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은 국민에게 가장 필요하며 가장 가까운 사회 복지 제도지만 쉽고 가까운 제도는 아니다. 이럴 때 국민이 전화해 찾는 게 바로 고객센터 상담사다. 이들은 민간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고객센터를 소속 기관으로 전환해 상담을 통합 운영하기로 2021년 결정했지만 2년간이나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노동기본권 향상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공공기관의 역할 방기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간접고용의 폐해, 상담의 전문성 담보하지 못해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세 편의 연속 기고를 통해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편집자말] |
국민건강보험공단(아래 공단)은 가입자인 국민에게 각종 안내문을 보낸다. 국민은 각종 고시와 법령으로 이루어진 안내문을 받으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국민건강보험공단 대표번호인 1577-1000번으로 문의할 수밖에 없다. 제도를 규정하는 단어부터 건강보험을 잘 모르는 국민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국민은 대표번호로 전화했으니 공단의 직원과 상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전화를 받는 상담사는 공단의 직원이 아니라 민간 용역업체 소속이다.
공단은 전 국민이 쉽고 빠르게 건강보험에 접근할 수 있도록 2006년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를 민간으로 외주해 설립했다. 고객센터는 1577-1000번으로 연결되며, 현재 전국 12개 민간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상담사들이 국민과 최접점에서 소통하고 있다. 건강보험 자격, 보험료, 보험급여, 건강검진, 의료급여,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세부 업무와 4대 사회보험 징수 통합 관련 업무 등 총 1091종의 상담 업무를 공공기관 고객센터 중 최대 규모인 1600여 명의 상담사가 하고 있다.
민간업체 상담사에게 사번 부여
2006년부터 현재까지 고객센터에서 근무했고, 근무하고 있는 모든 상담사에게는 공단이 부여한 사번이 있다. 이 사번으로 상담사가 어느 센터인지 구분하고 몇 년도 몇 번째 입사자인지 구분할 수 있다. 또한 상담사는 부여받은 사번으로 매일 공단 전산망(텔레웹)에 접속해 상담 업무를 처리한다. 입사 이후 임금 내역을 제외하고 근태 현황, 콜 수 등도 모두 조회할 수 있다. 2006년 이후 18년간 민간 용역업체는 바뀌어도 상담사가 입사했을 때 공단이 부여한 사번은 변하지 않는다.
공단이 고객센터를 외주했어도 상담사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객센터의 업무가 공단의 업무와 구분되는 독립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객센터 업무는 공단의 지사가 수행하는 업무와 대부분의 영역이 겹칠 정도로 독자적인 업무 영역인 안내 서비스만으로 구별되거나 한정되지 않는다.
또한 공단이 광범위한 전 국민의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하고 있으며, 고객센터 또한 단순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대부분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고, 개인정보를 열람하는 상세 상담을 한다. 성명, 주소지(주민등록상 세부 주소), 건강보험 가입정보(직장, 지역, 피부양자 여부), 연락처, 가족관계 등 인적사항 정보뿐 아니라 소득, 재산 상황, 병원 진료기록, 건강검진, 장애등록 여부 등에 이르기까지 상담 업무에 따라 민감한 개인정보에 접근하고 열람이 가능해 높은 공공성과 책임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고객센터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책임은 외면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의 출생에서 사망까지 평생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보장 제도다. 개인 5138만 명뿐만 아니라 사업장 190만 개, 요양기관 9만 7천 개, 장기요양 수급자 83만 명, 시설 2만 5천 개 등도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대국민 서비스를 지원하는 공단은 제도 변경으로 인한 다양한 민원으로 신속하게 국민의 문의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상담, 지사 방문이 어려운 장애인과 노년층과 같은 취약 계층의 건강권 및 의료 접근성 보장을 위해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가 그 필수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후 건강보험의 각종 제도 안내와 신속하고 정확하게 상담하기를 원하는 사회적 요구와 제도적 필요로 고객센터가 더욱 확장됐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 대응 등 감염병 위기에 따른 재난적 상황에서 질병관리본청 콜센터(1399)와 업무를 연계해 상담하면서 비대면 업무 처리의 중요성도 대두됐다.
그러나 공단은 업체 평가를 통해 고객센터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명감과 역할보다, 밀려드는 민원 전화를 대충 상담하고 빨리 끊을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감시·통제 시스템을 통해서 말이다. 나아가 공단은 고객센터의 민원 응대 결과를 민간에 맡겼다는 이유로 그 책임도 회피한다.
민간 용역업체 전문성 부족, 피해는 상담사와 국민에게
현재 '민간 용역업체'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는 건강보험에 대한 전문성이 없고, 상담에 필요한 전문 장비와 시설, 그에 대한 유지·보수까지도 공단에서 받으면서 그저 노무 관리만 하고 있다. 결국 체계적인 교육 상담, 직무 훈련 시스템의 한계로 노동자는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며 숙련을 쌓을 수밖에 없다. 상담의 전문성을 업체가 아니라 상담사가 가지고 있다 보니 공단도 업체 도급계약 시 상담사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그 책임을 공단이 아닌 개인이 지는 것이다. 상담사가 완벽하면 좋겠지만 상담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전문성 없는 민간이 맡다 보니 업무 교육이 부족해 상담을 요청하는 고객보다 더 늦게 변경되는 업무를 아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책임은 상담사가 지거나 민간업체가 해결해야 한다. 상담사는 국민을 위한 상담을 했고, 국가의 핵심 사업을 수행했지만 결국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정의도 알지 못하는 민간 업체들이 무슨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답은 없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게 된다. 어쩌면 건강보험 고객센터를 민간 위탁한 2006년부터 건강보험의 공공성은 잃어버린 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건강보험의 공공성 위해 '소속 기관 전환' 이행해야
2021년 10월 21일 공단은 고객센터를 공단의 소속기관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전환 결정을 한 큰 이유는 공공성과 효율성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적절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 사업이다. 2년마다 용역업체가 바뀌는 불안한 고용으로부터 해방되고, 공단과 고객센터 간의 업무 연계를 분절하지 않아야 건강보험 서비스 질이 올라가고 전 국민이 안정적인 건강보험 상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기다릴 수가 없다. 공단은 조속히 '소속 기관 전환'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조은 기자는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조합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