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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편집자말]
지난봄, 일본 교토 여행을 다녀왔다. 유명한 맛집 중에는 노포(老鋪)가 많았는데, 그중 1932년에 개업한 <스마트 커피>를 찾아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라는 소신으로 3대째 운영하는 카페다. 오래된 소파 의자, 낡은 나무 계단, 정장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 겉이 녹슨 커피 원두 드럼통… 마치 1930년대로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메뉴는 바삭한 토스트와 커피. 지금은 흔한 아침 식사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서양 음식을 맛보는 특별한 외식이었을지 모른다.

신간 <경성 맛집 산책>은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도 서양 음식을 파는 '맛집'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한국 근대 소설에 등장한 음식점 메뉴와 가격, 주요 고객층, 실내외 장식 등을 분석한 결과이다.
 
 <경성 맛집 산책> 표지
<경성 맛집 산책> 표지 ⓒ 한겨레출판
 
작가는 소설 속 낯선 음식을 맛본 사람의 반응, 손님들이 식당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당시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신문 기사와 광고, 소설 삽화, 사진과 지도 등 풍부한 자료는 재미는 물론 소설적 허구가 아님을 증명한다.

소설 속 줄서는 맛집에는

조선 최초의 서양요리점 '청목당', 신문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던 '미쓰코시 백화점 식당',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 '조선호텔 식당', 작가 이상, 이태준 등의 예술가 모임 장소였던 '낙랑파라' 등 모던보이, 모던걸이 좋아한 경성 음식점 열 곳을 추려 소개했다. 
 
 경성 맛집 지도
경성 맛집 지도 ⓒ 한겨레 출판사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가네보 프루츠팔러'다. 과일의 '프루츠(fruit)와 거실을 뜻하는 '팔러(parlour)'의 합성어로 만든 가게 이름이 말해주듯 과일 디저트 카페였다. 실내 매장은 연인들이 좋아하는 칸막이가 있는 좌석 일명 '로맨스 박스'로 만들었고, 실외 매장은 바닥에 모래를 깔고 비치파라솔을 설치해 해변처럼 꾸몄다. 젊은이들의 취향을 저격해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hot place)'가 된 것이다.

메뉴는 프루츠 펀치, 프루츠 파르페, 프루츠 샌드 등 과일을 재료로 한 음료나 디저트가 많았지만, 커피 맛도 좋기로 유명했다. 유진오의 소설 <화상보>에는 '가네보 프루츠팔러'에 간 주인공들의 대화가 나온다.
 
커피네 홍차네 제각금들 청하니까 "커피는 이 집이 아마 경성서는 제일 조흘걸요" 영옥이 그 방면의 조예를 자랑한다. "그래요?" 경아가 대답하는데, "미쓰코시 것이 제일 조타더니" 보순이 불복을 한다. (163쪽)
 
하지만 '가네보 프루츠팔러'의 달콤한 과일과 맛있는 커피의 이면에는 식민지의 어두운 현실이 숨겨져 있었다. 이 카페를 만든 회사는 일본의 '가네보 방적 회사'이다. 당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의 값싼 원료와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방적 공장을 많이 세웠다.

1930년대 중반 가네보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받는 여성 직공의 일당은 30~35전이었다. '가네보 프루츠팔러'에서 파는 '프루츠 펀치' 가격이 30전이었다. 하루 일당이 음료 한 잔 가격이었으니 얼마나 저임금으로 혹사당했는지 알 수 있다.

휴일 없이 일한다 해도 받은 월급은 10원 50전. 지금으로 환산하면 40~45만 원에 불과하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지친 여성 직공들은 1933년 9월, 파업을 일으킨다. 하지만 경찰 개입과 회사의 강압에 무산되고 만다. 게다가 일본이 본격적인 전시체제에 들어서면서 가네보 방직공장은 군수 제품을 만드는 군수 공장으로 탈바꿈한다.

앞서 인용한 유진오의 소설 <화상보>가 동아일보에 연재된 해는 1940년. 소설 속 부유한 주인공들이 커피 맛의 순위를 논하던 '경성 맛집'의 밖은 대다수 식민지 백성들의 피와 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소개된 맛집 열 곳 중 지금도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은 <이문식당>이다. 설렁탕은 한 그릇에 10전인 저렴한 가격으로 평범한 서민들이 즐겨 찾았지만, 경성 멋쟁이와 돈 있는 사업가들도 좋아했다.

채만식의 소설 <금의 정열> 주요 인물인 상문은 경성의 최고급 반도 호텔에서 머문다. 아침에 해장하기 위해 '이문식당'에서 고춧가루 한 숟갈과 파 두 숟갈을 듬뿍 넣고 설렁탕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경성의 맛집

작가는 식민지라는 아픈 역사 때문에 근대의 흔적을 들여다보기 싫은 얼룩 정도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아쉽다고 한다.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싶은 사람의 본능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당시 식당에서만 파는 생경하고 비싼 음식이었던 돈가스, 카레라이스 등은 시간이 흐르면서 평범한 집밥이 되었다. <경성의 맛집>은 근대의 식문화가 오늘날 우리 음식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화재로 임시휴업 중인 <이문식당>
화재로 임시휴업 중인 <이문식당> ⓒ 전윤정
 
안타깝게도 지난 10월 16일, 이문식당 화재 소식을 들었다. 기자가 찾아간 10월 29일 식당 앞에는 "화재로 인하여 당분간 영업은 쉽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안에는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1904년 한국의 첫 음식점으로 등록된 이문설렁탕. 다시 영업을 시작하면, 설렁탕 한 그릇으로 100여 년 전 그 시절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은이), 한겨레출판(2023)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경성맛집산책#한겨레출판#맛집#이문식당#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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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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