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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암 이종일 선생
묵암 이종일 선생 ⓒ 묵암 이종일 선생 기념사업회
 
민족대표들은 끌려간 3월 1일 오후부터 총독부 경무총감부에서 경찰의 신문조서를 받았다. 이종일은 3.1거사의 명분이나 독립운동의 이유 등에서는 철저하게 원칙과 신념을 지켰으나 동지와 회사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끔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였다.

첫날의 경찰 신문조서이다.(이하 인용은 이병헌의 『3.1운동비사』, 시사시보사, 1959.)

문 본적, 주소, 출생지, 신분, 직업, 성명, 연령은?
답 본적은 경성부 경운동 78번지, 주소는 본적지와 동일. 출생지는 경기도 포천군 면동, 양반, 『천도교회월보』 사장, 이종일. 62세.

문 피고는 인쇄소 경영을 하고 있는가?
답 경성부 수송동 44번지 보성중학교 내 보성사라는 인쇄소를 하고 있다.

문 피고는 조선민족 대표자로서 선언서를 인쇄하고 대표자 33명 명의로 이것을 배포한 일이 있는가?
답 오세창과 권동진이 부탁하여 인쇄했고 원문은 오세창이 가지고 왔는데 누가 작성한 것 인지는 알지 못한다.
 
 <자주독립선언문> 원본
<자주독립선언문> 원본 ⓒ 묵암 이종일 선생 기념사업회
 
문 선언서는 얼마나 인쇄했는가?
답 2만 1천 매를 인쇄했고 인쇄비는 받지 않았는데 자본금은 천도교에서 출자했기 때문이다.

문 피고가 대표자가 된 동기는 무엇인가?
답 나는 광무 2년부터 약 10년간 『제국신문』 사장으로 있었는데 민족적 사상은 버리지 않고 있었다. 이제 조선은 합병이 되었으나 독립국이 되려면 선언서의 대표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 독립국이 되기 위하여 선언서를 인쇄하기로 하자고 처음 누가 발언했는가?
답 나는 경성부 돈의동에 사는 오세창이 유럽전쟁 후 평화회의가 있고 이태왕 전하의 장의가 있어 많은 사람이 집합할 것이므로 이에 선언서를 인쇄하여 배포할 것이니 인쇄해 달라고 하여 인쇄한 것이다. 나는 그 대표자의 한 사람이었다.

문 피고는 건의서와 청원서에 서명 날인한 일이 있는가?
답 2월 26일 밤 오세창 집에서 건의서와 청원서에 날인할 것이니 27일 오라고 했다. 나는 바쁘니 갈 수 없다고 인장을 주면서 날인해 달라고 권동진에게 위임했다.

문 피고들이 명월관 지점에 모였을 때 학생이 온 일이 있는가?
답 어떤 학생인지 알 수 없어도 세 명이 와서 오늘 오후 1시 30분경에 선언서를 발표한다고 하더니 어째서 요리점에 있는가. 파고다 공원으로 가서 발표하라고 했으나 못 가겠다고 하여 학생들은 곧 돌아갔다.

대정 8년 3월 1일
피고인 이종일
경무총감부에서
순사 장원맹부(莊原孟夫)
순사보 이양상
 

#이종일#이종일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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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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