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고민 해결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멋/선순환 옷입기에 대한 사명감을 좌심방 언저리에 갖고 있다.'
이전에 냈던 책의 개정판을 최근에 다듬으면서 소개란에 이런 문구를 포함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부분은 분명 많은 여성들이 겪는 옷고민과 옷문제 해결이지만, 그것을 통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는 '지구를 덜 파괴하는 옷입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옷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싶어하는 최소한의 욕망을 가진 인간인 데다, 환경이 고민이 되긴 하지만 아예 옷을 안 사 입고 살 수는 없는 게 보통 사람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두 가지를 손에 쥐고 균형을 잡으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한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지구를 살리는 패션 교육'과 '좋은 옷생활 문화 만들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아마도 향후 한국 사회에서 점점 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거라 생각한다.
'선순환 옷입기', 어떻게 가능하냐면요
선순환 옷입기 교육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된다.
첫째, 내가 지닐 적정 아이템 개수를 아는 것이다.
우리는 옷과 관련해 '적정 아이템 개수'를 배운 적이 없다. 일단 개인당 몇 가지 아이템을 갖고 있어야 적정한 것인지 배우지 않았으며 몇 개가 적당한 것인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10여년 전까지는 그저 많이 채우고 많이 입는 것으로 만족해 했다. 그런데 채우기만 하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입을 옷이 보이지 않고 공간은 부족해졌으며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입어야 할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비우기 시작한다.
내 주변, '비우기'를 실천해 많이 비운 사람은 40개까지 버리고 비우는 걸 봤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 그 때마다 계절의 날씨에 맞는 옷차림이 필요하다. 40개까지 비우는 것은 다소 극단적이고, 봄/가을 계절을 같이 입는다는 전제 하에 평균 33가지씩 갖고 있으면 별 무리가 없다. 3계절 총 99가지 옷으로 4계절을 날 수 있는 것이다. 봄/가을과 겨울, 여름까지 중복되는 아이템까지 생각하면 총 80여개 정도로도 괜찮다.
둘째, '옷장 분석에 대한 감각' 키우기다.
옷을 사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비우는 것이 아닌, 잘 채우는 것이다. 그래서 정리/코디/쇼핑 중에 가장 중요한 작업은 역설적이게도 쇼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니멀을 유지하기 위해 비우는 것을 강조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비우는 것이 효과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나에게 기본적으로 평소에 맞는 아이템을 적절히 잘 채워야만 '입을 옷이 없다'는 부족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내 평소 옷장 분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사 계절 어떤 아이템이 옷장에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려면, 현재 내 옷장 속 아이템과 나, 그리고 내 라이프 스타일 이 세 가지를 고려해 뭐가 있고 없는지를 잘 떠올릴 줄 알아야 한다. 이 부분은 훈련이 되지 않으면 하기도 쉽지 않고 또 성향에 따라 이것 자체를 귀찮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채우려면 분석 감각 또는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은 필수다.
셋째, 사지 말아야 할 것을 거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장을 볼 때 쇼핑 리스트를 작성하는 이유는 쓸 데 없이 사지 말아야 할 것을 사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쇼핑에 실패하고 낭비하는 이유는 사고 보니 비슷한 옷이 있거나, 사고 보니 필요하지 않은 아이템이거나, 사고 보니 내가 불편해하는 디자인이거나다. 이것 역시 분석하지 않아 생기는 결과물인데, 이는 쇼핑 리스트 작성법을 배우는 것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옷 생활에는 체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체계를 실천하는 것은 선순환 옷입기를 실천하는 것과도 같다. 무작정 옷을 사지 않는 것으로 지구를 지킬 수도 있지만 보통의 욕망을 가진 보통의 인간들은 선순환 옷입기의 체계를 배우는 것이 조금이나마 지구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 지속가능한 멋을 쟁취하는 방법이다.
정기적인 옷 나누기, 옷 수선해 입기... '건강한 옷 문화' 만들기
'건강한 옷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건 어떻게 가능할까. 첫째로는 중고 거래를 들 수 있겠다. 적어도 나는 내가 아예 모르는 중고 옷을 입어본 적은 없지만, 날 모르는 타인에게 중고 옷을 팔아본 경험은 있다. 중고 옷을 입어본 결과, 나에게 어울리고 내 삶에 잘 맞기만 하다면 이것만큼 좋은 옷생활도 없다.
나는 저렴한 금액으로 옷을 얻고 옷을 기부하는 누군가는 안 입는 옷을 처분해서 홀가분하다. 현재 '다시입다 연구소'라는 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안 입는 옷을 서로에게 파는 21% 파티라는 것을 하고 있다. 내 옷을 기부만 할 수도 있지만 파티라는 문화 속에 내가 기부한 중고 옷이 타인에게 멋이 되는 현장을 경험해봐도 좋겠다.
둘째로, 수선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만약 현재 지닌 옷이 지겨워졌거나 이제는 입지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면, 그냥 버리지 말고 재활용을 통한 쓸모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가장 쉽게 수선해서 입는 방법은, 겨울용 긴 바지를 짧게 잘라 여름 바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옷 전문가로서 여러 코칭을 하다 보면 간단한 수선만으로 다르게 활용 가능한 아이템들이 눈에 띈다. 아마도 옷 수선 문화는 앞으로도 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 침체로 망하는 자영업이 많지만, 옷 수선집이 망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실제로 필자의 동네에도 10년 넘게 운영 중인 수선집만 3군데가 넘는다. 전문적인 수선 교육이 아닌,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아이 옷으로, 반려견 옷으로 재탄생 시키는 취미반이 대중화될 것이다.
한편, 내 옷으로 하는 '코디 놀이'도 옷을 재활용 해 입는 좋은 방법이다. 필자가 워크숍을 열면, 종종 자신의 옷으로 코디법을 배우는 과정을 열고는 한다. 요즘 10대와 20대는 모를 수도 있지만 필자의 비슷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은 어릴 적 종이 인형 놀이를 떠올리며 재미있어 한다. 항상 비슷한 코디만 하면 입을 옷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은 내 옷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갖고 있는 옷을 이리저리 조합해 최소한 3가지 코디 조합 정도는 만들 수 있어야 '입을 옷이 없다'는 불평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된다. 사진을 찍고 출력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출력만 한다면 이것만큼 재미있는 코디 놀이가 없다.
옛 추억이 살아나서 재미있고, 새로운 코디 조합을 발견해서 재미있고, 삼삼오오 함께 해서 더 즐겁다. 요즘은 코디 어플이 많이 나와 있으니 어플로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코디 놀이 문화는 즐거움이 되고 덜 사는 습관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