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개심사로 배롱나무를 볼 겸, 지난 14일 여행을 다녀왔다. 이 곳에 가니 한여름 노을처럼 붉은색을 띠고 있는 배롱꽃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무수히 피어 있었고 슬며시 부는 바람이 바로 아래 연못으로 꽃송이를 담아 옮기고 있었다.
연못 위에는 길지 않은 외나무다리가 걸쳐져 있어, 사람들이 건너 다니길 반복하며 꽃잎이 떨어지는 것도 보고 금붕어가 헤엄치는 모습도 볼 수 있게 돼 있었다. 작은 어리연은 연못에 있는 듯 없는 듯 간간히 모습을 보이며 한적한 산속에 비치는 작은 별처럼 노랗게 반짝였다.
내가 찾은 곳은 충남 서산 개심사. 개심사는 충남의 4대 사찰 중의 하나로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해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겹벚꽃과 청벚꽃으로 유명한 곳인데 한 그루 있는 배롱나무가 다른 곳의 배롱나무보다 훨씬 붉고 연못을 끼고 있어 더 운치 있다.
약 2m가 안 되는 높이의 배롱나무가 옆으로 넓게 펼쳐져 있어 바닥에도 꽃송이들이 떨어져 있었는데 흘러내리는 꽃송이는 모래시계처럼 시간을 떨어뜨리고 있는 듯했다. 작열하던 태양이 식어가고, 이 여름도 점차 흘러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사찰과 배롱나무
이 곳은 충청도 이남으로, 따뜻한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어 배롱나무가 잘 자란다. 화려한 붉은색의 나무가 왠지 서원과 사찰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많이 심어져 있는 이유는 배롱나무 줄기가 계속해서 껍질을 벗는 것처럼 속세의 때를 벗어버리고 수도와 학문에 증진하라는 뜻이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도 이 뜻을, 배롱나무처럼 '날이 갈수록 새롭게 발전하라'는(일신우일신)' 동기부여의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나무 사이에 작은 포도송이처럼 빨갛게 열린 배롱나무는 백일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고 해서 백일홍나무로도 불리며 7월에서 9월까지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배롱나무는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해서 간지럼나무라고 부르기도 하여 간지럼을 태워 보았는데 나무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내 손끝이 더 간지러워졌다.
약재로도 쓰이던 배롱나무
충청도를 지나다 보면 농가 주택 곳곳에도 배롱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이는 예전에 약재로 쓰였기 때문이다.
배롱꽃을 햇볕에 말려 사용하면 지혈과 소종의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고 월경과다, 산후에 출혈이 멎지 않는 증세나 대하증, 설사, 장염 등에 사용하고 외상으로 인한 출혈이 있을 때 지혈약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보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도종환 시 '배롱나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