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의 귀향길은 멀고 험했다.
5일 오전 10시 30분. 고 김한홍의 유해가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제일 먼저 고인의 유해를 맞이한 사람은 오영훈 제주지사였다. 오 지사는 유해 앞에서 예를 표한 뒤 흐느끼는 유가족의 손을 잡고 "74년이 걸렸다, 죄송하다"며 위로했다.
오전 11시 30분. 고인의 유해가 제주 조천면 북촌 생가에 도착했다. 폐허가 된 고인의 생가터에는 머위대가 무더기로 자라 고인을 맞았다. 74년 만의 귀향에 유가족들은 눈물을 쏟아냈다.
고인은 1949년 제주 4.3 당시 제주 북촌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26살 평범한 청년이었다. 토벌대와 무장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했고 살기 위해 산으로 도망쳤다. 자수하면 살려준다는 말을 믿고 마을로 내려왔지만, 주정 공장으로 끌려갔다. 그 뒤 소식이 끊겼다.
이후 13년이 흘렀지만 돌아오지 않자, 그때 서야 가족들은 사망신고를 했다. 대전 골령골로 끌려가 학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지난 2002년 4.3 행방불명인 신고 때였다. 알고보니 고인은 7년 형을 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중 1950년 한국전쟁 때 골령골로 끌려가 집단학살됐다.
고인의 아들 김문추는 이때부터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풀고 유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골령골 유해 발굴이 본격화되자 2018년 유전자 검사를 위해 채혈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부른 불법적인 군사재판에 대한 재심도 청구했다.
하지만 아들 김문추는 아버지 유해를 찾지 못하고 지난 2020년 세상을 등졌다. 고인의 유해는 2021년 골령골 A 구역에서 발굴됐다. 지난 8월 군사재판 청구 재심에서 고인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어 제주도와 제주 4.3 평화재단의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 1차 시범사업(70구)을 통해 최근 유전자 검사 결과 신원이 확인됐다.
고인 며느리 백여옥씨의 또 다른 아픔
"친인척 18명 희생... 내 눈 앞에서 11명 죽음 목격"
고인의 유해를 유독 깊은 슬픔으로 맞이한 사람 중에는 아들 김춘추의 부인인 백여옥씨(82)도 있었다. 백씨는 대전 골령골에서 시아버지 외에 아버지도 제주 4.3 사건에 연관돼 희생됐다.
백씨는 "4.3으로 시아버님을 비롯해 친아버지 등 친인척 18명이 북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희생됐다"며 "이 중 11명이 눈앞에서 희생되는 걸 직접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4.3 하면 피눈물이 난다"며 "저도, 남편도 4.3으로 고아가 돼 한평생 갖은 고생을 다 했다"고 덧붙였다.
백씨가 목격한 북촌마을 학살은 1949년 1월 17일 마을주민 350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무장대가 근처를 지나가던 군인을 공격해 2명이 사망하자 군인들이 보복에 나서 인근 북촌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학교 마당에 집결시킨 뒤 인근 밭인 너븐숭이에서 부녀자, 아이들, 갓난아기, 노인 등을 가리지 않고 총살했다. 이튿날에는 살아남은 사람 수십여 명을 함덕리로 끌고가 살해했다.
이날 오 지사는 생가 부근에서 개최된 '제주 4.3 희생자 유해 봉환식'에서 "고인처럼 복역 중 희생됐지만 행방을 알 수 없는 수형인은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이제 한 분의 신원을 확인했을 뿐이다.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전 골령골을 비롯해 광주와 전주, 김천 등 4.3 수형인의 기록이 남아 있는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에 온 힘을 다해 하루빨리 유해를 가족의 품에 안겨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2시 30분. 제주 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신원확인 보고회에 이어 고인의 유해가 4.3평화공원 봉안당에 봉안됐다. 제주가 아닌 육지에서 온 4.3 희생자의 첫 유해 봉안이다.
현재까지 수형자명부를 통해 확인된 제주 4.3 관련 행방불명 수형인은 대전 골령골 274명을 비롯해 모두 1700여 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