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 사회에서 권력기관에 대한 언론과 시민사회의 견제와 비판은 지극히 필수적인 기능이다. 완전한 인간이 없듯이 완전하지 않은 정권이 행사하는 권력이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완전한 정권이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비판이 거슬려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거나 시민사회를 탄압하면 결국 견제 받지 않는 독재 권력으로 추락해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기 쉽다.
그런 면에서 지난 8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동관 방통위원장을 임명하기 전 한국투명성기구를 비롯한 41개 시민단체가 "이동관의 방통위원장 임명은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기자회견을 한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지난 27일 이동관씨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이동관씨는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16번째 장관급 공직자다.
한편, 지난 22일 한국투명성기구는 "공직자가 직무관련자에게 30만 원까지 선물을 받을 수 있다니?"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청탁금지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담았다. 이어 지난 25일엔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수사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정의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준 한국투명성기구의 용기에 지지를 보내며 지난 22일부터 27일까지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공동대표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설·추석엔 30만 원까지 선물 가능? 납득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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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국투명성기구에 대해 소개하면?
"한국투명성기구는 1999년 반부패활동을 위한 843개의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인 '반부패국민연대'로 출범했다. 2000년에는 국제적인 반부패운동을 전개하는 국제투명성기구의 한국본부로 승인받았다. 2004년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부패라는 주제로 정치, 경제, 공공, 시민사회의 협력적 거버넌스인 '투명사회협약'을 제안해 2005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 투명사회협약은 OECD와 UN, 국제투명성기구로부터 가장 모범적인 반부패 모델로 인정받기도 했다. 한국투명성기구는 정부, 정치, 기업, 시민사회 그리고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부패가 없는 투명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0년에는 국제투명성기구, 국민권익위원회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국제반부패회의(IACC)를 공동주최했다."
-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8월 21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아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국무회의까지 거치면 즉각 시행된다. 시행령 개정안은 공직자 등이 주고받을 수 있는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가격 상한을 지금까지 10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설·추석에는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또 농·축·수산물로 교환할 수 있는 온라인 상품권(기프티콘)과 영화·연극·스포츠 등 문화관람권도 선물 가능한 상품에 포함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공직자는 직무와 관련해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금품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 안의 금품 등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청탁금지법의 취지는 청렴한 사회를 위해 공직자에게 직무관련자로부터 금품수수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사교 등의 목적으로 아주 예외적으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한도를 또 높여서 설·추석에는 30만 원까지는 선물을 주어도 된다고 인정하겠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나아가 온라인·모바일 상품권과 문화관람권 등도 유가증권인데 이를 선물 가능한 상품에 포함한다면 공직자에 대한 선물을 쉽게 하고 크게 확대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금품수수의 편의를 오히려 높이고 활성화하는 상품권과 문화관람권의 선물 포함에 대해서도 적극 반대한다."
-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번 시행령 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농축수산업계, 문화예술계 등의 피해 상황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는데 이런 권익위의 결정을 어떻게 보나?
"농축수산업계, 문화예술계 등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방향이 잘못되었다. 국민들에게는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면 선물을 주고받는 데 아무런 금액 제한이 없으며, 공직자들도 직무관련자로부터 받는 선물이 아니라면 1회 100만 원, 연간 300만 원까지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청탁금지법의 선물 상한액 규정은 오직 공직자가 직무관련자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만 적용된다. 이와 같은 내용을 적극 홍보하면 될 일을 공직자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의 상한액을 높여서 타개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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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농축수산단체도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권익위 개정안은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런 농축수산단체의 입장도 정부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농축수산단체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비 진작을 위한 정부의 조치를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표면에 나타난 증상만을 가지고 이에 대응해 치료하는 대증요법보다는 공직자들이 직무관련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제약이 덜하다거나 국민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데에는 상한선이 없다는 것을 알려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 소비 활성화에 더 기여할 것이다.
즉 공직자가 직무관련자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은 엄격히 규제하고 국민들 사이의 선물이나 공직자에 대해서도 직무관련성이 없는 선물은 어느 정도까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알린다면 소비 진작을 바라는 농축수산단체들의 입장도 잘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해 11월 국민 4482명을 상대로 실시한 국민인식도 조사결과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이 91.2%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 여론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권익위가 국민여론에 반하는 이번 개정안을 의결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우리 국민과 공직자의 다수는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리나라를 더 청렴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직자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의 상한액을 높여 이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이 법 시행 초기부터 있었다. 그래서 5만 원이었던 공직자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의 상한액이 농축수산물이나 농축수산가공제품의 경우 10만 원까지 늘었고, 설·추석기간에는 20만 원까지 가능하도록 개정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30만 원으로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의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명절 때마다 농축수산단체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기 때문으로 보여지는데 많은 사람들은 공직자들이 직무관련자로부터 받는 선물의 금액과 편리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의심하고 있다.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은 국가의 근간이다. 직무관련자에게도 30만 원까지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해 공직자의 청렴성의 근간을 허무는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대통령실과 총리실, 부패 추방에 가장 앞장서야"
- 해병대 고 채 상병 사망사건은 법규준수를 생명으로 여기는 군대에서, 아무런 안전조치도 없이 채 상병을 사지에 몰아넣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은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진상을 명확히 밝히겠다는 각오로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국방부장관이 직접 결재한 수사자료의 경찰 이첩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시키고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을 '항명' 혐의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를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국방부의 조치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군사경찰이 적법한 법리검토를 거친 수사결과를 장관의 판단으로 변경하려는 것은 법에 보장된 수사 독립성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둘째, 군사경찰이 경찰에 이첩한 수사결과를 군 검찰단이 회수한 것은 어느 법률과 규정에도 근거가 없는 권한 없는 행위다. 셋째, 현재까지 밝혀진 정황에 의하면 국방부가 진실을 밝히려 노력한 수사단장의 입을 막기 위해 '항명죄'라는 누명을 씌운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내 건 윤석열 정부는 국토방위에 헌신하는 장병들이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법규준수를 우선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아울러 본 사건을 계기로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들이 신성한 국방의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녀들의 안전을 우려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안전사고 예방대책을 철저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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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윤석열 정권의 반부패 정책에 대해 총괄적으로 평가하면?
"한국투명성기구가 지난 6월 반부패전문가 1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각 부문의 반부패 노력 정도를 묻는 질문에서 정치권의 부패추방노력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다음으로 대통령실과 총리실의 부패 추방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부패 추방에 가장 앞장서야 할 대통령실과 총리실이 좋지 않은 점수를 받은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반부패를 위한 전략으로 총체적 접근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어느 한 방법이 아니라 엄격한 적발과 처벌, 법·제도의 정비, 의식과 문화의 혁신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적발과 책임추궁에 비중을 두는 반면 제도를 정비하는 문제나 의식과 문화의 혁신에는 소홀한 면이 있어 보인다. 아울러 반부패에 있어서도 민과 관이 협력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도 노력이 부족해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공동대표 약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대외협력과장(전)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조직팀장(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대외협력홍보팀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