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이주노동자의 생명안전에 대한 차별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훼손하는 문제이며, 이번 투쟁은 단순히 이주노동자 보상에 머무른 것이 아닌 우리 사회 이주노동자의 생명안전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것으로 선언하고 투쟁하였다."
지난 8월 7일 경남 합천 소재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했던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피예이 타엔(Pyay Thein)씨를 위해 활동했던 '미얀마 이주노동자 중대재해 추모·장례투쟁위원회'(아래 투쟁위)가 18일 공식 해산을 선언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투쟁위는 고인이 사망한지 35일만인 지난 9월 10일 장례를 치렀고, 유족측 법률대리인은 사측 법률대리인과 지난 15일 최종 합의했다. 긴급하게 조직되었던 투쟁위는 장례절차와 최종합의가 마무리되자 공식 해산을 선언했다.
투쟁위는 "사측이 고인을 일방적으로 화장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한 노동시민사회는 한국인이었으면 일어날 수도 없는 사측의 비상식적 행위에 분노하였다"라고 밝혔다.
투쟁위에는 민주노총 경남본부, 경남이주민센터 등 전국 70개 단체가 참여해 꾸려졌다. 이들은 원청인 계룡건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며, 합천에 있던 고인의 시신을 창원으로 옮겨 장례를 치렀다.
이번 활동과 관련해 이들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들은 관행적으로 여겨왔던 이주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보상 기준의 틀을 깨고, 국적이 다르다고 해서 목숨의 가치까지 다른 것은 아니라는 명확히 선언하였다"라고 밝혔다.
원청인 계룡건설이 직접 유족 법률 대리인과 교섭을 시도한 것과 관련해, 투쟁위는 "그동안 원청은 직접 나서지 않고 책임 회피에 급급하였다. 하지만 이번 투쟁을 통해 계룡건설이 유족 법률 대리인과 교섭을 진행하였다"라고 전했다.
고인을 장례 치른 9월 10일을 '이주노동자 생명안전의 날'로 선포한 이들은 "매년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산업재해와 중대재해로 희생을 당하고 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매년 9월 10일경 경남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생명안전 투쟁에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연대 활동과 관련해 이들은 "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을 포함하여 전국의 단체들이 이주노동자와 연대 운동을 했다"라며 "이주노동자의 보상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이주노동자의 생명안전에 대한 차별에 근본적 물음을 던졌고, 짧은 시간에 수많은 연대 단위를 형성하였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장례를 '산업재해노동자장(葬)'으로 치른 것에 대해서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과거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더 이상 현장에서 죽지 않기 위해 투쟁을 결의하는 장이었다"라며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이주노동자 산업재해장은 없었다. 경남지역에서 지역사회의 결의를 통해 이주노동자 산재노동자 장을 치르고 이주노동자의 생명안전 투쟁을 결의하였다"라고 강조했다.
투쟁위는 "이주노동자와 국내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했다, 미얀마를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이 장례 및 추모제에 참석하였다"라며 "차이가 차별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다양한 국적을 가진 노동자들이 함께 차별을 넘어 연대라는 구호에 동의하고 투쟁을 결의하였다"라고 밝혔다.
투쟁위는 "우리는 오늘 해산하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생명안전 투쟁에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27세로 한국에 들어온 지 6년째인 고인은 계룡건설 하청 영인산업 소속으로,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했던 함양~울산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신호수로 일하다가 덤프트럭에 깔려 사망했다.
부산고용노동청은 이번 산재사망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