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이 10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집권 이래 가장 큰 고비를 맞았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관심사는 패배의 원인 제공자이자 책임자인 윤 대통령이 '변할 것인가, 변하지 않을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만약 내기를 한다면 저는 주저 없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걸겠습니다. 위장 변화나 눈속임 변화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윤 대통령, 변할까
윤 대통령은 보궐선거 다음 날, 국민의힘에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주문했습니다. 자신의 평소 언행에도 어울리지 않은 주문에, 그동안 윤 정권 편들기 보도를 열심히 해왔던 조·중·동마저 회초리를 들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17일 국민통합위 만찬),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18일 참모회의), "나부터 민생현장을 더 파고들겠다"(19일 참모회의)라면서 '반성과 변화'를 강조하는 시늉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성과 변화는 말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저는 단적으로 두 가지를 보고 윤 대통령이 말하는 반성과 변화가 '가짜'라고 판단했습니다. 하나는 검찰의 태도고, 또 하나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밀어붙이는 언론장악 기도입니다.
먼저, 검찰의 태도를 봅시다. 검찰은 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위증 혐의로 쪼개기 기소했습니다. 또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에서 검찰의 문제를 지적하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신봉수 수원지검장 등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질의의 적절성까지 문제 삼으며 맞받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호위대 노릇을 하는 검찰의 이런 오만불손한 태도는, 윤 대통령이 말하는 반성·소통·민생 중시가 빈말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KBS 사장 후보와 방심위원장, 모두 '법조언론인클럽' 회장 출신
윤 대통령이 '반성'이란 단어를 처음 입에 올린 17일, 자신이 점 찍은 박민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끝내 <한국방송(KBS)> 사장으로 내리꽂겠다는 뜻을 공식화했습니다. 방송과 관련한 경험이 전혀 없는 그를, 오직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선임 절차도 방송국 안팎의 여론도 무시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공정과 독립을 생명으로 하는 공영방송의 역할은 안중에도 없는 반 언론·반 민주적인 작태입니다.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을 내쫓은 뒤 앉힌 류희림 위원장이, 가짜뉴스를 앞세우며 추는 망나니 칼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류 위원장이 이끄는 방심위는 안팎에서 제기되는 위법 논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비판 언론만 꼭 집어 법정 최고 징계인 과징금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인 17일 <문화방송(MBC)>의 '뉴스데스크'와 '피디수첩', <제이티비시(JTBC)>의 '뉴스룸'에 대해 과징금을 의결하는 등 이제까지 윤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 13건을 무더기 법정 제재했습니다.
제재 광란극이 심의를 가장한 비판 언론 죽이기라는 사실은, 류 위원장이 국정감사에서 '조·중·동은 인터넷 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박 후보와 류 위원장이 모두 전·현직 검찰 출입 기자들의 모임인 '법조언론인클럽' 회장 출신의 친윤 언론인이라는 점입니다. 박 후보는 제8대(2019년 12월~2022년 1월) 회장을, 류 위원장은 제6대(2015년 7월~2017년 10월) 회장을 지냈습니다.
특정 기관이나 부처를 출입한 기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은 법조언론인클럽이 거의 유일합니다. 언론계에서는 진작부터 이 단체가 전직 법조 담당 기자들이 현직 검찰 및 법원 간부와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음습한 통로'가 아닐지 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임의 성격상 '이권 카르텔'이 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본 거죠.
박 후보가 회장일 때인 2020년 11월,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 이른바 '추윤 갈등'이 한창이었습니다. 당시 이 단체는 현역 법조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법조 기자 94%가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부정적이라는 자료를 발표했고 많은 미디어가 크게 보도했습니다. 예민한 시기에 윤 총장의 편을 확실하게 들어준 것이죠. 윤 총장이 당시 이 단체 회장이었던 박 후보에게 엄청나게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류 위원장도 추윤 갈등 당시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단체의 전임 회장 자격으로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이 된 그는, 2020년 12월 1일 윤 총장의 징계 정당성 여부를 다루는 감찰위에 출석해 추미애 장관이 하려는 윤 총장에 대한 징계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두 사람은 윤 대통령과 술잔을 나누는 사이라거나 하는 사적 친분 말고도 이런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불가근불가원' 원칙은 어디 가고 '불나방 기자'만 득실
윤 정권 들어선 뒤 두 사람 외에도 언론장악의 첨병으로 발탁된 이 단체 회장 출신이 또 한 명 있습니다. 바로 4대 회장(2011년 5월~2013년 9월)을 지낸 박노황 전 <연합뉴스> 사장입니다. 연합뉴스 사장 재직 때 '불공정 편파 방송'으로 수백 명의 사원들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았던 그는 8월에 <교통방송(TBS)> 이사장으로 기용된 뒤, 교통방송의 구조조정과 물갈이 인사를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 설립된 법조언론인클럽은 지금까지 9명의 회장을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3분의 1인 3명이, 윤 정권 아래서 언론 탄압 첨병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우연이라고 보고 넘기기 어려운 비율입니다. 개인의 성향 문제라고 보고 넘기기에는 밀도가 높습니다. 전임 회장들의 일탈은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 법조 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이 단체의 설립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이들 외에도 '검찰 정권'이라고 불리는 윤 정권에서는 검찰 출입 기자 출신 언론인들의 발탁과 '활약'이 유독 눈에 띕니다. 대표적인 예가, 임기 3년을 마치고 18일 퇴임한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을 임기 중에 몰아내려는 쿠데타를 주동했다 실패한 사건입니다.
윤 정권에서 임명된 이 재단의 유병철(경영본부장), 정권현(정부광고본부장), 남정호(미디어본부장) 세 상임이사가 퇴임을 앞둔 김효재 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총대를 멨으나 비상임이사들이 동조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세 이사 가운데 유 이사와 정 이사는 검찰을 오래 출입했던 '친 검찰 기자'였습니다. 직무대행 시절에 한국방송이사회 이사장과 이사, 방문진 이사장과 이사 등을 '대량 학살'하며 윤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의 터를 닦아준 김씨는 기어코 표 이사장이 물러난 자리를 꿰찼습니다.
언론사에 처음 입사한 기자들이 선배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취재원과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리하지도 말라"라는 얘기입니다.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짐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된 뒤 그와 인연이 있는 검찰 출입 경력자들이 권세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앞장서 자신이 일했던 언론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꼴을 보니, 이제는 언론계 안에 '불가근불가원' 같은 말을 들려줄 선배도 들어줄 후배도 전멸하지 않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