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 가운데 교육을 망치는 말이 있다. 바로 '교육 서비스'다. 교육 서비스라는 말은 교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고 학부모는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학부모가 본인을 교육 소비자로 인식하면 학부모가 할 일은 평점을 남기거나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되고 심한 경우에는 블랙 컨슈머가 된다.
요즘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서이초를 비롯한 일련의 사태도 학부모가 교사를 서비스 제공자, 본인을 서비스 소비자로 인식한 탓이 크다. 그런데 원하는 것을 요구만 하는 것이 과연 학부모의 역할일까?
우리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의하면 교육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 이것은 학교가 학부모의 편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함을 의미한다. 교육 기본법도 우리 교육 이념을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 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학교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부모의 요구가 아니라 공적 가치를 위해 일해야 하고 학부모도 자녀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또 만약 교육이 서비스라면 자녀가 없는 사람이나 자녀가 교육을 마친 사람은 교육에 들어가는 세금을 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녀가 학교에 다니는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이 비용을 기꺼이 분담하는 것은 학교가 사회의 공적 가치와 규범을 대변하기 때문이고, 학생들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가치와 규범을 배우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고 있으니 교사들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 공무원법 43조는 "교원은 그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라며 교사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교원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교사가 교육적 신념에 따라 공교육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이념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호하기 위해서다.
최근 문제가 되는 몇몇 학부모처럼 아동학대 법을 악용해 교사를 공격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약속한 교사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학부모는 '우리 아이 춥대요(덥대요)'가 아니라 아이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잘 자라게 지도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인류학자인 사피어(E.Sapir)와 언어학자인 워프(B.Whorf)는 인간의 사고가 언어라는 틀에 의해 유형화되기 때문에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올바르게 사고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말과 글의 적절성을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교육 서비스'라는 말이 교육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 학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학교 교육은 공동체의 구성원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이 나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서비스고, 소비자로서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헌법과 관련 법에 나타난 공교육의 취지를 다시 되새기고 학교의 공공성을 회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