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feel special'이라는 트와이스의 곡이 올라왔다. 데뷔 35년 차 가수 신효범이 부른 커버 영상이었다.
원래 좋아하는 곡인데다가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이 언니가 부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사실 아이돌 노래는 듣기는 좋아도 부르기는 정말 어렵더라. 과연 이 가수의 노래는 어떨까? 하며 영상을 클릭했다가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깜짝 놀랐다.
특유의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와~ 이 언니 아직 안 죽었네, 이 노래가 좋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좋았다니' 하며 감탄에 감탄을 하며 무대 영상에 쏙 하고 빨려 들어갔다.
하나를 보고 나니 굴비처럼 다른 동영상이 꿰어져 나왔다. 알고보니 내가 본 영상은 KBS에서 새로 시작한 <골든 걸스>라는 예능 프로그램의 클립이었다. 박진영. 소위 대한민국의 3대 기획사 중 하나라는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자 유일한 현역 가수인 그는 프로듀서로 가장 잘 되고 있는 지금, 새로운 걸그룹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본인 회사에서는 커버할 수 없는 기획이라 거꾸로 방송국에 제안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걸그룹의 멤버로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를 꼽았다. 우리가 아는 그 걸그룹? 무대에서 노래 부르면서 한순간도 쉬지 않고 춤을 추는 그 걸그룹을 말하는 건가? 80년대와 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던 디바들로 걸그룹을 만들고 싶다니. 이 언니들 지금 나이가 몇인데 걸그룹이라니. 이게 가능한 조합인 걸까?
예상대로 쉽지는 않았다. 박진영이 찾아와서 걸그룹을 하자고 하니 가수들은 난색을 표했다. 도전은 해보고 싶지만 "내가 몸이 예전 같지 않은데, 이 나이에 할 수 있을까?" 하며 망설이면서도 네 명 모두 결국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가수들에게 박진영은 본인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걸그룹의 노래를 한 곡씩 지정해주고 2주 동안 연습해 무대에서 부르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내가 보았던 영상이 바로 숙제로 내주었던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었던 것이다.
신효범의 Feel special을 시작으로, 음이 높기로 유명한 아이브의 아이엠을 박미경이, 뉴진스의 Hype boy를 인순이가, 마지막으로 이은미가 청하의 벌써 12시를 불렀다.
이미 한 클립을 보고 난 후라 당연히 다른 무대도 좋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부르는 사람이 바뀌는 것만으로 이렇게 다른 분위기의 노래가 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자신 없어 했던 모습이 어이가 없어질 만큼 엄청난 무대 소화력으로 네 명의 가수는 원곡과는 색다른 레전드 무대를 만들었다.
이 언니들이 이렇게 무대 잘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30~40년차라고 무대가 뚝딱 되는 게 아니더라. 노래 잘 하고 연차 쌓인 가수들은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고 바로 그냥 부를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원숙한 가수들인 이 언니들도 숙제를 받자마자 본인만의 방식으로 집안 일을 하면서, 정해진 시간에 혹은 시간을 쪼개서 틈틈이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게 아닌가. 그냥도 아니고 진짜 열심히 하더라. 머릿속에 그 노래 생각밖에 없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이 부르던 노래가 아니라, 요즘 노래들이니 부르기가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감 있는 멋진 무대의 비밀은 바로 연습이었다. 너무 뻔하고 모두 다 아는 건데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거였다.
이렇게 무대를 끝내고 나니 프로듀서 박진영은 멤버들에게 합숙을 제안한다. "나는 혼자 있어야 돼. 우린 오래 봐서 눈빛만 봐도 다 알아" 하는 언니들 중 단연 돋보인 것은 큰 언니인 인순이였다. "안 해 보고 상상하는 것보다 해보는 게 편해"라면서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큰 언니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결국은 합숙을 하게 되고 신체능력 테스트를 할 때도 발군의 신체능력을 보여주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려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더니 나이는 제일 많은데 몸도 마음도 걸그룹에 적합하게 이미 준비되어 있는 큰언니였다.
다른 가수분들도 큰 언니 못지 않았다. 프로듀서이기는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인 박진영의 조언에도 "나 이 바닥에 몇 년째 있었어.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라면서 듣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잘 새겨듣는 모습도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40을 넘어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면 도전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게다가 모든 조언은 잔소리같이 들리고 듣기도 싫어진다. 누군가 싫은 소리를 할라치면 "내가 20년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는데 훈수라니, 그게 가당키나 해?" 하며 꼰대 마인드가 스멀스멀 올라오기부터 하던데, 이 언니들은 정말 대단하다.
20~30년 동안 대가의 경지에 오르고도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하고 바꾸려고 자신을 채찍질 하는 모습을 보니 이 언니들이 어떻게 지금껏 그 험하디 험한 쇼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살아남았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앞으로 네 명의 언니들이 어떤 걸그룹이 될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갈수록 나도 언니들을 보고 배울 점들이 많아질 것 같아서 기대된다. 나이 들어서도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언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