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은 그 가문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윗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통음식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전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집안의 전통음식, 옛 음식을 전수해 줄 함양의 숨은 손맛을 찾아 그들의 요리이야기와 인생 레시피를 들어본다.[기자말] |
경남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는 '소가 우는 마을'이라는 뜻을 지녀 풍수지리학상 소가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이라 한다. 소는 예부터 농사와 깊은 연관이 있었으니 이곳 우명리는 땅이 비옥하고 풍요로웠다. 이곳 우명리에 정씨 고가가 있다.
수동면 우명리 정씨고가는 하동정씨 정여창 선생의 7대손 희운의 다섯째 아들 지헌이 분가하여 지은 집이다. 처음에는 초가 4칸이던 것을 희운의 4대손 환식이 1895년 대문간채와 안채, 바깥사랑채, 창고, 안 사랑채, 사당 등을 증축하여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우명리 정씨 고가조선의 전형적인 주거 배치인 배산임수에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마당에 있는 노송이 고가의 역사를 말해주고 집 주위의 나무와 꽃이 계절마다 번갈아 가며 존재를 드러낸다. 별채인 세한정 뒤쪽에는 대나무가 병풍처럼 드리워져 선비의 집과 어울리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우명리 정씨고가는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명리 정씨고가 안주인 이인신 여사는 13년 전 남편 정경무 선생을 따라 서울생활을 접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생애 처음 겪어보는 시골생활과 고택에서의 삶이 그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었겠으나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이어서 더 좋았다고 한다. 시골에서 남편과 고택을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인신 여사는 정씨고가의 사계절과 밤낮의 매력에 흠뻑 빠져 인생 2막을 꾸려가고 있다.
이인신 여사가 남편과 이곳으로 내려온 이유는 노환이던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말에 두말없이 도시 삶을 접고 내려왔다. 낯설기만 한 시골생활이 두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동안 쌓여 온 남편의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에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7년을 모셨던 시어머니가 떠난 후 이곳 안주인이 된 이인신 여사는 자연을 오롯이 품고 있는 정씨고가를 산책하듯 돌본다. "처음엔 전통 한옥에서의 생활이 순조롭지 않았어요. 문이 낮아 머리를 찧거나 문지방에 발이 걸려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고개를 숙이며 많이 겸손해졌지요."
웃음으로 이곳의 생활을 표현하는 이인신 여사는 정씨고가를 찾아온 손님에게 손이 많이 가는 디저트와 차를 내오며 정성으로 대접한다. 시골 생활은 하루하루 할 일이 너무 많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찾아오는 풍경까지 감상하며 작은 풀잎 하나까지 관심을 갖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죽순과 효자
이인신 여사의 시골생활을 더 풍요롭게 만든 것은 요리이다. 요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텃밭에서 얻을 수 있는 싱싱한 식재료 덕분에 솜씨를 발휘할 기회도 많아졌다.
음식연구가 황혜성 선생을 통해 음식을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던 이인신 여사가 이번에 소개해 줄 음식은 우명리 정씨고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죽순 요리다. 세한정 뒤로 대나무밭이 둘러싸여 있으니 유월이면 죽순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대나무는 절개, 강직함, 올곧음 등을 떠올리게 한다. 예부터 내려오는 대나무의 의미가 이런 상징성을 낳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는 맹종읍죽(孟宗泣竹)을 통해 죽순에 얽힌 효자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맹종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이다. 병든 어머니가 죽순이 먹고 싶다하여 한겨울에 죽순을 찾아 나선 맹종. 하지만 한겨울에 죽순이 있을 리 만무했고 맹종은 눈 쌓인 대밭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맹종의 눈물이 떨어진 곳에 눈이 녹아 대나무 순이 돋았다는 효자 이야기다.
죽순과 효자는 맹종의 이야기이나 어머니를 생각하여 시골행을 택한 정경무·이인신 부부와도 닮아 있다. 정씨고가 별채 세한정 뒤쪽에 있는 대나무에서 해마다 죽순이 우후죽순 솟았으니 이인신 여사는 죽순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연구했다. 그중 죽순전은 소고기를 다져 넣어 삶은 죽순과 함께 전을 부쳐 만드는 요리다. 죽순의 아삭한 식감은 그대로 살리고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이인신 여사에게 요리는 사랑이다. 빠르게, 편하게 먹는 음식보다 천천히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이인신 여사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에 사랑과 건강을 담아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바쁜 세상에 하루 그 자체가 감사고 행복이죠. 요리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 상상을 하는 게 너무 좋아요." 따끈한 죽순전을 건네며 웃는 이인신 여사의 행복이 음식과 함께 전해져 온다.
죽순전 레시피
<재료>
죽순
다진 소고기(500g)
양파1, 버섯, 당근
파프리카(중간크기3개)
빨간고추1개, 초록고추1개
두부 3분의 2모, 계란 5개
소금, 후추, 밀가루(부침가루), 식용유
<죽순 삶기>
죽순을 삶을 때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찬물에 30분가량 센 불로 삶는다. 너무 오래 삶으면 죽순의 아삭한 식감이 사라진다. 더 아삭하게 먹고 싶다면 약 20~25분가량 죽순을 삶는다. 이때 소금 2스푼 정도 넣는다. 끓고 나면 따뜻한 물이 식을 때까지 그대로 둔다. 하루 정도 지난 후 죽순 껍질을 벗기고, 또 물에 하루 정도 담가 독성을 빼 준다.
<죽순 보관하기>
먼저 죽순을 삶는다. 삶은 죽순을 먹기 좋게 잘라도 되고 그대로 보관해도 된다. 죽순을 한번 먹을 양만큼 소분하여 물과 함께 담아서 냉동 보관한다.
<순서>
1. 야채를 다지듯이 잘게 쓴다. (색깔 조합에 맞게 여러 가지 야채를 사용하면 된다)
2. 천을 이용해 두부의 물기를 뺀 후 으깬다.
3. 다진 소고기(500g 기준)에 소금(티스푼 2), 후추(티스푼 1)를 넣어 조물조물 해 준다. (소고기에는 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고 밑간만 한다. 고기는 밑간을 해야 맛있다)
4. 야채, 두부, 소고기를 섞어 소금, 후추를 조금 넣어 버무린다. 재료가 서로 엉기도록 바락바락 치대주는 느낌으로 섞는다.
5. 타올을 이용해서 죽순의 물기를 제거한다. 죽순전을 만들 때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죽순이 가장 적합하고 전을 부쳐도 예쁘다.
6. 죽순을 반으로 쪼개고 죽순 안팎에 부침가루(또는 밀가루)를 묻힌다.
7. 죽순 안쪽에 고기 다진 양념을 넣어준다. 이때 죽순 두께만큼 평평하게 고기를 채운다. (너무 많이 넣으면 속이 잘 안 익는다. 부침가루를 골고루 묻히지 않으면 고기 속에 떨어진다)
8. 부침가루를 채에 치면서 뿌려준다.
9. 계란을 풀어 죽순에 옷을 입힌다.
10. 식용유를 두르고 죽순의 납작한 부분이 아래로 가도록 먼저 굽는다. 타기 쉽기 때문에 약한 불에 올려서 천천히 익힌다. 특히 움푹 파인 쪽의 소고기가 잘 익도록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