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한 군인이 사망했다. 유족은 고인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드러난 전말은 충격적이었다. 생전에 강제추행 피해 사실에 대해 군사경찰에 신고하고 처벌 의사를 밝혔지만 상급자인 가해자의 협박과 또 다른 상급자들의 사건 축소·은폐 회유 시도가 계속되었다.
사건을 수사한 군사경찰은 핵심 증거도 수집하지 않아 피해자가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전출한 부대에서의 2차 가해 등 계속되는 압박에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군사경찰은 강제추행, 2차 가해 부분을 삭제하고 단순 변사로 축소 보고했다. 군은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를 시도했다. 공군에 대한 비난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모해도 서슴지 않았다. 사망한 군인은 이예람 중사다.
2023년 7월, 한 군인이 사망했다. 유족은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싸냐'고 물었다. 대통령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온 국민에게 약속했다. 군사경찰은 '지휘관들이 안전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고, 사단장의 지시 사항 등으로 예하 지휘관이 지휘 부담을 느껴 안전 장구를 휴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허리 아래 입수를 지시해 임무수행 중 사망'했다며, 임성근 사단장 포함 8명의 지휘관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군사경찰은 경찰 이첩 계획을 포함한 수사 결과를 국방부 장관에게 결재받았다.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던 군의 사건 처리 과정에 제동이 걸린 것은 상급자로부터 "사단장은 빼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수사단장이 외압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였다. 사망한 군인은 채 상병이다.
두 사건은 연결되어 있다. 이예람 중사 사건은 사건 축소, 은폐에 도가 튼 군을 상대로 한 유족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전 국민이 경악했고, 국회는 군사법원법을 개정해 미흡하게나마 군 사법체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군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민간 수사 기관과 법원에 맡겨 '군대는 원래 그래(불합리한 제도)'와 '그게 군대야(법보다 상관의 명령이 우선)'로 설명되는 군의 부조리를 끊겠다는 취지였다. 반면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은 새로운 군 사법체계가 작동하는 과정에도 '그게 군대야'라는 부조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채 상병의 순직 사건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7월 30일 국방부 장관에게 결과 보고, 7월 31일 언론 브리핑과 국회 국방위원 대면 설명, 8월 2일 경찰 이첩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했다. 일정에 차질이 생겼던 것은 7월 31일 2시에 예정된 언론 브리핑과 국회 국방위원 대면 설명이 불과 한 시간 전에 취소되면서부터였다. 해병대는 조사 보완을 이유로, 국방부는 수사 관할권이 없는 해병대의 언론 브리핑은 경찰의 수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수사 가이드라인이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해병대와 국방부의 답변이 엇갈렸다.
이후 수사를 맡았던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집단 항명 수괴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입건되고, 박 대령이 이에 대해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수사 외압'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던 해병대 사단장은 돌연 '사퇴는 아니다'라며 언론 지면에서 사라지고, 진상을 밝히려던 해병대 수사단장은 보직 해임되고 징계위에 회부됐다. '사단장의 무리한 지시로 비롯된 사망 사건'이, '수사단장의 항명 사건'으로 순식간에 뒤바뀐 순간이었다.
국방부와 박정훈 대령의 주장에서 확인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7월 30일 박정훈 대령이 이종섭 장관에게 경찰 이첩 예정 일정을 포함한 수사 결과를 문서로 보고해 결재받았고, 2) 같은 날 국가안보실에 수사 결과에 대한 언론 브리핑 자료가 공유됐으며, 3) 박정훈 대령은 8월 2일 경찰에 사건을 이첩했고, 4) 이후 군검찰단이 갑자기 박 대령을 집단항명 수괴죄 혐의로 입건하고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수사 결과 보고서를 회수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네 가지 사실이 이루어진 과정에서 벌어진 네 가지 의혹이다.
[의혹 1] 장관은 왜 뒤늦게 이첩 보류를 지시했나
국방부는 이종섭 장관이 수사 결과를 결재한 후 법무관리관에게 법리 검토 의견을 보고받았고 이를 수렴해 이첩 보류를 명령했다고 주장한다. 박정훈 대령은 장관 결재 후 그리고 브리핑 자료가 안보실에 전달된 이후 유재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사단장은 빼라, 혐의를 빼라'는 등의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피의 사실을 포함할 경우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법리 검토 의견을 전달했을 뿐 외압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군사법원법 개정 후 장관 보고를 거쳐 민간 이첩된 수사 결과 보고서 6건 중 혐의를 제외한 경우는 한 건도 없다. 경북경찰청도 해병대 수사단에 이첩 시 혐의를 포함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국방부에 의하면 법무관리관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기록 국방부 보고 당시 배석하지 않았다. 즉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경찰의 사전 협조 요청 사항도 몰랐고, 장관 결재본 보고서도 보지 못한 채 전해 들은 내용만으로 법리 검토를 했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이종섭 장관은 최초 수사 결과를 보고받았을 때는 별다른 이견 없이 결재했지만, 공교롭게도 언론 브리핑 자료가 국가안보실에 보고된 다음 날 뒤늦게 '법리 검토 의견을 받아'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게다가 그 법리 검토는 정작 장관 결재본 보고서조차 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과연 법리 검토가 이첩 보류의 진짜 이유였을까?
[의혹 2] 진짜 '윗선'은 어디일까
7월 30일과 7월 31일은 이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날짜다. 장관이 결재했던 7월 30일 오후, 박정훈 대령은 국가안보실에 파견된 해병대 대령으로부터 '안보실장이 보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수사보고서 장관 결재본 전달을 요청받았지만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해병대 정책실장,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안보실의 요구를 반복해 받자 보고서 대신 언론 브리핑 자료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박정훈 대령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사단장 빼라'는 등의 외압을 받았고, 이 때문에 7월 31일 오후, 8월 1일 오전, 오후, 저녁에 해병대 사령관과 함께 이른바 대책회의를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대책회의에서 박정훈 대령은 국방부의 지시대로 이첩을 보류하거나 수정·축소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고, 특히 해병대 사령관이 경찰 이첩 중지를 지시한다면 그 자체로 직권남용이 될 소지가 있음을 우려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원칙대로 사건을 이첩하겠다는 박정훈 대령의 의사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막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찰 이첩 당일인 8월 2일 오전 10시 51분경, 김계환 사령관은 박정훈 대령에게 전화해 "당장 인계를 멈추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국방부의 지시에도 이첩 당일까지 부하를 만류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하기도 했던 김계환 사령관이 막판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면, 이는 국방부 장관보다도 더 윗선의 지시가 있지 않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행보다. 언론 브리핑 자료를 통해 수사 결과 보고서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국가안보실은 과연 이 과정에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의혹 3] 이첩 보류 지시는 정당한가
8월 2일, 경북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한 박정훈 대령은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라는 "정당한 지시"를 거부했다며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군검찰에 입건되었다. 항명 또는 집단항명 혐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상관의 지시가 정당했는지, 지시할 권한이 있는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첩 보류 명령은 외압 의혹의 규명 여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도 부당하다. 관련 법령은 군인이 사망한 사건을 민간 수사기관에 '지체 없이' 이첩하도록 되어있지, 장관의 허가 권한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 제 7조 1항).
만약 국방부 장관에게 수사 결과에 대해 이첩 보류를 명령할 권한이 있다면, 장관이 군인 사망 사건을 경찰에 언제 이첩할 것인지도 결정할 수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 '언제'는 오늘이 될 수도 내일이 될 수도 혹은 장관의 재임 기간이 끝날 때가 될 수도 있다. 군사법원법과 시행령에 규정된 것은 수사의 독립성과 이첩의 신속성이지 국방부 장관의 권한이 아니다.
[의혹 4] 경찰은 대체 왜
또 다른 의문도 있다.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수사보고서 사본을 군검찰이 돌려달라 요구했고, 경북경찰청은 순순히 돌려줬다는 점이다. 군검찰이 수사한 사건이 아닌데 군검찰이 나선 것도 그렇지만, 법령상 한번 민간에 이첩한 사건을 다시 돌려받을 절차도 없고 경찰이 이미 접수한 사건을 반환할 의무도 없다.
군사법원법과 관련 시행령에는 사건의 민간 이송(이첩) 절차만 있을 뿐 '반환과 회수'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군검찰은 사건 회수 근거를 명백히 밝히지 않다가 박정훈 대령의 항명(집단항명 수괴에서 변경) 혐의 증거물이라고 입장을 바꾸고, 경북경찰청은 상호협력 규정에 따라 요청에 응한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군검찰이 수사하는 항명 사건과 경북경찰청이 수사할 예정이었던 사망 사건은 명백히 다른 사건이다.
군검찰과 경북경찰청의 '사건기록 인계인수증' 어디에도 증거물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사건기록 인계인수증'에 따르면 사건을 인계한 기관은 해병대 제1광역수사대이지 군검찰이 아닌데도, 경북경찰청은 사건에 관한 권한이 없는 군검찰에 기록을 인계했다. 즉, 경북경찰청은 자격도 없는 제3의 기관에 법적 근거도 없이 사건 기록을 '무단 반출'한 셈이다. 법치주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원래 그렇지 않은' 군대는 가능할까
채 상병의 유족은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원인 규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지만, 군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는 또다시 무너졌다. 국가안보실, 국방부 장관, 참모, 군 수사기관과 경찰까지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치부하기엔 선을 넘었다.
'그게 군대야'라는 강력한 부조리의 벽을 새삼 확인한 이상 방법은 하나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지난 8월 16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의 요구로 개회되었던 국회 국방위 회의는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의 불참으로 파행되었다. 8월 21일 오전에는 국회 법사위, 오후에는 국회 국방위의 긴급 현안 질의가 예정되어 있다.
추가로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등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한다. 누구라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수사외압 사건의 진상 규명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채 상병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오유진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