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 다수 교사가 학교 물품 구매 과정에서 교장 등 관리자로부터 부당한 간섭 또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가 14일 진행된 전라남도의회의 전라남도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서 공개됐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위한 교보재가 학교에 충분해 추가 구매 신청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교장 등 관리자 압박으로 500만원 상당의 값비싼 기기를 억지로 신청했다는 취지로 답한 교사만 20명을 웃돌았다.
박형대 전남도의원(진보당, 장흥1)은 이날 행정사무감사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남지부가 지난 10월 보건교사 30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설문조사에서 500만원짜리 '스마트 심폐소생술 교보재' 구매를 신청했다고 답한 62명의 교사 가운데 21명은 "물품 구매 과정에서 교장 등 관리자의 압박(강권)을 받았다"고 답했다.
이들 교사는 구체적 사례를 적어달라는 전교조 측 요청에 "(교장선생님이) '직접 이 제품으로 신청하세요'라고 했다", "심폐소생술 관련 교보재가 학교에 충분히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자꾸 권해서 신청했다", "(관리자로부터) 특정 업체 홍보책자를 전달받았다"고 답했다.
일부 교사들은 "어차피 교육청에서 주는 예산이니 신청하라고 해서 (필요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신청했다", "카톡으로 (교장 등 관리자가) 조달청 물품번호를 불러줬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50만원짜리 말고, 500만원짜리 교보재 콕 집어 '우선 지원' 방침 밝힌 교육청
전교조의 설문조사가 전남교육청의 이례적인 '공문 하달'이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일부 학교에서 드러난 관리자의 고가 심폐소생술 교보재 구매 압박의 배경에 전남교육청이 관련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통상 한 해 한 차례 공문이 하달된 것과 달리 올해는 3월, 10월 2차례에 걸쳐 사업 지원 공모 방침이 일선 학교에 전달됐다. 더욱이 10월 내려보낸 2번째 공문에서 전남교육청은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50만원 상당의 마네킹보다, 500만원짜리 스마트 심폐소생술 교보재 기기를 우선 지원한다며, 사실상 값비싼 교보재 구매를 독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보건교사들 사이에서 의혹이 커졌다고 한다.
전교조 관계자는 "일반적인 마네킹 만으로도 교육이 가능한데 왜 값비싼 교보재를 우선 지원한다고 공문에서 언급했을까하는 의문이 이번 설문조사의 배경이었다"라며 "막상 설문조사를 해보니 곳곳의 학교에서 교사들이 관리자로부터 구매 압박을 받고 있었다. 업체 배불려주기 사업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말했다.
이날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전남교육청이 올해 시행한 '학교 도서관 자동화 구축 사업'에 대한 사서교사 설문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지난 7월 전교조의 설문조사에 응한 22명의 사서교사 가운데 7명은 특정업체를 선정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교사 1명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교장 등 관리자와 마찰을 빚었다고 답했다. 16명의 사서교사는 "실제 제품을 보지 못하고 업체를 선정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대당 500만원 상당의 인공지능(AI) 로봇 보급 사업과 관련해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구매하고 싶지 않았지만, 관리자와 업체 측이 자꾸 구입하라고 요구한다"는 일부 교사들의 제보도 공개됐다.
김대중 전남교육감은 '심폐소생술 교보재 구매 관련 전교조 설문조사 결과와 거짓 수요를 만들어 전남교육청이 시행 중인 학교 전광판 설치사업 특정 업체 독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박형대 전남도의원 질의에 "일부 학교에서 빚어진 문제"라는 취지로 해명하면서도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