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세계 각국은 기후위기 대응과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각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인 규제 완화가 이뤄져 일회용품 사용 저감 정책의 목표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녹색연합은 일회용품이 다량으로 사용되는 현장을 찾아 사용 실태를 확인했다.[기자말] |
일회용품이 가장 많이 배출되는 곳은 어디일까? 단일공간으로는 단연 '장례식장'이 꼽힌다. 수년 전부터 장례식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법과 제도가 요구되어 왔고 2021년에 이르러서야 국회와 정부가 관련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개정안 검토 과정에서 장례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법률을 폐기했다. 장례식장 일회용품 사용량이 2년 전보다 줄어들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은 틀린 것일까.
"결혼식장 하고 장례식장은 굉장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 문화도―관습이라고 하지요―정착돼 오랫동안 내려온 것들도 있고 조문객이 집중된다는 점도 있겠고 또 만약 제도가 바뀌게 되는 그런 환경이 놓여졌을 때 음식 냄새가 난다든가 소리가 난다든가"
2022년 12월,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에 참여한 한 국회의원의 발언이다.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이 다른 의미를 갖고 있어도 음식 냄새나 소리 문제가 일회용기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혼식장은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자리, 축하하러 온 손님에게 대접하기 위한 자리라는 이유로 다회용기를 써야 한다면 장례식장도 설명이 가능하다. 장례식장은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상주에게 위로를 하는 자리다. 그래서 더욱 예의가 필요한 그런 공간 아닌가.
대부분의 예식장은 공간 특성상 음식을 직접 조리하고 제공한다. 공간 내에서 세척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회용기를 사용이 용이하다. 현재 적용되는 자원재활용법에서는 상례에 참석한 조문객에게 음식물을 제공할 때 조리시설 및 세척시설을 갖춘 곳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조리시설 및 세척시설을 갖춘 장례식장은 전체 장례식장(1131개소)의 12%(140개소)에 불과하다. 즉, 대다수 장례식장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있는 실정이다.
장례식장, 일회용품 얼마나 배출되나?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 및 한국장례협회 조사 결과 우리나라 장례식장 이용률은 95%~97%, 장례식당 조문객 수는 250~256명으로 나타났다. 조문객 중 약 90%가 식사를 하고 조문객 4인 기준으로 사용하는 용기는 밥, 국그릇 4개, 수저 4개, 반찬 접시 7~8개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문객 4인 기준 일회용품 사용량을 전체 장례식에 적용한 결과, 연간 용기류는 1.3억 개, 접시류 1.1억 개, 식기류 1.3억 개를 사용, 중량으로 환산하면 약 2천 톤의 일회용품이 사용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9년 11월, 환경부는 관계부처와 함께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을 발표했다.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규제 적용 업종과 시설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장례식장을 포함할 계획이었다.
과거와 달리 많은 장례식장에서 직접 조리를 하지 않고 조문객 인원에 맞춰 장례식장으로 음식을 주문한 후 빈소에서 음식을 그릇에 나눠 담고 상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서 일회용품 사용금지 대상인 '조리시설 및 세척시설'을 '세척시설'로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2021년부터는 컵, 수저 등의 식기부터 사용을 금지하고 접시와 용기 등은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척시설로의 법률 개정이 전제가 되어야 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환경부는 장례식장 전체를 일회용품 사용 규제 대상 업종으로 규정하되 시행일을 공포 후 3년으로 유예하자는 입장을 냈다. 이렇게 보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체 장례식장 1131개소 중 세척 시설을 갖춘 장례식장이 997개 소다. 현재 규제 가능한 대상이 88%나 되지만, 전체 장례식장을 대상으로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시행일을 유예하겠다는 것은 준비를 이유로 향후 3년간 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당시 회의에서 의견이 분분한 채로 논의되다가 법 조문을 남겨두자는 의견조차도 반영되지 못했다. 결국 장례식장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2023년 9월 현재까지도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법을 다시 발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4년 총선이 지나고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 의문이다.
김해시의 실험, 어디까지 왔나
최근 2~3년 동안 많은 지자체에서 관할 지역 내 장례식장과 업무협약을 맺고 다회용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자체가 제안하고, 협력하기가 조금 더 수월하다는 이유로 공공 의료기관부터 시작은 했지만 민간장례식장으로 확대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조한 참여로 사업이 중단된 지자체도 있다.
하지만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곳이 있다. 김해시는 지난해 3월 관내 3개 장례식장(14개 빈소)에서 다회용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민간 장례식장과 다회용기 업무협약(2021년 8월)을 맺은 지 7개월 만이다. 2023년 9월 현재, 5개 장례식장 23개 빈소로 확대되었다. 김해시는 향후 관내 14개 장례식장(56개 빈소)에 다회용기 서비스를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김해시의 성공 사례는 지자체의 적극 행정이 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다. 김해시는 2021년부터 공원묘지 플라스틱 조화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조화 근절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탈플라스틱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검토했다. 장례식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2021년 8월, 관내 (민간)장례식장과 1차 간담회 및 다회용기 사용 업무 협약을 맺은 후, 단계적으로 다회용기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김해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다회용기 사용 장례건수는 810건이며, 건당 쓰레기 감소량 35kg로 일회용품이 28.4톤 감소되었다.
김해지역의 장례식장 다회용기 사업은 김해자활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다. 총 17명의 직원이 세척, 회수 등의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용기는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을 포함해 총 9종을 사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예산을 일부 지원받기 때문에 다회용기 서비스 비용이 보다 저렴하게 책정된 상황이지만, 향후 비용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장례식장에서 다회용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을 판매하기도 하고, 상주가 외부에서 상조물품을 가지고 오면 일회용품 이용이 가능하다. 현재 운영 중인 장례식장 중 김해시민장례식장은 일회용품을 전혀 판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장례식장보다 다회용품 이용 비율이 높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다회용기 사업이 확대되려면
"현실적으로는 지금 장례식장에서 쓰는 대부분의 용품이 장례식장이 직접 제공하는 물품이 아니고 외부, 상조회라든지 또는 친목회에서 무상으로 서비스로 친목 차원에서 제공을 하는 건데 그분들께 일회용품 말고 다회용기로 써서 하라 하면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위원회 발언 중
그렇다. 장례식장에서 아무리 다회용기를 사용한다 해도 상주가 외부 상조회 등을 통해 상조물품을 지원받으면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는 회사나 기관의 로고가 새겨진 일회용 상조물품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대기업 상조회가 일회용기가 아닌 다회용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장례식장이 장내 매점을 통해 일회용기 구입 및 사용이 가능하도록 보장하고 있는 점도 다회용기 확대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지난 7월, 서울의료원은 전국 최초로 일회용기 없이 다회용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조회와 회사 등 단체 및 개인을 통해 제공받는 일회용기까지 금지했다고 하니 일회용품 저감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
국고 보조로는 다회용기 사업 지속할 수 없어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회용품이라는 대체재가 마련되어야 한다. 일회용품이 가볍고, 가격이 저렴할 뿐 아니라 쉽게 구할 수 있기에 규제 없이 일회용품 사용을 포기하기 어렵다.
환경부는 다회용품 사용 모델을 발굴하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지자체의 다회용기 사업에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 다회용기 재사용 촉진 지원 사업 예산은 54억 4000만 원이었다. 그중 세척장 건설비용이 42억이므로 실질적인 다회용기 사업에 들어가는 건 12억 4000만 원 수준이다.
2023년 다회용기 재사용 촉진 지원 사업 예산은 67억 9500만 원으로 크게 늘었다. 33개 지자체가 카페, 영화관에서의 다회용컵을, 장례식장 내 다회용기 사용을 위해 국고 보조를 신청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4년 예산은 150억 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년 대비 2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다회용품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재정 지원이 확대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다회용품 지원 사업이 용기 구매와 세척 시설을 건립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장례식장의 경우, 2023년 33개 지자체 중 10개 지자체가 장례식장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나 관련 기관과 자발적 협약을 맺고 용기를 구매한 경우에 그치고, 실질적 운영이 된 경우가 많지 없다. 지금과 같이 다회용기 사용에 따른 비용이 더 발생하는 구조에서는 중앙, 지방정부의 예산 지원이 중단되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지자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법과 제도의 기반 없이는 지자체의 시범사업으로 끝난 사례를 숱하게 보지 않았던가.
김해시 자료에 따르면, 다회용기 사용 전엔 빈소 당 쓰레기봉투(75L)가 7장 발생했지만 다회용기 사용 후에는 2장으로 크게 줄었다. 서울의료원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확인된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에는 빈소당 평균 6.4개의 쓰레기봉투(100L)를 사용했지만, 다회용기를 사용한 지난 7월 한 달 동안 버려진 쓰레기봉투는 빈소당 1.3개라고 밝혔다.
모든 장례식장이 자발적으로 다회용기를 사용하면 가장 좋다. 그러나 기존 설비를 바꾸고, 용기를 수거, 세척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내서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장례식장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 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법률 개정 이후 시행이 될 때까지 정부는 장례식장이 다회용기 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할 준비를 갖추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녹색연합 홈페이지와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