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설은 파친코 게임이나 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재일 한국인들이 매우 불공정한 인생 게임을 해야 합니다. 도박을 하면 대부분 잃게 될 거예요. 전 재일 한국인들이 거의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는 최근 방영된 KBS <다큐인사이트> '파친코' 특집 다큐에서 재일조선인들의 차별받고 불공정한 삶의 조건들이야말로 <파친코>라는 제목을 낳은 1등 공신이라 밝혔다. 결국 천대받고 멸시받는 '파친코' 장을 운영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렸던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극대화된 사건이 바로 100년 전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일 것이다.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를 접하며 자연스레 <파친코> 7화를 다시 찾아 봤다. 지난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감동시킨 애플TV의 화제작 <파친코>의 7화 에피소드는 제주출신 주인공 한수(이민호)의 과거를 간토대지진 및 조선인 학살 사건과 탁월하게 연결시킨다.
미국으로 떠나려던 가난한 한수는 간토대지진으로 아버지를 잃고 그 꿈이 좌절된 상태에서 조선인 학살 사건을 맞닥뜨린 끝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원작엔 없지만 그 자체로 서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완결성을 자랑하는 놀라운 에피소드요, 조선인들이 일제강점기 하에 당했던 피해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그리는 동시에 비극적인 역사를 전 세계인들에게 환기시키는 빼어난 장면이었다.
새삼 제작진의 용기어린 결정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간토대학살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공개된 <파친코> 7화는 세계인들이 몰랐던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사건을 글로벌 OTT를 통해 알린 계기가 됐으니 말이다.
이처럼 100주년을 맞은 간토대지진을 상기하기 위한 예술적 작업들이 올 한 해 지속되는 중이다. 다큐멘터리스트 안해룡 감독이 지난 22일부터 오는 9월 3일까지 종로구 청운동 소재 갤러리 류가헌에서 개최 중인 사진전 '도쿄, 조선인 대학살의 거리' 展 역시 이 100주년을 맞은 간토대학살의 현재를, 그 역사의 기억을 서울 한복판에 소환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100년을 가로 지르는 제노사이드의 비극
"위령비로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을 기억하려 했지만 허전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추모의 기록, 추모의 공간이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다 만난 조선인 학살 지도. 생생한 증언과 기록이 관련 자료를 명기하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다. 머리 속 상상 이상으로 가해의 묘사는 절절하고 처참했다. 일본이라는 국가 권력이 자행한 잔혹한 조선인 학살의 역사는 도쿄의 거리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안해룡 감독
안해룡 감독은 도쿄의 거리가 너무나 친숙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빙벨>로 이름을 알리기 전 안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재일 위안부 재판'을 조명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9)를 만들었고, 이후로도 계속 피해자 할머니들을 아픔과 계속되는 삶을 조명해 왔다.
특히 안 감독은 지난 2019년과 2022년 두 번에 걸쳐 일본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와 함께 남과 북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기록한 전시를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관련 기사 :
일본기자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벌인 엄청난 일들,
강요된 피해자다움... 우리는 더 깊이 들어야 한다).
그런 안 감독이 이번엔 도쿄의 거리로 카메라 렌즈를 가져갔다. 앞서 조선인 강제동원부터 일본군위안부, 재일 조선인까지,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취재와 집필, 영상 작업을 이어온 그에겐 특별할 것이 없는 작업일 순 있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시작은 우연히 발견한 간토대지진 때 자행된 '조선인 학살지도'였다.
어찌 보면 일본어로 된 그저 옛날 도쿄 지도일 수 있지만 안 감독의 특별한 시선은 기어이 도쿄의 거리들로 옮겨갔다. 지도 속 붉게 물든 학살의 공간들은 한두 군데도 아니었고 광범위한 곳도 여럿이었다. 이 다큐멘터리스트의 눈에 익숙했던 그 거리들에서 100년 전 참혹한 학살 현장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로 따지면 한강이라 할 수 있는 도쿄 중심부에 흐르는 스미다가와 강에 카메라 렌즈를 가져갔다. 그 강을 중심으로 지른 듯이 자리한 고층빌딩과 고가도로들은 대지진의 상흔 따위 찾아 볼 수 없는 고도화된 도시의 풍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안해룡의 이번 사진전은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일본 군대와 경찰이 적게는 재일조선인 6천 명에서 많게는 2만3천여 명을 학살한 제노사이드 간토대학살의 현재적 의미를 되짚는 시나위이자 레퀴엠이다.
"너무나 일상적인, 너무나 아름다운, 너무나 역사적인 거리가 조선인 학살을 기억하고 있었다. 국가 권력의 잔혹한 학살, 그것은 일본 민중의 대중적인 지지를 품어 안고 있었다. 뿌리 깊은 조선인 차별, 외국인 차별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일본에게는 간토대지진 100주년은 부흥의 상징이지만 우리에게는 간토 조선인 대학살의 처참한 역사의 기억이다." - 안해룡 감독
의미 깊은 간토대학살 100주년 전시들
"빨갛게 된 영역들은 이재민들이 피난해서 이제 거주하던 광장 같은 일종의 피난 지역이에요. 당시 도쿄의 44% 정도가 다 불탔다고 그래요. 요코하마는 80% 이상이 다 이재민이 된 거고요. 강이나 모래에 돌아가신 분들의 넋이 있을 거잖아요. 그들이 땅에 묻혔다가 도쿄의 현재를 볼 수 있으니까, 자료 사진들을 가지고 그런 이미지를 구성해 본 거죠. 그래서 여기 향도 피우고 있고요."
지난 25일 전시장에서 만난 안 감독의 해설이다. 조선인 학살지도 앞으로 간토대학살 관련 사진들이 강바닥에 흩뿌려진 듯한 설치물이 눈길을 잡아 끈다. 향도 피웠으니 일종의 넋전과 같은 완연한 조형물이다.
그 반대편에 안 감독이 직접 찍은 도쿄의 거리 사진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설치물이 조선인 학살지도를 바라본다. 데칼코마니와 같은 구도 속에서 100년을 가로지르는 간토 조선인 대학살을 복기하고 상기하자는 의도가 뚜렷하다. 안 감독이 직접 찍은 잿빛 사진들 속엔 위령비들도 여럿 보인다.
"위령비는 재일교포들이 세우기도 하고, 민족단체나 일본인 시민그룹들이 세우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한국인이라고 쓴 위령비는 민단이 세운 거고, 조선인이라고 쓴 건 일본인이거나 조총련 계통의 관계자들이 세웠다고 보면 된다. 위령비 말고 경찰서 사진도 있는데, 당시 도쿄 경찰서 관내에 조선인들을 분리해 놓곤 했다."
안 감독은 우에노 공원 고마쓰미야 동상 앞 파출소나 아사쿠사공원 부근 파출소 등 증언과 기록, 관련 자료가 명기된 '지도' 위의 지점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그렇게 오늘의 공간을 탐문해 100년 전의 시간을 물었다. 이를 카메라에 기록한 것이 '도쿄, 조선인 대학살의 거리' 展에서 볼 수 있는 수십 점의 사진들이다.
이렇게 안 감독이 완성한 '조선인 학살지도'를 통해 간토대학살을 알게 된 이들이라면 오는 10월 29일까지 용산구 청파동 소재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열리는 '간토대학살 100년 은폐된 학살, 기억하는 시민들' 기획전도 추천드리는 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주관하는 이 간토대학살 100주년 기획전은 '도쿄, 조선인 대학살의 거리' 展 보다 긴 기간과 너른 사료, 작품들로 100년 전 조선인 대학살의 비극을 의미 있고 생생하게 복원해 놓았다.
이 역시 <파친코> 7화가 그린 재일조선인들의 아픔을 체험할 수 있는 동시에 여전히 공식 사과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를 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