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추모회는 20살 때인 2016년이었다. 하얀 봄꽃 떨어지던 4월이었다. 길가를 가득 채운 노란 물결과 끊임없이 울려 퍼지던 학생들의 이름들. 추모공간에 비치된 빼곡한 영정사진들 속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난 울고 또 울었다.
'세월호 세대'. 당시 언론에서는 1997년생을 그리 불렀다. 단원고 피해 학생들과 같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개인적 첫 추모로부터 7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그 별칭에 여전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누구보다 안전과 참사란 단어에 예민하고 그와 관련된 글을 꾸준히 쓰는 이유다.
그리고 지난 10월 29일, 다시금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섰다. 막 서울광장까지 이어지는 추모 행진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예년보다 한산해진 거리 위로 보라색 바람막이를 입은 유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긴장된 표정 사이로 서로를 향한 다정한 웃음이 오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리에서 다시금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역 앞을 채웠다. 피해자들의 연령대가 주로 20대인만큼 추모객도 청년층이 많았다. 젊은 영혼을 추모하러 온 어르신들과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어린이도 눈에 띄었다. 흰 꽃다발을 손에 든 외국인들도 적지 않았다. 눈에 익숙한 노란 바람막이를 입은 분들도 보였다. 가방에는 노랑 리본이 달려 있었다.
처음으로 참사가 발생했던 장소도 방문했다. 참사 현장 영상을 보고난 뒤 마음 한켠에 자리 잡은 두려움에 한 번도 들리지 못한 곳이었다. 피해자들의 숨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좁은 길 끄트머리, 그 곳에 마련된 작은 추모 공간. 벽에 붙여진 수백 장의 메모지들과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술병과 과자들. 이름 모를 이들이 내려놓고 간 마음들이 따스한 가을볕을 받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메모 위 첫 마디를 적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게 남겼던 메모 첫 문장도 그랬다. 참사가 일어났던 때만 당신을 기억해선 안 되는데. 거리 위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했어야 했는데.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목소리 냈어야 했는데. 내 삶이 바쁘단 이유로 어물어물 외면해온 건 아닌지 후회가 됐다.
나는 노랑 메모를 다른 메모를 가리지 않게 그 사이에 붙이고 행진 끄트머리에서 발을 맞춰 걸었다. 누군가 내게 보라 리본을 건넸고, 나는 그 리본을 가만히 가방 후크에 달린 노랑 리본 옆에 붙였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159명의 우주가 사라졌고, 159명의 세계가 사라졌다.
그간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차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혐오와 모욕이 댓글창에서 떠돌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는 질문이 늘 피해자들에게 향했다. 죽은 이들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리는 게 가장 쉽기 때문일까.
"그러니까 거길 왜 놀러갔어?" 댓글창을 가득 채운 그 질문은 너무 가혹하고 무책임했다. 그 어떤 이든 죽을 걸 각오하고 집 밖에 나서지 않는다. 사람이 많을 걸 알면서도, 우린 소중한 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축제에 참여하고 관광지를 찾는다. 언제나 그랬듯, 우린 그걸 '일상'이라고 부른다.
그 일상이 안전할 것이라 믿는 이유는, 바로 국가를 믿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을 재해로부터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게 바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고 대통령과 공직자들, 정부부처기관이 공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 당일 엔데믹 후 첫 핼러윈이기에 인파가 몰릴 게 예상됐음에도 어떠한 현장 조치는 없었고, 수차례 신고에도 즉각적인 대응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시민들을 구조하는 동안, 가장 신속하게 작동해야 할 안전 컨트롤타워는 사실상 멈춰섰다.
이번 이태원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일이 사고가 아닌 '참사', 사망자가 아닌 '피해 자'인 이유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사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을 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추모 행사 어디서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참사의 재발을 막고자 건의된 특별법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문득, 7년 전 세월호 기억 캠프에서 만난 참사 생존자 친구가 떠올랐다. 유독 약지에 낀 두꺼운 은색 반지가 눈에 띄어 의미를 묻자, 그 날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주문 제작했다고 했다. 반지 안 쪽에는 굵은 글씨로 '0416'이 적혀 있었다.
참사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진실을 찾아가는 힘은 '기억'이라고. 기억에 대한 의무는 유가족에게만 있지 않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있다. 어느 누구도 참사의 위험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우리 모두 '생존자'들이다. 대구 지하철과 세월호, 오송 지하차도, 그리고 이태원까지. 우리가 그 날 그 곳에 있지 않았던 것 뿐, 누구나 참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안전을 원한다면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국회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게.' 7년 전, 팽목항에 위치한 세월호 참사 추모공간에서 피해자들과 했던 굳은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