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하다 안 되면 노가다라도 한다'는 말은 진짜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막노동은 새로운 시작이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예요. 그래서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죠."
나재필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막노동 일꾼'으로 규정했다. 27년여간 기자 생활을 거쳐 퇴직 후 밥벌이로 찾은 공사 현장 일이 자신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했다고도 했다. 그가 보낸 시간의 기록이 <나의 막노동 일지>라는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시작은 <오마이뉴스> 연재였다. 그는 지난 2월 22일 '나의 막노동 일지' 첫 연재를 시작한 이후 열다섯 편의 글을 썼다. 오전 4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15시간여 몸으로 일하는 현장 곳곳의 이야기를 전했다. 조선소 불황 탓에 새로운 공사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2030세대부터,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파산해 재기를 꿈꾸는 5060세대의 이야기도 담겼다.
두 번째 연재인 '나재필의 베이비붐 세대의 애환'에서는 조기 퇴직한 이후 또다시 다음 30~40년을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하는 스스로의 고민을 녹였다. '열심히 살았지만 나아지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말자'며 자신을 다독인 열 편의 이야기다.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살았다"는 그는 연재를 마무리하고 책을 쓴 이후 다시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두 달 전부터 충북 음성의 한 공사현장에서 안전모를 챙기며 이른바 생명줄이라는 안전그네 허리벨트를 조이며 철근을 나르고 조립하고 있다.
지난 10일 인터뷰를 위해 휴가를 쓴 그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예의 수줍은 미소를 띈 그가 '당신의 일을 응원한다'는 메모가 담긴 책 <나의 막노동 일지>를 전했다.
다음은 나재필 시민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진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함부로 취급받지 않기를"
- '나의 막노동 일지'와 '베이비붐 세대의 애환' 두 연재를 엮은 책이 나왔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써온 공사 현장의 이야기와 베이비붐 세대의 이야기가 엮여서 책으로 나왔다. 막노동 일지를 처음 썼을 때부터 읽고 연락해온 출판사가 있었는데 그 때는 거절했다. 그런데도 꾸준히 메일을 보내왔다. 마침 <오마이뉴스>와도 베이비부머 이야기를 쓰고 있어 이 두 이야기를 엮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 해보겠다'고 용기를 냈다. 덜컥 약속하니 써야겠더라. 마침 첫 번째 공사 현장 일이 끝났던 때다. 그게 올여름인데,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대신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생각하며 내내 글만 썼다."
- 출간 소식을 들으니 첫 기사를 보고 연재 요청했을 때가 생각나더라.
"태어나 처음 막노동을 시작했을 때다. 그때는 정말 뭣도 모르고 일을 했다. 지난해 가을 일을 시작해서 5개월쯤 지났을 때 처음으로 기사를 썼다. 나도 내가 이 현장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일을 할수록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 어느 날인가 낮에 볕을 쬐고 있는데 나를 포함해 축 처진 어깨들이 보였다. 사실 막노동을 인생 막장이라고 폄훼하는 분위기가 있잖나. 그런데 진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인 현장이 여기다.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 그 힘을 다 쏟아부으며 일하는 사람들, 우리들의 이야기를 좀 전달하고 싶었다."
- 그래서 대뜸 어떻게 시간을 내서 기사를 쓰냐고 물어봤던 거 같다.
"(웃으며) 기억난다. 첫 현장에서 쉬는 시간마다 휴대전화 메모 앱에 막노동꾼의 일상을 기록했다. 화장실을 가려면 긴 줄을 서야 하고, 점심을 해치우듯이 먹어야 하고, 먹고 나면 또 오후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바로 뻗어서 자야 하는 일상들. 겨울에는 추워서 뼈가 시리고 여름에는 더위에 진물이 나듯 땀이 흐르는 이야기들을 매일매일 기록했다. 그리고 주말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정리했다. 그렇게 첫 기사를 썼다."
-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반응이 뜨거웠다.
"개인적으로 조금 놀랐다. 1화가 나가고 바로 지인들에게 연락이 왔다. 댓글도 많이 달렸고 좋은 기사 원고료로 10만 원이 넘게 들어왔다. 기자 이력이나 주위 사람들을 신경 썼다면 자존심 때문에 솔직하게 쓰기는 어려웠을 거다. 그런데 정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썼다. 벌거벗은 심정으로 현장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고 싶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오고 출판 제의도 받았다. 인터뷰 제의도 많았는데, 다 거절했다."
- 좋은 기회였을 거 같은데, 왜 거절했나.
"일 자체만 하기에도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주말에 기사 하나 쓰는 거 말고는 더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에너지를 다 썼던 거다."
"젊은 사람들에게 어설픈 훈계를 하고 싶지 않다"
- 총 열다섯 편의 막노동 일지를 다 쓰고 몇 달 후 <오마이뉴스>에 '베이비붐세대의 애환' 연재를 시작했다.
"사실 두 번째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하고 싶었다. 늙은 청년의 막노동 연재에서 끝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그런데 베이비붐세대라는 주제에 끌렸다. 이건 딱 내 이야기였으니까. 마침 첫 막노동일이 마무리 되고 다시 실직자가 됐을 때다. 일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 처지라 개인적으로 절박했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나 혼자만 절박한 게 아니었다.
특정 세대가 더 힘들고 덜 힘들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속한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매일 숨만 쉬듯 아껴 사는데도 한 달에 몇백 만 원 꼬박꼬박 지출이 생기는 우리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개인적인 고민을 공유하고 싶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은 그만큼 쫓아가지 못하고, 일을 하고 싶고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데 일자리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그런 '우리들'의 이야기 열 편을 썼다."
- 연재와 책을 쓰면서 주의했던 거나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막노동 일지는 내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잖나.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어떤 노동의 가치나 노동자의 생각을 내가 일방적으로 단정하거나 왜곡하는 건 아닐지 고민되더라.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의 애환은 젊은 세대를 어설프게 훈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모두 되게 어렵게 살지 않나. 사람이 더 살았다고 익숙한 게 아니니까. 더 산 사람도 덜 산 사람들도 모두 쉽지 않을 테니 굳이 나가까지 세대를 갈라치기 하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 최근 또 다른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막노동 시즌2라고 칭한다. 사실 시즌1을 끝내고 계속 일을 하고 싶어서 여러 곳을 타진했는데, 쉽게 자리가 구해지지 않았다. 경비원 교육을 들으며 수료도 하고 비계자격증도 땄는데도 그랬다. 결국 예전 일했던 공사 현장 팀장이 불러줘서 얼마 전부터 충북 음성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철골업체인데 반도체 현장에 납품할 철골에 배관을 얹어서 조립해 납품하는 곳이다. '철 만지면 골병든다'는 말이 있는데, 왜 그런지 알겠더라. 자재들이 무겁고 이동하기 힘들다. 날이 추워지면 철골에 이슬이 묻어서 다 닦아내야 해서 두 배로 힘들다. 게다가 공사 현장이 집과 멀어서 근처 모텔에서 장기 투숙하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 내년 봄까지는 이 현장에서 일할 수 있을 거 같아 다행이다"
- 공사 현장 차이가 있나.
"많이 다르다. 지난 가을부터 올 여름까지 일했던 곳은 젊은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 또래거나 나보다 연배가 있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기술이 있거나 기술이 없어도 일의 숙련도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젊은이 못지않게 척척 무거운 철골을 나르고 조립한다. 야외시설이라서 난방이 따로 없는데, 추위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그런데 어쩌겠나, 먹고 살려면 일해야지."
- 새 책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동안의 연재를 응원한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나뿐 아니라 모든 분들이 먹고 사는 거 자체가 무서운 일이라는 걸 알 거다. 각자의 자리에서 씩씩하게 잘 지내는 우리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 특히 막노동 현장에 있는 모든 노동자를 존경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막노동은 몸으로 고통과 맞서는 원초적인 직업이자 땀의 대가를 인정하는 숭고한 직업이다. 몸으로 정직하게 밥벌이하는 이들이 위축되지 않기를 바라며, 현장의 여러 조건과 상황도 노동자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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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의 나의 막노동 일지 https://omn.kr/23d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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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의 베이비붐 세대의 애환 https://omn.kr/25a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