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특별법 시행 후 100일이 지났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제대로 된 특별법 개정과 피해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고충 접수센터장은 12월로 예정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논의 전에 정부가 제대로 된 전세사기 피해조사를 할 것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개소한 전세사기 고충 접수센터가 현재까지 접수 받은 고충은 980건에 달한다.
지난 8일 권 센터장을 만나 전세사기 피해조사의 필요성과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전세사기특별법은 피해자 주거안정지원법... 지금 삐그덕거리고 있다"
- 전세사기특별법에 담긴 피해자 구제대책은 어떤 내용들이 있나요?
"전세사기특별법은 피해자의 주거안정지원법이라고 이해하시는 게 맞아요. 피해를 구제해준다기보다 이미 피해를 입은 사람이 향수 조금이나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경매를 유예시키는 조치가 있습니다. 경매가 계속 진행되면 피해자는 그 집에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경매 유예 신청을 받고 심사에서 유예해주는 정책이 있어요. 두 번째로는 피해자가 원한다고 하면 그 집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우선매수권이라든지 혹은 거주 주택을 매수할 때 대출 지원을 해준다든지 하는.
그런데 피해자 중에서는 피해주택을 매수할 수 있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수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그분에게는 그 주택을 공공이 사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고, 그 주택을 사지 못 하거나 혹은 아니면 피해자가 다른 지역에 거주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하면 그 지역에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거 안정이 되더라도 보증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대출을 받으신 분은 대출금을 못 갚고 있을 거잖아요. 그것을 저리로 대환 대출해주는 정책이 있고, 그 외에는 법률 상담이라든지 심리지원 상담 등이 있습니다.
문제는 특별법 조치가 잘 작동되면 피해자들이 '최소한 주거 관련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겠구나'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실제로 현실은 그렇게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제 법 시행된 지 3개월이 좀 지난 상황이라 정책이 무용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과를 봤을 때는 삐그덕거리면서 작동하고 있고, 그 삐그덕거리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 전세사기특별법 시행 후 100일이 지났는데 특별법 조치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나요?
"현재까지 5000명 정도가 신청했고 그리고 4600여 명 정도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피해자로 인정받을 만한 사람들만 피해자 신청을 했다는 거예요. 나는 안 될 것 같은데 하시는 분들은 아주 구체적인 피해가 있지만 신청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간담회나 고충을 접수받으면서 그런 사례를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전세사기 피해 신청 수치에 포함되지 않는 피해자들이 많이 있다고 전제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4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중 세 번째 요건이 임대인의 기망, 그러니까 임대인이 원래부터 안 돌려주려고 했다는 걸 증명해야 해요. 문제는 사기 입증이라는 게 원래도 어려운데, 임차인이 임대인의 재산 상황이나 과거 상황에 대해 다 들여다볼 수 없는 조건 하에서 임차인이 임대인의 기망을 입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 사이에서는 '피해를 당할 거면 되게 유명한 사기꾼에게 당해야 이 절차가 원활하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사기 입증이 매우 어렵다'는 한탄이 나옵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피해 내용은 똑같지만 유명한 악질에게 당하면 피해자로 인정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당하면 피해자로 인정 안 된다는 것이."
"지금 조사를 안 하면 12월에 뭘 갖고 개정을 논할 건가"
- 전세사기 피해조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피해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세사기 피해자분도 같이 1인시위를 해주시고 계신데 피해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특별법이 태생할 때부터 제기됐던 문제예요. 현재 전세사기 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어떤 유형인지 충분히 확인하지 못 하고 만든 법이어서 만들 때부터도 '법을 일단 만들고 차후라도 정부가 피해조사를 해야 된다'고 국토위 의원들이 말했습니다.
피해조사를 하지 않으면 12월에 다시 법 개정 논의를 할 때 무엇을 근거로 피해자 범위를 넓히는지 혹은 좁히는지 근거가 없는 채로 주장만 나오게 됩니다. 설사 피해자의 범위가 넓어진다 하더라도 피해조사 없이 개정되면 개정 이후 정책이 집행될 때 또 혼란이 반복됩니다.
정부는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받는 혹은 인정받기 위해서 신청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금 조사가 되고 있으니 그걸 종합하면 된다고 하지만 피해신청자로 한정하면 현실에서 발생하는 피해 전체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피해신청자로 한정하게 되면 좁게 파악했는데도 이게 전부라고 여기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오류를 넘어서기 위해서 피해조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제가 인터뷰나 간담회에서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수치적으로 '보증금 얼마의 피해를 입었다'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피해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공황장애가 왔다거나, 전세사기로 인해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든가, 전세대출이 장기 연체가 되면서 나머지 대출을 일시에 갚아야 되는 압박과 추심, 신용불량 상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든가 하는 다양한 피해들이 있습니다.
이런 전반적인 피해들을 파악해야 피해자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논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 이러한 것들을 파악하고 있지 않아요. 선순위 채권자가 누구냐, 다가구주택인가 다세대주택인가만 봐서는 삶이 흔들린 사람들을 제대로 지원할 수가 없어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삶이 흔들린 모든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가 아니라 최소한 피해자들에게 뭐가 필요한지는 알아야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나오는데 지금은 전세보증금 미반환 피해자들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이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지난해 여름을 떠올려보시죠. 수해로 서울에서 반지하에 거주하시던 분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서울 성동구는 2억 원 정도의 용역을 내서 구 내 반지하 5000가구 전수조사를 했어요. 대구시도 일정 기간 행정력을 동원해서 1만1000가구를 전수조사했어요. 그래서 차수판 설치 등 보강해야 할 가구, 아예 이주해야 할 가구를 파악해서 이주를 권하거나, 차수판을 설치를 지원하거나 하거든요.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어요. 그냥 단순히 국토부 공무원들이 피해자 인정을 처리하는 데 너무 바빠서 못 한다고 할 문제가 아니에요. 직접 하든 용역을 주든 피해 전수조사를 해야 12월에 법 개정 논의를 할 때 충분히 실효성있는 법 개정과 정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국토부 공무원들 바쁘고 힘든 건 알지만 이것을 하셔야 됩니다. 최소한 10월에는 뭔가가 시작돼야 합니다."
"우선매수권, 공공매입... 다가구주택 사각지대 존재"
- 피해조사를 지방정부 차원에서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조금 더 세밀하게 할 수 있는 건 지방정부일 거라고 생각해요. 전세사기 피해가 많은 부산이나 인천시에서 지자체 차원의 어떤 정책들을 많이 내고 있는데 피해조사도 지방정부에서도 시작해 보면 좋겠다 생각하고요.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는 경기도에서 피해조사를 먼저 시행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현장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만나봤을 때 특별법이 어떻게 개선되면 좋겠는지?
"우선적으로는 현재 특별법이 지원하기로 한 내용들이 있는데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그게 안 되면 공공이 매입하겠다라고 하는 경우도 다가구주택은 아예 대상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가구주택은 해당 주택 전체를 사야 해서 우선매수권을 피해자가 쓰기 어렵고, 다가구주택을 LH에서 매입해달라고 해도 LH 내부에서는 그걸 매입하지 않으려고 하는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무조건 그 집에서 쫓겨나야 되는 거죠.
국토부는 인근에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제공되는 주택이 가족 수 대비 면적이 너무 좁거나 거리가 너무 멀거나 해서 피해자들이 들어가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다가구주택의 경우에는 경매 유예도 안 되고 있어요. 법상 경매 유예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안 되고 있어요. 다가구주택의 선순위 세입자들은 경매가 진행돼 보증금을 받고 싶고, 후순위 세입자는 경매가 진행되면 보증금을 받을 수 없으니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거지요. 이 경우에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 법안을 추가해서 정부가 경매됐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사주는 거죠.
저희에게 고충 접수한 비율 중에 15% 정도는 다가구주택 거주자입니다. 근린생활시설도 LH가 매입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제외됩니다. 특별법 적용 대상자임에도 이런 저런 실무적인 이유로 특별법의 중심 정책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지금 특별법이 있는데 법 취지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가 첫 번째 개정 방향입니다. 두 번째는 특별법 자체가 한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법에 아예 포함되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할 거냐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 하나만 바뀌면 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게 지금의 현주소입니다. 정부가 정말로 이 문제를 잘 풀고자 한다면 지금 꼭 피해 조사를 해야 합니다. 피해조사를 한다면 피해자 지원 관련한 어떤 결정을 할 때 정확한 결정을 할 수 있고, 결정을 하고 나서도 발생하는 사각지대에 대한 부분에 대해 설득하기에도 훨씬 좋을 거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전세 사기 피해자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전세사기 피해자분들과 이야기나누다 보면 제게 전세사기 피해를 주변에 알려도 될지 물어봅니다. 그 말인 즉슨 전세사기 피해를 알리면 주변에서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라고 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는 개인이 잘못해서 문제가 발생했다기보다 구조적으로 매우 알기 어려운 방식으로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다고 주눅들 이유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폭행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게 맞은 사람의 잘못입니까? 당연히 때린 사람이 잘못한 겁니다. 계약을 위반하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사람의 잘못이지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의 잘못이 결코 아니니 떳떳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주장해 가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가시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눅들지 마세요."
[관련 기사]
"모든 사기피해는 똑같다? 원희룡, 우릴 두번 죽였다" https://omn.kr/25j9e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캠페인즈에도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