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비랍 가는 길
코르비랍(Khor Virap) 수도원과 아라랏(Ararat) 산, 우리에게는 생소한 단어다. 코르비랍은 지하의 깊은 감옥을 말한다. 그러므로 코르비랍 수도원은 지하 깊은 감옥 위에 지어진 수도원이다. 아라랏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산 이름이다. 대홍수 후 물이 빠지면서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 등마루에 머물렀다고 적혀 있다. 그 아라랏산을 보기 위해 우리는 코르비랍 수도원으로 간다. 코르비랍 수도원에서 아라랏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르비랍 수도원 앞 1㎞쯤 아라스(Aras)강이 흐른다. 이 강이 아르메니아와 튀르키에의 국경이다. 그 국경 너머 30㎞ 지점에 높이 5,137m의 아라랏산이 우뚝 솟아 있다. 방향은 코르비랍 수도원의 남서쪽이다. 코르비랍 수도원은 예레반 남쪽 30㎞ 지점에 위치한다.
중간에 마시스(Masis)와 아르타샤트(Artashat)라는 작은 도시를 지난다. 아르타샤트에 이르면 오른쪽 앞으로 아라랏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큰 아라랏산에는 흰 눈이 덮여 있고, 작은 아라랏산에는 눈이 없다. 그리고 포크르 베디(Pokr Vedi)라는 작은 마을에서 우회전해 들어간다.
이 지역은 아라스강이 흐르고 있어 포도, 살구, 복숭아 같은 과일 재배가 농업의 주를 이룬다. 특히 이 지방의 포도로 만든 와인과 브랜디가 유명하다. 브랜디에는 아라랏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우리는 아라랏산과 코르비랍을 조망할 수 있는 포도농장 멀버리(Mulberry) 하우스에서 잠시 쉬어간다. 7월 하순이어서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옥수수가 익어가고 있다. 포도밭 너머로 아라랏산이 구름에 가려 흐릿하게 보인다.
아라스강이 흐르는 아라랏 지역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 후 5세기까지 이어진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였다. 비옥한 아라랏 평야가 펼쳐져 있고,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하고 있어 아르타샤트가 수도로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산조 페르시아, 우마이야 왕조, 셀주크 터키, 몽골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도시가 파괴되고 폐허로 변했다.
1813년에는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 굴리스탄(Gulistan) 조약이 체결되어, 아라스강이 아르메니아와 튀르키에의 국경이 되었다. 이로 인해 아르메니아는 아라랏 평야의 절반을 잃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아라랏산으로의 접근도 불가능해졌다.
성 그리고르가 박해를 받은 자리에 코르비랍 수도원이 세워졌다
코르비랍은 수도원일 뿐 아니라 방어를 위한 성채(fortress)다. 수도원은 나지막한 산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수도원 성문 앞에 이르면 넓게 펼쳐진 평원 건너편으로 아라랏산이 구름 속에 은은하게 보인다. 수도원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높이가 6~8m고, 두께가 2~3m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면 종탑이 있는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1662년에 지어진 성모교회로, 수도와 순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그러나 코르비랍 수도원의 역사는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파르티아 출신의 귀족으로 기독교를 신봉하던 성 그리고르가 이곳 지하감옥에 13년 동안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르메니아는 아르사스 왕조의 티리다테스(Tiridates) 3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던 그리고르를 박해했다.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그리고르를 구원해 준 것은 티리다테스의 여동생 호스로비둑트(Khosrovidukht)였다. 그녀는 꿈에서 그리고르를 풀어주라는 계시를 받았고, 그것을 오빠에게 말해 그리고르를 석방시켰다고 한다. 사실 호스로비둑트와 왕비인 아쉬켄(Ashkhen)은 이미 기독교 신자였다.
석방된 그리고르는 티리다테스의 병을 고쳐 주었고, 이 때문에 티리다테스는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되었다. 그리고르는 아르메니아 주교가 되어 왕과 주민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이교도 사원 자리에 기독교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아르메니아에서는 그리고르를 사도교회의 불을 밝힌 사람(the Illuminator) 또는 개척자라 부른다. 그리고르는 현재 에치미아진(Echmiadzin)교회 자리에 순교자 묘지를 만들었고, 이게 나중에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모태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르는 314년까지 왕과 사도교회를 위해 봉사했고, 328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코르비랍에 그리고르를 숭배하는 교회가 생긴 것은 네르세스(Nerses) 3세 때인 642년으로 여겨진다. 지하감옥 위에 대리석 건물이 들어섰고, 네르세스 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1,000년 동안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다 1662년 현재와 같은 수도원 교회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성모교회로 불리는 커다란 교회가 폐허 위에 세워졌고, 수도원, 식당, 신부관 등이 만들어졌다. 돔과 종탑이 있는 성모교회는 종탑이 있는 서쪽 문을 통해 들어가 동쪽 제단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돔 아래 반원형 벽면에는 성모자상이 있고, 바깥벽에는 오래 되지 않은 두 개의 벽화가 걸려 있다. 하나는 아라랏산을 배경으로 기독교를 전파하는 두 사도 바르톨로메우스와 타데우스다. 다른 하나는 아르메니아에 기독교가 뿌리내리도록 한 두 사람 성 그리고르와 티리다데스 3세다.
이곳에서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기도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는다. 우리도 경건한 자세로 예의를 표한다. 아르메니아의 교회들은 흑갈색 돌로 지어지고 문이 작아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성모교회 서쪽 그리고르가 갇혔던 감옥 자리에는 바실리카 양식의 성 그리고르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성 그리고르교회는 북쪽으로 들어가 남쪽 제단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이곳 제단 감실 벽면에는 이콘 형식의 성모자상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개의 벽화가 있는데, 하나는 주교 복장을 한 그리고르다. 다른 하나는 그리고르가 티리다테스왕을 치료하는 장면이다. 이들 옆에는 치료를 돕는 호스로비둑트와 왕비가 그려져 있다. 이들 벽화는 최근에 그려진 것이다.
이곳 성 그리고르 교회 지하에는 그리고르가 13년 동안 갇혔던 지하감옥이 있다. 이곳으로 내려가려면 철제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한 사람이 내려갔다 올라올 수 있을 정도의 좁은 통로다. 지하감옥은 지하 6m 깊이에 폭 4.4m로 만들어져 있다.
그 끝에 제대를 만들고 하츠카르 십자가를 안치해 놓았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성 그리고르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제대 옆에 그려진 그리고르 벽화보다 훨씬 더 오래 되어 보인다. 성 그리고르교회는 성인의 땀과 피가 스며 있는 신성한 장소다.
아르메니아인에게 아라랏산이 가지는 의미
성 그리고르교회와 성채를 나오면 길은 자연스럽게 산 꼭대기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 십자가와 아르메니아 국기가 펄럭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오르면 성 그리고르교회가 성채로 지어졌음을 알 수 있고, 멀리 아라랏산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날씨만 맑으면 어느 지역에서든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산을 가까이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코르비랍이어서 사람들이 이 수도원을 찾는 것이다.
아라랏산은 현재 아르메니아 영토 밖 튀르키에 땅에 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1813년 굴리스탄 조약 이후다. 그러므로 200년 이상 산을 바라보기만 할 뿐 오를 수가 없었다.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인에게는 성스러운 산이고, 국가의 상징이었다. 그 때문에 아라랏산은 문학과 예술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아르즈룸 여행기>(Journey to Arzrum)(1830~36)에서 알렉산드르 푸쉬킨은 아라랏을 만난 감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나는 텐트를 나와 신선한 아침 공기를 들이킨다. 태양이 떠오른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눈 덮인 하얀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나는 스트레칭을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저 산 이름이 뭘까? ' 그러자 '그게 아라랏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 음절의 그 단어가 얼마나 강렬한 느낌을 주던지! 나는 성경에 나오는 그 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르메니아는 1992년부터 아라랏산이 들어간 국가 문장을 채택했다. 그리고 아르메니아 지폐인 10, 100, 500드람에도 아라랏산 그래픽이 들어가 있다. 튀르키에를 방문한 아르메니아 대통령에게 튀르키에 대통령이 아라랏산이 들어간 문장과 지폐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아라랏산이 당신네 영토에 있지 않으니 빼는 게 좋겠다고.
이에 아르메니아 대통령이 당신네 나라 국기에는 달과 별이 있지 않으냐? 당신네 나라 것도 아닌데, 그걸 왜 넣느냐고 응수했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인에게 아라랏산은 국가의 통합과 영토회복의 상징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