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지칭해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봤을 터다. 여기서 '멀다'는 건 일본이 한국을 병합해 점령했던 일제강점기(1910~1945)의 쓰리고 아픈 기억 탓이 클 것이다. 그렇다면 '가깝다'는 어떤 의미일까?
'왜(倭)'라고 불렀던 일본과 실제 한국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매우 가깝다. 왜냐? 비행기는 물론, 선박에 장착해 속도를 높여주는 기계식 엔진이 없던 시절에도 한국과 일본의 왕래는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 문헌에서도 드물지 않게 드러나는 사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우리는 일본으로 대규모 사신단(使臣團)을 파견하곤 했다. 이른바 조선통신사다. 조선 후기에 일본으로 보낸 그 외교 사절단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 후기인 17~18세기엔 시속 800km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없었고, 고성능 엔진을 달고 현해탄을 오가는 쾌속 페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나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때로는 갈등하고 반목하며, 어떤 때는 화해와 화평을 논의하며 교류를 지속해왔다.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국가들이었던 것.
사실 조선시대보다 1천 년 전인 신라시대 때도 일본과 한국은 서로의 나라를 드나들었다. 좋은 뜻을 가졌건, 노략질을 하기 위해서건 말이다. 까마득한 옛날인 그때는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려면 바람에 운을 맡긴 돛단배가 교통수단의 전부였을 터다.
지금으로부터 1천342년 전인 681년 사망한 신라 문무왕은 유언이 "죽더라도 내가 용이 되어 동해에 출몰하는 왜적들을 막을 테니, 나를 바다에 장사 지내라"는 것이었다. 그때도 일본에서 배를 타고 신라로 오는 해적들이 있었기에 나온 말이었다. 실제로 문무왕의 유택(幽宅)은 경주 봉길리 바닷가 지척의 '대왕암'이다.
대구 출발, 40여 분 만에 "후쿠오카입니다"
지난 9월 12일, 뒤늦게 다녀온 여름휴가에서 몸으로 실감했다. 일본과 한국이 지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일본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나라다. 몇 해 전 2번의 일본 여행은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로 갔다. 두 곳 모두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3시간 안팎을 날아가야 닿을 수 있었다.
헌데, 이번에 여행지로 결정한 곳은 일본 후쿠오카. 거길 가겠다고 하니 먼저 후쿠오카를 다녀온 선후배들이 웃으며 말했다.
"비행기 뜨면 화장실 갈 사이도 없이 내리게 될 걸."
실제로 그랬다. 대구공항을 이륙한 티웨이항공 비행기의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고, 스튜어디스들이 기념품과 음료를 판매하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저가항공'은 항공기 내의 각종 서비스를 과감하게 없애고 항공료를 낮춘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공짜로 술을 청해 마시거나,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식사가 없다. 대신 티켓 가격이 저렴하다는 메리트가 있다. 내가 발권한 대구-후쿠오카 왕복항공권 가격도 포항-제주도 성수기 항공권 가격보다 3~4만원 정도가 비싼 21만 원.
어쨌건, 비행기에 올랐으니 여행자의 들뜬 기분을 억제하기 못해 '잭 앤 코크'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려고 테네시 위스키 잭 다니엘스((Jack Daniel's) 미니병과 콜라 한 캔을 주문했다. 콜라와 저가 위스키를 섞는 아주 심플한 칵테일이 '잭 앤 코크'다.
그런데 이게 뭐지? 술병과 콜라 캔을 따고 그걸 적당량 믹스해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한 모금 마시려고 할 때 기장의 기내 방송이 시작됐다.
"우리 비행기는 현재 일본 후쿠오카 상공에 와있습니다. 후쿠오카의 현지 기온은..."
대구공항에서 예매한 인터넷 항공권을 실물 항공권으로 교환하고, 수화물을 맡긴 후 검색대를 통과해 면세구역에서 담배와 초콜릿을 사는데 걸린 시간보다 대구 상공에서 후쿠오카 상공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더 짧았다.
그러니까, 겨우 40여 분 남짓이었다. 선후배들의 말은 실없는 '농담'이 아닌 '팩트'였던 것이다. 어쨌건 칵테일 한 잔도 다 마시지 못하고 내릴 준비를 했다. 후쿠오카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오사카, 도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찾는 일본 유수의 관광지로도 알려져 있다.
'엔저'여서 그런가... 적당한 물가, 황홀한 음식들
여행자가 가장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시간은 아마 낯선 도시에 도착해 예약해놓은 숙소를 찾기까지가 아닐까? 하지만, 후쿠오카에서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듯했다. 공항이 시내에서 가까워 지하철이나 셔틀버스로 20~30분이면 가닿을 수 있었다.
게다가 버스정류장과 지하철 환승역 곳곳에 한글 표기가 돼있었다. 일본어를 읽고 쓸 줄 모른다 해도 호텔을 찾아가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일본을 찾은 관광객들은 "물가가 한국보다 비싸서 근사한 식당에서 요리를 먹거나, 백화점에서 선물을 사는 게 부담스럽다"는 고충을 말하곤 했다.
헌데, 지금은 부정할 수 없는 '엔저'(국제 환시세에서 일본 화폐인 엔의 값이 다른 나라 화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진 현상)의 시기다.
2개월 전 후쿠오카를 여행했을 땐 일본 돈 100엔이 한국 돈 900원이었는데, 기사를 쓰고 있는 2023년 11월 6일 기준으론 100엔이 868원 정도로 더 떨어졌다.
그래서였을까? 후쿠오카 지하철 요금은 서울 지하철 요금보다 크게 비싸 보이지 않았고, 보통의 일본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중적인 고깃집과 초밥집의 메뉴도 그다지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른바 '체감 물가'가 그랬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통상 어느 도시건 화장실과 거리, 숙박시설과 공공건물이 깔끔하게 관리돼 있다. 유럽에서 한국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놀랄 정도다.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일본 후쿠오카 역시 그랬다. 깨끗하게 정돈된 길거리와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모모치 해변,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어쨌건 후쿠오카에서의 4박5일은 예상보다도 더 즐거웠다.
'후쿠오카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타워와 넓은 호숫가를 산책하기 좋은 오호리공원, 다소 투박하지만 많은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후쿠오카 성터, '내 자식이 공부 열심히 해서 입신출세(立身出世)하게 해주세요'라고 기원하는 공간으로 유명한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 등을 돌아봤고, 후쿠오카의 '일미(一味)'로 불리는 것들을 두루 맛봤다.
조그만 개인 테이블에서 화로에 구워 먹는 일본 소고기와 '후쿠오카 명물' 돈코츠라면, 그리고 너무 예쁘게 장식돼 먹기가 아까웠던 초밥까지, 모두 인상 깊었다.
여행 중 후쿠오카에서 겪었던 흥미로운 사건과 기억 속에 남은 사람들 이야기는 다음 회에 들려주려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실린 기사를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