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은 그 가문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윗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통음식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전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집안의 전통음식, 옛 음식을 전수해 줄 함양의 숨은 손맛을 찾아 그들의 요리 이야기와 인생 레시피를 들어본다.[기자말] |
경남 함양읍에 살고 있는 경주 김씨 김노미씨는 올해로 아흔이 됐다. 그녀는 워낙 음식 솜씨가 좋아 주변 이들에게 아는 사람만 아는 숨겨진 고수라 불린다. 장날이면 시장에 내다 파는 실고추와 알밤 채는 주름진 손이 무색할 만큼이나 가늘고 정교하다.
김씨는 제철에 나는 재료를 미리 손질해 1년 내 사용할 것을 준비해 놓는다며 포장한 것을 내보이기도 했다. 투명한 비닐에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단단히 묶여 있는 재료는 그녀의 야무진 성격을 감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아직도 자신의 일은 남에게 맡기질 못하겠단다.
"내 손으로 먹고살았어, 내 손 이걸로 갖고 먹고살았어"
김씨의 인생사는 '치열함'으로 집약된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함양으로 오게 됐다. 열일곱의 나이에 결혼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마흔아홉 되던 해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홀로 오 남매를 키워 온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말도 못 하게 고생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들 맨날 공부한다고 돈 달라하는데 못 줘서 고생, 마구에 빼빼 마른 소 사다 놓고 죽어버리니까 먹여 살리려 고생이었지."
힘겨웠던 그때의 기억을 나지막이 읊기도 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늘 그녀를 때리려 해, 숨어 다니며 살던 날도 있었다.
당시 김노미씨에게 요리는 그저 생계 수단이었다. 어린 시절 함양으로 옮겨온 김노미 씨 주변에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서른한 살부터 장사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장사 일을 이어오며 오 남매를 직접 먹여 살리는 것도, 그럴듯한 집을 일궈내는 것도,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다.
타고난 음식 솜씨
김노미씨의 다부진 솜씨는 예전부터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누구에게 요리를 따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먹고 살기 급급하던 시절 자연스레 음식 하는 것이 손에 익은 탓이다.
그녀는 자신이 한 음식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노모당에도 자주 갖다주곤 했다고 말했다. 워낙 맛이 좋아 잔치만 하면 자신을 불러, 누가 결혼할 때면 "또 나 부르면 우짜꼬"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유독 많은 이들이 좋아했던 음식이 바로 깻잎김치다. 특히나 가을철에 나오는 단풍 깻잎으로 음식을 하면 맛이 아주 좋다고 했다. 여름에 수확하는 깻잎은 초록색을 띠지만 가을이 되면 노랗게 단풍이 든다.
단풍 깻잎은 일반 깻잎에 비할 수도 없을 만큼 고소하고 향이 진하다. 다만 들깨를 다 수확한 후 기다려야만 딸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단풍 깻잎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자루 따 와도 깨끗하고 먹기 좋은 것만 일일이 선별하다 보면 남는 것이 얼마 없다고 한다.
김노미씨가 손수 만드는 깻잎김치를 가장 맛있게 먹는 사람은 자식들, 그중에서도 막내아들이다. 김씨는 요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조화라고 했다.
"음식이 달아도 안 되고 짜도 안 되고 여러 재료의 조화가 맞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것이 음식이고 요리사라 표현했다. 김노미 씨는 "우리 아들이 엄마 반찬은 너무 안 달고 너무 안 짜고 간간해 좋다" 말한다며 나름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요리에 담긴 인생
김노미씨에게 요리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녀의 요리에는 의지할 곳 하나 없던 시절, 치열하게 살아온 그녀의 젊은 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죽지 못해 했던 요리는 자식들 먹는 모습 하나 보기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 않는 어머니의 사랑이 되었다.
김씨는 "반찬 가게에서 사 먹으면 되지 자꾸 나를 부려 애 먹인다"며 싫은 티를 내다가도 "엄마, 엄마 반찬 아니면 안 넘어가"하는 소리에 또 조그맣게 담아 건네주곤 한다고 말했다. 힘이 들다가도 맛있다 하면 기분이 좋고, 주는 재미에 즐거워서 한다며 내심 기분 좋은 웃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깻잎김치>
재료
깻잎 100장, 물 2L, 다시마 2개
양파 반개, 멸치 2컵(종이컵 기준)
멸치젓갈 1컵, 삼치 젓갈 1컵
진간장 2컵, 물엿 반 컵
다진 마늘 1/3컵, 고춧가루 3컵
통깨 1/3컵, 멸치 가루 1/3컵
알밤 채 반 컵, 실고추
순서
깻잎과 장물은 하루 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1. 준비한 깻잎을 흐르는 물에 씻는다.
2. 깻잎을 채반에 받쳐 물기를 빼준다.
3. 깻잎 물기가 완전히 제거될 수 있도록 하루 정도 실온에 말려준다.
4. 물 2L, 다시마 2개 양파 반 개, 멸치 2컵을 40분 정도 달여준다.
5. 끓인 육수를 종이컵 3컵 정도 따로 담아준다.
6. 끓인 육수에 멸치젓갈 1컵, 삼치 젓갈 1컵, 진간장 2컵, 물엿 반 컵을 넣고 섞어준다.
7. 완성된 장물은 하루 정도 실온에 식혀준다.
8. 말려둔 깻잎을 크기대로 맞춰 포개어준다.
9. 크기대로 맞춰둔 깻잎의 줄기 부분을 살짝 남겨두고 잘라준다.
✽참고: 줄기를 살짝 남겨두면 완성된 깻잎김치를 한 장씩 집어 먹을 때 좋다.
10. 준비한 장물에 다진 마늘 1/3컵, 고춧가루 3컵, 멸치 가루 1/3컵, 통깨 1/3컵, 알밤 채 반 컵을 넣고 잘 섞어준다.
✽참고: 하얀 빛을 띠는 알밤 채는 양념장에 넣었을 때 보기 좋다. 완성된 깻잎김치를 먹을 때 알밤 채가 하나씩 씹히면 고소한 맛이 함께 난다고 한다.
11. 말려둔 깻잎을 한 장씩 양념장에 담그고 몇 번 휘저어 준다.
12. 양념장이 골고루 발라진 깻잎을 포개어 담아준다.
13. 양념장에 담근 깻잎을 꾹 짜준다.
✽참고: 깻잎김치 위에 실고추를 올려 장식하면 보기에 좋다.
14. 완성된 깻잎김치는 바로 냉장고에 보관해 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 (주간함양)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