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이번 지방소멸 대응기금 사업에서 가장 높은 A등급으로 책정되어 210억의 기금을 확보했다. 함양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많은 예산을 확보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소멸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세대의 인구감소와 유출, 일자리 부족 등 함양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막막할 정도로 산적해있다. 청년인구를 유입시키고 유출을 막는 것은 우열을 가릴 것 없이 시급한 문제다. 청년세대는 인구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세대다. 현재 함양군뿐만 아니라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세대를 유입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혹자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인구 유치를 위해 힘쓰는 사태를 보며 지방을 찾아온 청년들이 힘든 일을 싫어하고 지원금만 밝힌다며 비판한다. 정말 청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환경에서 청년들이 행복하게 정착할 수 있을까? 이에 본지는 이미 함양에서 살고 있는 청년의 삶 속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 청년들이 함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
"함양에 연고요? 굳이 따지자면 아버지께서 교사로서 발령받은 첫 번째 학교가 안의고등학교였어요."
경남 함양과의 연고를 묻는 질문에 정현석씨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을 이어갔다. 특별한 연고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첫 발령지이자 본인의 첫 발령지가 함양이 되었다. 색다른 인연으로 시작한 관계가 벌써 5개월이 됐다.
"공중보건의는 병역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공중보건업무에 종사할 것을 명령받은 사람들을 말하는데요. 종류로는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군 복무 수단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요. 주로 의료취약지역에 발령을 받습니다."
올해 3월 군사 기초 훈련을 마치고 4월 서상과 서하에 발령을 받은 정현석씨. 정현석씨는 어떻게 한의사가 되었을까?
거제시가 고향인 정현석씨는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교사인 아버지를 보며 선생님의 꿈을 갖고 있던 현석씨는 교대를 가기 위해 삼수를 했다. 삼수 끝에 본 수능 점수가 잘 나와서 행복한 고민 끝에 대전대 한의학과에 진학했다.
"입학하고서 1학년 때는 한의학에 정을 못 붙였어요. 과학적이라고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근거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학과에 매력을 못 느끼고 방황할 때마다 공부를 많이 했어요. 침과 한약, 생리학과 병리학, 약재학 등 한의학의 근거를 찾아보려고 했어요."
한의학과에 힘들게 들어왔던 만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더욱 공부에 전념했다는 정현석씨. 결국 그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한의대는 예과 2년과 본과 4년을 모두 마치면 졸업을 하거든요. 제가 본과 2학년 때를 기준으로 한의학에 애정을 갖게 됐어요. 제 전 여자친구가 생리통이 극심했거든요. 진통제 효과가 안 들었어요. 얼마나 심했냐면 아파서 쓰러져 응급실에 갈 정도였거든요.
한약국을 통해 제가 직접 한약을 지어서 여자친구에게 주었는데 정말 먹자마자 하루만에 생리통이 싹 사라졌어요. 생리통 말고도 갖고 있던 다른 불편한 증상인 구역감이나 두통, 피로감 역시 없어졌어요. 이렇게 나아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까 더 파고들게 됐어요.
한의학은 경험의학적인 측면이 있어서 사실 일반 병원과 비교하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한의학 관련 연구도 활발하고 가장 최신의 생리학, 병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의학 치료를 하기 때문에 치료효과도 좋아요. 그래서 병이나 처방을 설명할 때도 점점 현대인이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을 쓰게 돼요.
과거의 한의학 표현에 거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 조금 더 검증되고 과학적인 표현을 쓰는 게 추세예요. 예를 들어 과거에는 부항을 했을 때 검은색을 띄는 피를 '어혈'이라고 표현했다면, 요즘은 혈류순환 부족으로 산소포화도가 낮아져서 피가 검은색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거든요."
서상면과 서하면의 공중보건의로 지낸다는 건
공중보건의 자리로 처음 환자를 대하게 된 정현석씨. 한의사로서 첫 발걸음을 시작한 만큼 느낌도 남다르다.
"아무래도 처음 환자를 대하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 긴장도 되고 손도 떨렸어요. 잘 나오던 말도 조금 버벅거렸던 것 같은데 제 진료와 처방을 통해 상태가 호전되는 걸 눈으로 확인하다 보니까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병원이나 의원가도 안 나았었는데 저에게 진료를 받고 나았다는 환자분 말씀 들을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아요."
현석씨에게는 환자의 감사인사가 동기부여가 됐다. 더 훌륭한 한의사가 되기 위해 쉬는 날이나 퇴근 이후에도 공부에 전념한다.
"요즘은 생리학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인체가 정상일 때 어떤 흐름으로 돌아가는지 잘 알아야 정상으로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학생 시절부터 궁금한 영역 공부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공부가 자연스러워요."
4월에 처음 환자를 만났던 현석씨는 아직 5개월밖에 근무를 안 했지만 벌써 서상과 서하에 많은 환자를 만났다. 구체적으로 실감한 때는 9월 16일 열린 서상솔밭길 꽃축제. 이날 진행된 행사장에서 거의 세 걸음에 한 번 인사할 정도로 환자들을 만났다. 벌써 지역민들에게는 인기스타가 됐다.
"벌써 안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신기하기도 하고요. 가끔은 환자분들이 반찬이나 과일을 챙겨주실 때도 잦아요. 안 주셔도 된다고 해도 안 받아주면 토라지시는 분도 계세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그럴 때마다 이 지역에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언젠가 벌에 쏘인 환자가 보건지소를 찾았는데 제도적으로 한의사가 처방할 수 없는 약이라 의원이나 병원을 권했다가 욕을 얻어먹은 일도 있었다.
"벌에 쏘이면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해야 하는데 한의사는 처방할 수 없는 약이거든요. 그런데 서상면과 서하면에 의사와 한의사가 순회진료를 보다 보니까 그런 일이 발생해요. 지식으로 어떤 약을 처방해야 하는지 알아도 제도적으로 안 되는 일이거든요. 의원이나 병원을 안내해 드리면서도 마음이 안 좋았어요."
"처음 서상에 도착했을 때 정말 막막했어요"
서상면에 마련된 공중보건의의 관사에서 지내는 현석씨. 처음 서상면에 도착했을 때는 사실 막막했다. 배달 어플은 기본이고 걸어서 찾아가려고 해도 마땅한 음식점도 없었다.
"공기는 참 좋은데 이 지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기가 힘들었어요. 공부하거나 수영, 헬스하는 게 취미인데 그래서 장수읍에 있는 온누리전당수영장에 자주 가요. 차로 30분 걸려요."
생활 인프라도 그렇지만 또래가 한 명도 안 보이는 것도 막막함을 더했다.
"환자분을 만나 직업적인 보람을 얻는다고 해도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해소할 순 없는 거 같아요. 또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데 어디로 가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지 찾을 수 없어서 힘들었어요."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를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외로움과 무료함에 답답했던 현석씨는 포털사이트에 '함양 할 만 한 것'을 검색하다 우연하게 이소를 알게 됐다.
"답답한 마음에 그렇게 검색을 했는데 어떤 블로그 글을 보게 됐고 그렇게 이소에 들어오게 됐어요. 저처럼 연고 없는 사람들이 타지 생활할 때 이런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청년단체가 꼭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저와 함께 공중보건의를 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은 광양이나 구례 등 발령을 받아서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변에 이소같은 단체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이런 단체가 정말 고마워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청년이나 함양에 발령을 받은 청년 등 함양에 삶의 터전을 꾸리게 된 청년에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청년단체는 안식처 역할이 되기도 한다. 현석씨처럼 우연한 계기로 함양을 만난 청년이 함양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점점 더 함양에 사는 청년이 많아지지 않을까 꿈꿔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