하고 국밥과 칼국수를 사랑합니다. 가끔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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