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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람들 스스로 가두고 경계하는 사람이 많은데 한국사람들이 다가가 동정보다는 편하게 일상적으로 대해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열린 이소원 작가의 <외롭지만 불행하진 않아>(2021, 꿈공장플러스) 북토크에서 작가는 탈북민에 대해 이 같이 제안했다. 이어 "탈북민들을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남한에 안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소원 탈북작가 북토크 현장
 이소원 탈북작가 북토크 현장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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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반도평화연구원은 지난해 '북에서 온 작가들의 책' 30권을 추천·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중 8명의 작가를 선정해 '북에서 온 작가들'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2023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이기도 한 프로그램에서 이소원 작가 북토크는 그 네 번째 시간이다. 이날 북토크는 이원영 평화나눔재단 학술연구소장의 사회와 질의응답으로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이 작가는 2011년 중국으로 탈북해 이듬해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이후 하나원을 수료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2019년 대학을 졸업했다. 지금은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외롭지만 불행하진 않아>는 탈북과 가족 이별, 중국 체류 시절, 한국에서의 정착과정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혼자 외롭게 성장하며 우울증을 극복했던 자신의 이야기도 담았다.
     
그의 출판은 자신의 생활을 기록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른바 '일기' 형식의 내용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의 말대로 책은 '자소서'로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
 
이소원 탈북작가 북토크 현장
 이소원 탈북작가 북토크 현장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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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또한 이씨 자신의 인생과 스토리를 함축하는 표현이다. 이씨는 글을 쓰면서 탈북에 따른 수많은 외로움과 고통을 극복했다고 한다. 이씨는 별도의 작가 수업을 받거나 전공하지 않았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거기서 느낀 것을 쓰다 보니 자연 글쓰기가 좋아졌고 이제는 조금 남도 헤아려 볼 수 있어 책을 내게 됐다고 담담히 말했다.
     
원고는 대학생부터 쓰기 시작했다. 취업해 안정을 찾으면서 예전에 쓴 글을 꺼내 다시 살려 출판하기로 했다. 처음엔 자신을 포함한 아픈 가족사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과연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지 걱정과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출판사에 과감히 투고하면서 결국 출판 제의를 받았다. 이후 8개월 간 본격적인 집필과 원고의 방향 등 출판사의 도움을 받았다.  
   
이씨가 9살일 때 엄마는 중국으로 탈북했다. 남편의 학대가 심하고 생활고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자 결손가정의 생계는 소녀가장의 몫이었다. 때문에 학교도 다닌 적이 없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후 어느 날 엄마가 딸을 중국으로 불렀다. 동생도 중국으로 데려오려고 다시 북에 들어갔는데 그게 엄마와 마지막이다.
     
엄마는 북에 들어가 연락이 두절되고 새아버지와는 말도 안 통하고 남남이나 다름없었다. 외로움에 도망치고 자살도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을 떠올리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씨가 중국에 6개월 밖에 머물지 못하고 혈혈단신 한국으로 탈출하게 된 배경이다. 
     
작가는 책에서 '짧은 행복'이라는 단원이 가장 마음이 남는다고 했다. 엄마가 탈북한 9살부터 짊어져야 했던 소녀의 삶은 고달프지만 지금 생각하면 소소하고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씨의 삶을 돌이켜보니 길게만 느껴지던 세월도 한순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지난 고통의 세월을 쓰레기 버리듯 쉽게 지워내 버릴 수 없지만 그는 잊기 위해 지금까지 부단히 노력해 왔다.
     
북토크 내내 젊은 작가의 얼굴에는 어두운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다. 능동적인 삶을 개척한 끈기와 집요함이 대견하다. 그를 보는 순간 수동적이며 정부지원에 의존적인 탈북민에 대한 인식은 사라졌다.
 
이소원 탈북작가 북토크 현장
 이소원 탈북작가 북토크 현장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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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원주가 사실상 내 고향입니다"

작가와의 질의시간, 그는 무엇이든 물어보길 바랐다. 힘들면 언제든 내게 물어보라는 식이다. 먼저 그는 강원도 원주가 사실상 자신의 고향이라 말했다. 청소년 신분으로 하나원 수료 후 그는 원주의 대안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본격적인 학업을 시작했다. 연극과 춤을 통해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극복하고 장래 꿈과 희망도 키웠다.  
    
올해 6월 대학 다닐 때 채팅방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이씨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남편과 함께 화목하고 친구같이 대화하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말했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작가에게 보내는 응원이 많았다. 탈북학생을 가르치는 한 탈북민 지도자는 콤플렉스, 미래 불안감, 분노, 편견에도 불구하고 적응하며 감사하는 생활이 인상적인데 이는 3만 5천 명 탈북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훈훈한 소식이라며 앞으로 리더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더 노력해 주길 당부했다.
     
탈북 작가들이 쓴 이전의 책과 다르다는 의견도 나왔다. 책에 북한의 이념과 사상 등 사회적 배경과 언급이 거의 없어 거부감이 적다는 평이다. 이는 그가 북에서 제대로 사상교육을 받지 못하고 책을 접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의 각고의 노력과 성실성이 보다 돋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어지는 궁금한 질문, 통제된 북한사회에서 과연 의무교육과 학교를 받지 않은 것이 가능할까. 그에 따르면 북한이라도 완벽한 통제는 없으며 사각지대가 많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데리러 오거나 찾지 않았다고 했다. 전입신고하지 않거나 자신처럼 여기저기 떠도는 사람이 북한에 많다고 증언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말고 도전적인 삶을 추구하라 조언했다. 2030 시절이 젊고 빛나는 건 자신을 찾아 독립하기 위해 도전과 실패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가의 성공적인 정착을 보면서 '강한 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생존하는 것'이라는 진화론이 떠오른다.  
    
남한에서 고아나 다름없이 산 이 작가의 가족과의 생이별과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북에 있는 엄마와 동생이 얼마나 보고 싶겠는가. 그는 에둘러 말했다. "거창한 통일을 이야기하기보다 남북한 헤어진 가족들이 서로 왕래하는 시대를 소원합니다." 고속버스나 KTX를 타면 서울에서 부산도 두세 시간이면 가는데 못 가는 고향 청진의 가족이 그립고 안타깝다는 것이다.
     
수많은 외로운 날, 셀 수도 없는 눈물과 좌절을 겪은 이 작가에게 또다시 내몰리더라도 그는 쉽게 쓰러질 것 같지 않다. 특히 이 땅의 외로운 젊은 영혼들에게 힘들더라도 일어나 함께 걸어보자고 손잡아주는 듯 의연하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이미 통일부 남북하나재단의 창작공모작으로 선정돼 출판비를 지원받아 늦어도 내년 초 책이 출간될 전망이다. 이 책은 20대 자신이 겪은 남한 정착 과정을 에세이로 풀어 낸 작품이다.

졸업한 대학이 있는 안산에서 글쓰기 비전, 청소년 대상 특히 언어와 환경이 다른 다문화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다문화 학생들이 녹록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글을 쓰면 상처가 치유되고 자아형성 등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소원 작가가 그런 경우다. 탈북민의 정착과정에서 그는 성공적인 모델이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적성과 특기를 살려 외로움과 난관을 극복했기에 말이다.

탈북민들의 남한사회 안착은 통일의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소원의 꿈과 희망을 열렬히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외롭지만 불행하진 않아

이소원 (지은이), 꿈공장 플러스(2021)


태그:#이소원 탈북작가, #외롭지만불행하진않아, #원주 대안학교, #하나원, #남북하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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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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