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농촌마을이 늘고 있다. 학업·취업을 위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청년인구의 빈자리를 메꿀 유입 인구는 더딘 채 농촌마을의 고령화는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시골 사람들은 이러다 마을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충남 예산군 고령인구비율(65세 이상)은 8월 기준 33.8%로 10년 전과 견줘 10% 증가했다. 2022년 예산군 출생인구는 231명인데 비해 사망자는 7.7배인 1777명에 달한다.
이처럼 인구감소로 마을에 일할 사람들이 하나둘씩 줄고, 마을 정체성을 형성하고 구심점 역할을 했던 전통들이 사라지고 있다. 마을 자체 역량만으로는 마을의 소멸위기를 타개할 뾰족한 방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농촌마을 소멸 위기, 그들이 의기투합한 이유
최근 예산군 전현직 교사·공무원 등 5명은 지난 5월 '예산군마을영화제작단'을 꾸리고 사라질 위기에 놓인 농촌 마을의 문화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농촌마을이 봉착한 현실을 마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이들은 모두 '예산참여자치연대' 회원들로 그동안 의정모니터링과 행정사무감사 참여 등 군정·의정활동을 감시하고, 환경·인권·지방분권 등의 분야에서 지역사회에 적극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마을영화제작단 대표는 힙합축제, 의좋은형제축제, 국제풍물축제 등 기존 굵직한 행사를 맡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경험이 있는 정기정씨가, 기획·영화제추진위원장은 대술초등학교 교사인 구성현 예산참여자치연대 대표가 맡았다.
홍보 분야는 지역에서 현업으로 기획광고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현진씨, 조직 지원과 장비 확보 등 운영관리엔 김영진씨가, 연대협력 분야는 지역사회에서 많은 단체들과 교류한 경험이 있는 한택호 전 예산참여자치연대 대표 등이 마을영화제작단에 함께하고 있다.
구 위원장은 "사라져가는 아이들과 침체된 마을들, 그럼에도 귀농귀촌인들과 마을을 지켰던 사람들은 한데 어우러져 예산 마을 공동체를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이런 생생한 장면을 기록하고 많은 예산군민들과 공유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예산마을영화제작단'을 출범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려는 일은 상업적인 대중영화나 거창한 작품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찍고, 이를 예산 사람들이 보고 공감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것이 이어져 내년엔 또 다른 이야기를 주제로 또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제작한다면, 이 또한 예산에서 창출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영화제를 통해 침체된 예산지역의 마을에 생동감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사라져 가는 농촌마을
그에 따르면 영화제는 아이들이 사라져 가는 농촌마을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던 사람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을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나눈 것이 계기가 됐다.
이들은 때마침 올해 '예산군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추진단'이 추진한 자율공모사업이 좋은 기회라 판단했다. 그동안 고민했던 내용을 영화로 제작해 농촌마을의 현실을 알리는 일이 곧 농촌활력 사업취지와 부합하는 것이라 보고, 지난 5월 '예산마을영화제'를 하겠다고 신청해 6월에 선정됐다.
'예산을 기록하다'라는 부제가 달린 예산마을영화제는 영화제작과 영화제 운영으로 나눠 진행한다. 영화제작은 현영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구성현 위원장, 정기정 대표가 맡았다.
지난해 '시산리 마을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했던 현영애 감독은 '청년농부'와 '최고령 농부' 2편의 영화를 제작 중이다. '청년농부'는 신양 여래미리에서 마을협동조합을 만들며 어떻게든 농촌에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청년 농부가 주인공이다. 현 감독은 한 청년농부를 통해 대장간, 몸살림 운동, 과수원 상황, 마을의 유래 등을 농촌의 모습을 담는다.
응봉 주령리가 배경인 영화 '최고령 농부'는 젊은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서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은 한 고령의 농민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마을주요행사·전설·풍경 등의 일상과 최고령 현역 농민을 통해 '농사를 짓는다는 것, 그리고 농민의 삶과 마을의 현재'를 전한다.
구성현 위원장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아이들의 성장'은 자연친화적인 소규모 농촌 학교를 배경으로 한 6학년 8명의 성장 이야기다.
그는 "아이들마다 개성이 다르고 상처도 있다. 학교가 작다보니 이런 면들이 더 도드라지게 보인다"며 "영화를 통해 그들이 사춘기를 겪으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대술초등학교 학생자치회 다모임을 통한 학생중심 학교 교육과정을 소개하고, 학생·학부모·교직원이 어떻게 공동체성을 구현하는지를 그려내고 싶다는 말도 더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그래도 가치 있는
정기정 대표는 지역 대안학교인 '사과꽃발도르프'를 다룬다. 많은 예산 군민들은 이 학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결정은 누가 하는지 등 학교의 실제 모습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점에 착안했다. 영화는 다른 학교에서 볼 수 없는 학부모회의, 운영진·학부모·아이들이 학교 운영방식을 소개한다.
이렇게 자체 제작한 총 4편의 영화는 제작단 영화선정위원회가 별도로 선정한 작품들과 함께 '예산마을영화제'를 통해 오는 11월 17일부터 군민들에게 선보인다.
영화제는 먼저 예산시네마에서 11월 17일 개막프로그램과 개막작 2편 상영을 시작으로, 18일 6편, 19일 폐막작 2편 상영과 폐막프로그램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영화제에 뒤이어 응봉커뮤니티센터(11월 24일), 신양행복지원센터(12월 1일), 예산군행복마을지원센터(12월 8일)에서 ▲추가상영관 운영 ▲영화제 관련 활동 자체평가와 향후 계획 구상 ▲다시보고 싶은 영화 대표작 상영 ▲후원의 밤 등의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구 위원장은 "우리가 기록하려는 것은 사라져가는 아이들,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모습"이라며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찍고, 이걸 보는 예산 사람들에게 우리 이웃이 어떤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리고 싶다"고 제작에 임하는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영화 제작과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모든 과정과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것 역시 기존에 없던 예산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이런 작업이 더 나은 예산을 위한 기록이 되길 바라고, 이를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