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은 이번 지방소멸 대응기금 사업에서 가장 높은 A등급으로 책정되어 210억 원의 기금을 확보했다. 함양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많은 예산을 확보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소멸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세대의 인구감소와 유출, 일자리 부족 등 함양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막막할 정도로 산적해 있다. 청년인구를 유입시키고 유출을 막는 것은 우열을 가릴 것 없이 시급한 문제다. 청년세대는 인구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세대다. 현재 함양군뿐만 아니라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세대를 유입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혹자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인구 유치를 위해 힘쓰는 사태를 보며 지방을 찾아온 청년들이 힘든 일을 싫어하고 지원금만 밝힌다며 비판한다. 정말 청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환경에서 청년들이 행복하게 정착할 수 있을까? 이에 본지는 이미 함양에서 살고 있는 청년의 삶 속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 청년들이 함양에서 행복하게 살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기자말] |
"함양 토박이 부모님의 사이에서 인천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양에서 다녔어요. 고등학교 이후에는 경북도립대 행정학과에 진학했어요."
대학교 진학까지의 이야기. 전부 부모님의 의견이 반영된 유다빈씨의 인생이다. 사업을 진행하며 안정적인 직장의 장점을 줄곧 생각하던 다빈씨의 부모님은 딸이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다.
학창 시절 수학을 좋아하던 다빈씨였지만,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문과로 갔고 공무원 특채 시스템이 있던 경북도립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세상이 그런 길을 막아섰다.
"입학했는데 특채가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돌았어요. 그래서 1학년 1학기에 바로 휴학을 하고 2년 동안 공부를 했는데 사실 1년 반을 놀았어요. 그래도 시험을 쳐야 하니 열심히 공부했는데 제가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어요. 제가 같은 걸 반복하는 걸 못 견뎌서 다시 복학했어요. 그렇게 결국 학교를 졸업했어요"
졸업하고선 부모님의 선택에 따라 노량진으로 향했다. 가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노량진에 도착한 다빈씨는 죽어도 시골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진짜 죽어도 가기 싫었어요. 사람 붐비는 공간과 활기찬 분위기가 저를 행복하게 했어요"
노는 것에는 돈이 필요한 법. 다빈씨가 용돈벌이로 선택한 일은 백화점 판촉업무였다. 백화점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 외국인들이 단체방문을 했고, 손짓 발짓 섞어 소통하며 물건을 판 것이 오전에만 3천만 원이었다.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날로 매니저 제의를 받았고 열심히 해서 며칠 일하면 돈을 벌게 되면 보증금 마련해서 집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하겠다고 집에 전화하니까 엄마가 정신 나갔냐고 하셨어요. 집에서 주는 돈 필요 없다며 나 혼자 살아보겠다고 말했는데 아빠가 내일 서울로 올라갈 테니 짐 다 싸놓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시골로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울면서 짐을 쌌어요. 함양 내려오는 차 안에서도 아빠랑 싸웠어요. 난 수학 좋아했고, 경영학과 가고 싶었다면서. 서울에 남아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제 마음대로 결정해서 살고 싶었는데..."
다빈씨는 그렇게 함양으로 와서 지리산산골흑돼지 사업을 돕게 됐다. 도매업으로만 하던 게 7년이었는데 소매 판매를 시작하는 단계였다. 다빈씨는 대표님인 아버지를 따라 부산 메가마트 등 판매를 따라다니며 일을 도왔다. 다빈씨가 가는 곳마다 매출이 올랐다.
"아빠도 그동안 제게 엄한 걸 시켰다는 걸 느끼셨죠."
그렇게 정식으로 지리산산골흑돼지의 이사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드디어 다빈씨가 하고 싶었던 일을 본격적으로 해볼 수 있게 됐다.
지리산산골흑돼지의 성공신화
그렇게 4년 동안 다빈씨는 꿈을 위해 열정 가득한 삶을 살았다. 6차 산업 트렌드에 맞춰 제품을 준비했고 전국 팝업 매장과 롯데백화점 영업파트 등 한 달에 3주를 함양 밖에서 보내고 함양에 3일 있는 삶을 4년 계속 반복했다.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하는 백화점의 경우, 매장을 준비하기 위해 10시부터 백화점에 배치되었고 밤 10시까지 서 있어야 했다.
"현장에서 홍보하고 판매하면서 온라인으로도 영역을 넓혀갔어요. 상세 페이지 사진 작업 등 필요한 업무는 제가 알음알음 진행했던 거 같아요. 행사가 비는 날엔 교육 일정을 잡고 무작정 필요한 교육을 들으러 다녔어요.
그 과정에서 스마트스토어에 도전하게 됐어요. 그 당시는 옥션과 지마켓 위주로 판매가 이루어졌는데 교육을 듣고 수수료가 비교적 저렴한 스마트스토어로 시작했어요. 이후 판매량 증가를 위해 다른 사이트까지 확대했어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나드는 활동과 쏟아지는 문의사항에 정말 정신없었다는 다빈씨. 몸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재작년에 허리 디스크가 터졌다. 수술을 받으니 오래 서 있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온라인에 더 집중하게 됐다.
"그런데 그 시기에 코로나가 겹쳐서 매출이 2배 넘게 뛰었어요. 거래처도 많이 늘어났고요.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규모를 점점 키워간 지리산산골흑돼지. 2021년에는 현 회사 부지를 매입했고 함양읍에 있던 공장을 옮기게 됐다. 회사가 안정적인 매출 궤도에 오르고 나고서 다빈씨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제가 개인적으로는 배추 농사를 짓고 있어요. 거기서 나온 배추로 김장 체험을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어요. 농작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농업이 우리 회사에 부가 요소로 도움을 줄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까 농사를 지어도 재밌어요."
이제 지리산산골흑돼지는 농촌문화와 체험을 제공하는 시설로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있다. 2022년에는 SNS 홍보를 보고 찾아온 100여 명의 참가자와 함께 김장체험을 진행했고 올해에도 진행된다. 올해는 작년 행사의 성공을 바탕으로 더 큰 축제를 준비했다.
"이번 김장체험은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총 3일 준비했는데요. 금요일 오전에는 저희 회사 봉사활동으로 함양군장애인가족지원센터 대상 햄버거 만들기 체험을 준비했고요. 오후에는 함양on데이 참가자 김장 체험 행사가 진행돼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각각 3번과 2번 김장체험 준비했어요.
이번 김장 체험 행사는 특별하게 옆에 있는 밭에 캠핑존을 꾸며봤어요. 한강에 있는 와이키키마켓을 보고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한강 대신 농촌 컨셉으로 불멍도 하고 저희가 준비한 산골마켓에서 물건을 사서 야외에서 음악도 듣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어요."
다빈씨가 꿈꾸는 목표
현재 사회적기업인 지리산산골흑돼지. 다빈씨는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게 됐다. 사회적기업 교육을 들으며 직원 아이들의 돌봄시설을 구상한 것이 첫 번째다.
"돌봄시설을 갖추는 게 목표예요. 우리 회사 소속의 사람들이라면 함께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요. 회사가 직원의 복지를 충족시켜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함께 잘 살면 좋겠지만, 일단 회사 운영을 하다보니 회사 구성원들의 행복을 제일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워라밸이 중요하잖아요. 급여도 급여지만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뭘 더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진주 사랑그린숲 봉사활동을 주기적으로 하는 다빈씨는 봉사활동을 통해서 다양한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장애인에게 경제관념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봉사활동 체험 행사를 구상했다. 로컬브랜딩으로 유명한 진주의 힙토 대표에게 얻은 조언도 큰 도움이 됐다.
"힙토 대표님이 회사를 한 번 방문해서 창고형 마트 아이디어를 주셨거든요. 제가 처음에 갖고 있던 경제관념 교육에 창고형 마트를 더해서 마트에서 직접 소비를 해보는 식의 교육을 구상하고 있어요."
대외적으로 활동도 다양하게 하는 다빈씨는 현재 경남청년네트워크, 경남청년정책자문위원, 함양군 4H, 함양군농산물가공협회 등에 소속되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책이 재밌어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이 세상이 더 나은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회사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요. 다양한 청년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사람 가득한 도시에서 활력을 얻는다던 다빈씨는 함양에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됐다.
"함양이 더 좋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함양에 남을 것 같아요. 시골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어요.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도 있고 힐링도 있고요. 계절감도 느끼고 시골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어요.
이 부지를 매입할 때부터 함양을 벗어날 생각을 안 했어요. 오로지 이 땅에서 펼쳐질 무언가를 기대하고 구상하면서 행복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하다 보니 돈은 따라오더라고요. 중요한 건 내가 꿈꾸고 구상하는 콘텐츠예요."
다빈씨의 꿈은 분명하다. 다빈씨가 소속된 공간이 더 나아지는 것. 작게는 회사의 구성원, 그리고 효리마을 어르신들, 어쩌면 함양군. 크게는 경남도와 대한민국. 다빈씨가 품은 강하고 선한 영향력은 결국 초침이 분침을 움직이듯, 분침이 시침을 움직이듯, 시침이 돌아 하루가 지나가는 것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다빈씨가 만들어 갈 나아지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