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인노무사로서 센터에서 노동법률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방문 상담을 하고 나면 힘에 부쳐서 멍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상태를 감정의 배터리가 다 되었다고 말합니다. 전화로 이루어지는 상담도 종종 그러합니다.
"당신은 노동자 편 아니에요?", "5인 미만 사업장은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된다는 말이잖아요", "그럼 니가 뭘 해주는데?" 같은 말을 듣고 전화를 끊으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업무에 집중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아직 감정의 배터리 용량이 부족해서 쉽게 방전이 되고 더디게 충전이 되는 편입니다.
저와 같이 노동법률상담을 하는 사람도 감정노동자일까요? 우선, 감정노동이란 말투나 표정, 몸짓 등 드러나는 감정 표현을 직무의 한 부분으로 연기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이 수반되는 노동을 말합니다. 저 역시도 노동법률상담을 위해서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한다면 감정노동자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감정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고객응대근로자에 해당하는데, 주로 고객을 직접 대면하거나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말합니다. 구체적인 고객응대근로자의 직업군으로는 항공사 객실승무원, 콜센터 상담원, 호텔 및 음식점 종사자, 백화점 및 할인점 등의 판매업무 종사자, 간호사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요양보호사나 보육교사 등 돌봄 서비스를 수행하는 업무, 공공서비스나 민원 처리를 하는 업무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한 직업군까지 고객응대근로자로 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는 스트레스가 심해 대다수가 우울증, 수면장애, 불안감 등의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객응대근로자, 즉 감정노동자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서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폭행, 그 밖에 적정 범위를 벗어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노동자의 요구를 이유로 해고 또는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아니되며, 이를 위반하였을 때에는 법 제170조에 따라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감정노동자의 감정의 배터리를 채우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배터리 소진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응대하는 고객 및 사회가 감정노동자에게 보다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이지요. 우리 센터가 진행한 '감정노동자가 일하며 듣고 싶었던 말' 캠페인에 따르면 감정노동자는 업무를 하며 "상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등을 듣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은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이니 평소 감정노동자를 대하실 때 한 번 말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감정노동으로 인해 마음이 힘들다면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근로복지넷에서 지원하는 근로자지원프로그램은 대표적인 심리상담 프로그램입니다. 근로복지넷은 300인 미만 중소기업 및 소속 근로자에게 정서적, 심리적 어려움 해결을 지원하기 위하여 근로자지원프로그램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꾹꾹 억누른 감정을 뱉어냄으로서 감정의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감정노동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역시 노동자마음건강상담을 통해 정신적, 심리적으로 지친 노동자들을 위한 심리 상담 및 프로그램을 연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부산시에 거주하거나 부산 소재 사업장에 근무 중인 감정노동자에게 연계된 상담소를 통해 최대 8회기까지 개인심리상담을 지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센터 뿐만 아니라 각 시도별 노동권익센터, 혹은 감정노동자권리보호센터에서 마음건강상담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처럼 쉽게 방전되는 감정의 배터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자잘한 시도도 해볼 수 있습니다. 저는 배터리가 소모되지 않도록 상대방에게 "그건 못하겠어요", "저에게 심한 말을 하지 마세요" 하고 막아도 보고, 배터리가 방전되었다면 충분히 휴식하고 서서히 충전도 해보고, 아예 경험을 통해서 배터리의 용량을 늘리는 연습도 해보고 있습니다. 사실 무엇이 가장 적절한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아직 용량이 작은 감정의 배터리를 조심히 다루고 있을 뿐입니다.
감정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배터리 용량을 인지하고 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객을 응대하면서 힘이 부칠 때 감정노동자가 "내 배터리 용량이 얼마 남았지?", "나 충전해야겠구나" 라고 문득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정노동자의 감정의 배터리가 언제나 완충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감정노동자에게 응원의 말을 보냅니다. "오늘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에세이 속 노동법률 Q&A
Q1. 감정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법」상 고객응대직업군 분류는 어떻게 되나요?
A1.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에 따른 고객응대근로자는 구체적으로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발간한 『고객응대근로자 건강보호 가이드 라인』에 따라서 4가지의 고객응대직업군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① 직접대면으로는 백화점, 마트, 호텔, 음식업 종사자, 항공사 객실승무원, 골프장 캐디, 택시 및 버스 운전사, 금융기관 종사자 등이 있고, ② 간접대면으로는 콜센터 상담원, 텔레마케터 등의 직업이 있습니다. ③ 돌봄 서비스로는 요양보호사, 간호사, 유치원교사, 보육교사 등이 있고 ④ 공공서비스 및 민원처리로는 구청(민원실), 주민센터 직원(공무원), 보험공단 직원, 사회복지사, 경찰 등의 직업이 있습니다.
Q2. 「산업안전보건법」 외에 감정노동자가 상황별로 적용 가능한 법률이 있나요?
A2. 성적 수치심, 혐오감 유발, 성적 언동, 수치심 유발 질문, 사적 만남 유도 등의 성희롱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으로 처벌될 수 있으며, 폭행, 상해 또는 욕설, 협박, 모욕적인 발언 및 허위사실 유포 기타 위계·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 「형법」으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공포심, 불안감을 유발하는 음향, 화상, 영상을 반복적으로 도달하게 하는 경우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에 따라 처벌될 수 있으며, 업무와 무관한 장난전화로 업무를 방해하는 경우 「경범죄처벌법시행령」에 따라서 처벌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에세이는 부산노동권익센터 이슈페이퍼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15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