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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식당 종이컵 사용 금지 조치 철회를 발표한 7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 종이컵이 쌓여있다. 환경부는 식당,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처를 철회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정부가 식당 종이컵 사용 금지 조치 철회를 발표한 7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 종이컵이 쌓여있다. 환경부는 식당,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처를 철회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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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를 접었다. '종이컵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가 뭘 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지난 7일, 정부는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을 사실상 철회했다. 이달 23일 1년간의 계도 기간 종료를 앞두고 서둘러 방침을 밝혔다.

종이컵은 아예 일회용품 사용 규제 품목에서 제외됐고,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계도 기간은 무기한 연장했다. 비닐봉지 사용에 대해서는 과태료 부과 등 단속을 중단하는 대신, 장바구니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권고한다는 방침이다. 규제 방식을 강제에서 자율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무능과 무책임의 끝판왕이라 불러야 할 성싶다. 그럴 거였으면, 굳이 국회에서 오랜 토론과 협의를 거쳐 법률을 만들고 손볼 필요가 없었다. 일회용품 사용이 폭증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막심하고, 법적 강제보다 자율적 통제가 바람직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바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줄기차게 캠페인 활동을 벌여왔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시나브로 늘고 있지만, 일회용품 사용의 증가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눈앞의 값싼 편리함에 윤리적 당위는 늘 뒷전으로 밀린다. 그걸 보완하고 힘을 실어주기 위한 장치가 곧 법인데, 대신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겠다는 건 그냥 방치하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답해야 한다 

정부는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는 급작스러운 방침의 변경에 혼란스러워하는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며, 법률과 행정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는 일이다. 명색이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일진대, 납득할 만한 설명과 반성 없이 눙치고 넘어가서는 곤란하다.
 
일회용품 규제 정책 포스터
 일회용품 규제 정책 포스터
ⓒ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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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대체 뭐 하고 있었느냐는 당연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주무 부서인 환경부는 일회용품 사용 증가에 따른 환경 파괴를 방지한다며 2021년 11월,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부터 식당과 카페 등의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해왔다.

1년간의 계도 기간을 둔 건, 식당과 카페 등을 운영하는 영세한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걸 정부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부는 서둘러 그들을 지원할 세부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대국민 홍보에도 발 벗고 나서야 했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애초 자영업자와 손님 모두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내해야 할 정책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충분한 준비와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철회 이유를 밝혔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 핑계 삼는 전형적인 '유체 이탈' 화법이다. 국회가 만든 법률이 안착하도록 준비하는 것도, 국민이 취지에 공감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모두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도 모자라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시도는 있었지만, 현재 종이컵 사용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며, 그것이 마치 '글로벌 스탠더드'인 양 떠들어댄다. 어떤 정책이든 선진국과 상반될 때는 나 몰라라 하고, 유사한 점이 있을 때는 도입과 추진의 근거로 삼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둘째, 정부를 믿고 시장의 변화에 착실히 대비해온 자영업자의 손해와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해법이 과연 있는가도 궁금하다. 이는 식당과 카페뿐만 아니라 종이 빨대나 다회용기 제작 업체 등 친환경 제품 생산에 투자해온 업계 전체를 연쇄적으로 휘청거리게 할 사안이다. 한 번 쓰고 버릴 종이컵 대신 번거롭게 씻어 써야 하는 다회용기를 사용할 소비자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한 정부의 답변은 늘 그래왔듯 두루뭉술하다. 정부가 최대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것. 이는 곧 뾰족한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규제 강화라는 법률의 시행 취지에 공감하고 환경보전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민간 사업자들만 바보가 된 형국이다.

그들이 투자한 비용을 세금을 들여 고스란히 환급해주기도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환경 보호를 위한 민간의 노력을 정부가 막아서고 되돌린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는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꼴이어서다. 헌법 제35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토 박고 있다.

환경보전은 민간의 자율적 실천에만 맡길 수 없는 영역이다. 상당한 예산 투입이 필요할뿐더러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장기 과제다.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은 물론, 학교 교육과정의 필수 교과로 다뤄져야 마땅하다. 이는 미래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도리다.

급박한 태세 전환... '폭탄 돌리기'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 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국민과 직접 대화 나선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 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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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강제에서 자율로의 느닷없는 태세 전환은, 공교롭게도 지난 3일 윤 대통령이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상공인 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이후에 나왔다. 그는 소상공인들 앞에서 "지원의 손길을 힘껏 내밀겠다. 따뜻한 정부가 되겠다"며 어퍼컷 세리머니까지 선보였다. 올해로 18년째인 소상공인 대회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 환경부는 종이컵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유로 소상공인의 지출 비용 증가로 인한 매출 하락을 첫손에 꼽았다. 일부 소상공인의 이해관계에 환경보전이라는 당위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모양새가 됐다.

이는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내년 봄에 심을 종자를 먹어버리는 것과 같다. 환경은 현재를 사는 우리가 미래세대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환경보전의 책임을 회피하는 건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애먼 그들에게 환경 파괴라는 '폭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일각에서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환경보전에 그다지 큰 효과가 없다고 반박한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고, 비행기를 타지 않고, 화력발전을 멈추고, 채식을 실천하고, 소비를 줄이는 게 백 배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탄소 배출량 등을 고려하면 그리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러나 경각심을 갖고 실천하는 마음가짐엔 서열을 매길 수 없다.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전기와 물을 아껴 쓰고, 재생 에너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에 찬성하는 사람이 화력발전소를 짓는 일에 앞장서는 등의 이율배반적 행동을 할 리 없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이번 사달로 인해 정부 정책의 신뢰성에 큰 생채기가 났다는 점이다. '양치기 소년'이란 우화처럼, 정책에 대한 불신은 우리 사회에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추후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 방침을 다시 꺼낸다면, 기꺼이 동참할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종이컵 문제' 하나에도 쩔쩔매는 정부가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교육개혁과 노동 개혁, 연금 개혁 등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리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일 듯하다.

태그:#일회용품사용규제철회, #윤석열대통령, #헌법제35조1항, #소상공인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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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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