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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암 이종일 선생
묵암 이종일 선생 ⓒ 묵암 이종일 선생 기념사업회
 
이종일이 국치의 통한을 안고 동학의 후신 천도교에 입신한 것은 현명한 처신이었다. 무엇보다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 것이다. 일제는 대한제국 시대의 모든 단체를 해체시켰다. 심지어 일급 매국단체 일진회는 조직이 너무 방대하다는 이유로 거액의 은사금을 주고 해체시켰다.

국치 전후에 가장 강력한 민족세력인 천도교는 종교단체인 관계로 해산을 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제국주의 침략국가라도 종교단체까지 해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여론 때문이다. 손병희와 이종일은 이 점을 역이용하여 『천도교회월보』를 국치 직전에 등록하여 언론매체를 확보한 것이다.

『천도교회월보』는 발매금지·압수·발행정지 등 일제당국의 간섭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1910년대 내내 꾸준히 발간되었다. 천도교의 종교계몽운동 역시 이러한 지속성을 통해 상당한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천도교회월보』는 산간벽지의 천도교인들이 교주 손병희를, 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천도교인을, 그리고 '문명의 이기'와 접할 수 있는 교류의 장 역할을 수행했다. 『천도교회월보』는 출판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암울한 현실에서 천도교인들에게 제공되는 유일한 지적 자산이었으므로 그들의 세계관·역사인식·사회인식·민족의식에 미친 영향은 상당한 것이었다. (주석 60)

한반도의 새 권력기관이 된 조선총독부는 그 대신 각급 종교단체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이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유교계는 최고기관 경학원(經學院)의 대표인 대제학을 조선총독이 직접 임명하여 장악하고, 불교계는 사찰령과 본말사법(本末寺法)을 제정하여 '30본산체제'를 마련, 총독부 직할체제로 편입시켰다.

문제는 천도교였다. 일제(총독부)가 볼 때는 어김없는 종교를 빙자한 정치결사였다. 천도교는 동학혁명을 일으켰던 집단이고, 그 수장의 하나는 북접의 최고책임자 손병희였다. 어느 면으로나 천도교가 순수 종교단체로만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국치 직후인 9월에는 『천도교회월보』 주간 이교홍과 간부 김완규 등 4명이 병탄에 반대하는 격렬한 편지를 각국 영사에게 보내고 조선의 독립을 요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천도교 간부 수명이 경무총감부에 구속되어 심한 문초를 받고 풀려났다. 이를 계기로 총독부의 천도교 인식은 더욱 적대적이 되었다.

일제는 1911년 천도교의 재원인 '성미제'를 폐지시켰다. 자금줄을 끊어서 고사시키려는 술책이었다. 그리고 데라우치 총독이 직접 손병희를 관저로 불러 천도교가 민족주의사상을 버리고 순수 종교활동만 하라고 경고하였다. (주석 61) 

총독부는 손병희와 천도교를 탄압하는 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기관지 『매일신보』를 통해 손병희를 '최면술사' '일대괴물' '과대망상에 이(罹)한 정신병자' '사이비 교주' 등 온갖 음해를 퍼붓고 비방하였다. 지방의 신도들을 손병희와 천도교에서 갈라 놓기 위한 술책이었다. 이 시기 조선총독부의 천도교 탄압과 관련 백암 박은식의 기록이다.

종교단체라는 것을 부인하면서 날마다 경찰을 파견하여 중앙 총부와 각지의 교구를 감시하며, 달마다 재무·회계의 장부를 보고하게 하여 없는 흠을 억지로 찾아내어 다수 징벌을 행한다. 교회의 주요한 인물은 날마다 그들의 정찰과 속박을 받는다. 지방교도의 심상한 출입도 구금당하여 곧 노예나 가축 따위의 대우를 받는다. 교인이 비교인(非敎人)과 소송하는 일이 있으면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불문하고 반드시 교인을 패소시켰다. (주석 62)

손병희가 리드하는 천도교의 역량온 경술국치 후에 나타났다. 예상 외로 신도수가 급증한 것이다.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뒤바뀌면서 기존가치와 질서가 무너지고 있을 때, 다수의 국민이 천도교를 찾았다. 여기에 매국단체 일진회가 해산당하면서 회원들이 저간의 잘못을 깨우치고 천도교로 회심하면서 신도 증가수는 더욱 확대되었다. 이종일은 공동묘지와 같은 한반도의 암울한 공간에서 이같은 현상에 한줄기 빛을 찾으며 글을 쓰고 동학정신을 계도하였다.

주석
60> 김정인, 앞의 논문, 41쪽.
61> 김삼웅, 『의암 손병희 평전』, 189~190쪽, 채륜, 2017.
62> 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 126쪽, 서문당, 1975.

#이종일#이종일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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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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