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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아이의 구강 검진 결과 썩은 이가 있어서 치과에 가기로 한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어린이는 겨우 일어나더니 피곤하다고 짜증을 내며 방에서 나왔다. 병원을 가야 하니 준비를 하라고 일렀는데 주말인데 귀찮게 서둘러 나가야 한다고 계속 짜증이다.

"나 안 갈거야. 엄마 마음대로 약속 잡은 거잖아.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정해놓고 나보고 왜 가야 된다고 하는 건데?"

'병원 가기 귀찮은게 누군데. 본인 때문에 병원에 가는 건데 귀찮아도 내가 더 귀찮지 아침부터 왜 저러나~' 싶어 기가 찬다. 갑자기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딱' 하고 끊기는 느낌이다. 

"(속사포 랩 폰으로) 평일에는 엄마가 출근해서 안 되고, 평일 퇴근 시간 이후에는 치과가 문을 안 열고, 이주 전에 토요일로 겨우 예약한 건데 안 가면 어떻게 해! 오늘은 꼭 치료 받아야 돼."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시간이 날지 알 수가 없다. 더 피곤할 일이 생길까 싶어 입이 잔뜩 나온 어린이를 어르고 달랜다. 이건 뭐 유아 때보다 더 하다. 치료를 잘 받으면 다이소에서 쇼핑을 하게 해 주겠다는 공약을 걸고 겨우 데리고 나왔다.

집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가 쏙 빨렸는 데 집을 나와서 딱 다섯 걸음 걷고 나서 다리가 아프다는 둥, 덥다는 둥 온갖 민원을 제기하며 짜증을 내는 어린이.

아이가 어릴 때도 하던 퇴사 고민
 
사춘기는 괴로워 머리를 쥐어 뜯을 정도로 서로 괴로운 시기
사춘기는 괴로워머리를 쥐어 뜯을 정도로 서로 괴로운 시기 ⓒ unsplash
 
어릴 때라면 업고라도 갈텐데 이미 아이의 키는 나를 넘어섰다. 이젠 너무 커서 안아주기도 버거운 우리 어린이에게도 그분이 오셨다. 바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리는 '사춘기' 말이다. 기분 좋게 시작되어야 할 아침이 그 거센 바람에 날려 사라져버린 지 이미 오래다.

요즘 들어 아이는 "아 학교 가기 싫어!!!!!! 나 오늘 학교 안가"를 외치며 눈을 뜬다. 

"학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거잖아."
"왜 코로나 때는 안 갔잖아. 지금은 왜 꼭 가야 돼는데? 학교는 하나도 재미없어. 급식도 맛없고, 화장실도 다른 층에 있어서 쉬는 시간에 놀지도 못하고 화장실 가기도 불편하고..."


얼마전에는 노란버스를 타지 않으면 소풍을 갈 수 없게 된 일 때문에 '학교 가기 싫어' 지수가 더욱 높아졌다. 학교 생활에 관한 온갖 민원을 들어주고 있노라면 나라도 가기가 싫어질 것만 같다. 하지만 여기에 말리면 곤란하다. 이런 말 하긴 너무 꼰대같지만 나 때는 '학생은 학교를 가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에게 좋게 타일렀다.

"엄마도 네가 짜증을 내니까 같이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게 되더라. 엄마 기분은 마치 마피아 게임할 때 마피아도 아닌데 마피아로 지목당해서 의심 받는 시민처럼 억울했어. 우리 기분이 나쁘고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짜증 내거나 화 내지 말고 천천히 하나하나 해 보자."

이런 식으로 눈높이에 맞추어서 달래면 아이는 순순히 넘어왔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말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몸도 크고 정신도 쑥쑥 자라서 논리를 들이대며 공격하는데 내 머릿속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가 없으니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

시간 여유라도 있으면 아이의 감정에 좀 더 신경을 써 줄 수 있을 텐데, 아침엔 나도 출근을 해야 한다. 결국 시간이 모자라 고성이 오가고 학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학교에 보내고, 겨우 출근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정신을 차린다. 이래서 커피를 끊을 수가 없다.

아이는 사춘기가 왔으니 그럴 수 있다. 엄마인 나는 아이의 사춘기를 잘 받아들이고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문제는 그 짜증을 받아줄 여유가 없는 직장인인 나였다. 특히 출근 시간에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면서 짜증을 내면 어떻게 해야할지 대책이 없다. 

아침에 아이를 달래서 학교에 보내다 보면 지각하기 일보직전인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회사 일이 많을 때는 온통 신경이 거기에 가 있어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아이의 뾰족함을 받아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업무가 과중해지는 때는 몸도 마음도 내 감정도 힘들다 보니 아이와의 갈등이 더욱 심해지기 일쑤였다. 엄마인 나는 이 아이를 받아주고 보듬어 줘야하는 데 직장일과 병행하려니 힘이 모자랐다.

'아 퇴사해야 하나?'

아이가 어릴 때도 하던 퇴사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도 엄마가 아침에 더 잘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나도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직장을 그만 두는 것까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현실적으로 이제부터 교육비도 더 많이 들테고, 다른 사람들은 아이 다 키웠다고 다시 일하고 싶어하는 때인데 퇴사를 고민하다니 이건 또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잘 견디기 위한 노력들

결혼이 늦어서 아이도 늦게 낳았다. 엄마가 되는 것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화가 나려는 순간, 감정이 폭발하려는 순간 마음을 그때로 돌려보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실종되어가는 감사를 억지로 찾아도 본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감정적으로 아이와 충돌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힘듦이 있었다. 당시에도 아이의 예쁨은 보이지도 않았다. 좋았던 점은 찾기 어려웠다. 그 순간의 좋았던 점은 이상하게 지나고 나야 더 선명하게 보이니까.

아마 지금의 순간도 그럴 것이다. 분명 좋은 점이 있을텐데 내 눈엔 그 장점이 숨은 그림찾기처럼 찾기 어려울 뿐인 거겠지. 아이의 감정기복에 시달려 힘든 날에는 아이가 어릴 적 사진을 찾아본다. 웃어만 줘도 하루의 피로가 눈녹듯 사라졌던 그때의 사진들 말이다.

육아선배들이 효도는 귀여울 적에 다 한다더니 그 말은 사실이었던 것일까? 일부러 핸드폰의 바탕화면을 아이의 사진이 랜덤하게 나오도록 세팅해 놓았다. 바탕화면을 바라보며 "이 아이가 바로 그 아이다"라고 매일매일 되뇌인다. 그래 저도 크느라 힘들겠지. 몸과 마음이 자라는 것이, 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그리 쉬울리가 없겠지. 

나도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었다. 오죽하면 내 동생이 "언니는 엄청 착했는데 사춘기 때 괴물이 되었어"라고까지 했다. 내가 어른이니까 조금 더 참고 이 시기를 잘 견뎌봐야겠다라는 마음을 굳게 다시 한 번 먹는다. 그리고 스스로 몇 가지 수칙을 정했다. 이 시기를 무사히 보내기 위해.

1. 이 아이가 바로 그 사진 속 귀여운 아이임을 잊지말 것.
2. 절대 감정적으로 맞서지 말 것(싸우지 말자).
3. 같이 즐길 거리를 찾자(특히 아이돌 같이 덕질하기). 

혹독한 그 시기는 언제쯤 끝날지 잘 모르겠지만 잘 견뎌보려고 한다. 사춘기 육아를 극한 난이도의 캐릭터 육성 게임이라 생각하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말이다. 비 오는 날이라도 구름 위에는 태양이 찬란히 빛나고 있을 테니, 이 폭풍도 언젠가는 끝나겠지. 사춘기 어린이와 함께 생활하는 모든 부모님들 화이팅.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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