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 알앤티와 두성산업. 2021년부터 2022년 사이에 간독성 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이 포함된 세척제를 사용하면서 국소배기장치 설치, 안전보건교육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지키지 않아 노동자 수십 명이 급성 간 중독을 일으킨 사건이 벌어진 회사들이다.
이 사건으로 두성산업 대표는 전국에서 처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다. 같은 물질, 비슷한 사고였지만 대흥알앤티는 '형식적 조치'가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되었다. 그게 억울했던 것일까? 두성산업 측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2023년 11월 3일 두성산업 대표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법인에 대해 벌금 2000만 원, 대흥알앤티 대표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법인에 벌금 1000만 원이 선고됐다. 이들 업체에 세척제를 공급한 김해의 세척제 제조업체 유성케미칼 대표만 징역 2년의 실형과 함께 3000만 원의 벌금이 선고되었다.
젊은 연극인들이 이 과정을 살펴보며 15분의 짧은 연극을 만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전문사과정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최귀웅(연출), 정인혁(조연출 및 진행), 양진규(배우)를 만났다.
- 최귀웅, 정인혁님은 올 초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 제작에도 함께하셨다고 들었는데, 세 분 모두 원래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최귀웅 : 2012년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대학 친구들과 함께 <앵그리볼트>라는 작품을 만들어서 공연했었다. 당시가 대학 졸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 책을 읽고 내가 이 사건을 이다지도 몰랐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뉴스를 보고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걸 '사람 이야기'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사건으로, 뉴스로만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블랙리스트 등 연극계 안에서 일이 많기도 했고, 사느라 바쁘다가 작년에 노조법을 주제로 하는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 제작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고 함께하게 됐다. 이번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주제로 한 단막극 제안도 그렇고,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이 세상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불만의 표시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사는 사회에서 참사가 이렇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 벌어진 참사가 이렇게 해결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표현하고 싶어서 참여했다.
정인혁 : 평소에도 노동문제나 뉴스에 관심이 적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작품을 만들고 같이 공연하려고 보면 모르는 게 정말 많더라.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 때도 많이 알고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자세한 내용은 생소하기도 하더라. 이번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자료를 찾아보고 기사를 읽으면서 용어들도 새로 익히고, 기소나 불기소, 판결의 논리와 쟁점들도 새로 알게 되었다.
양진규 : 어릴 때, 흔히 말하는 '평범'한 집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한 쪽에 치우쳐서 살았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게 내 안에서 그런 치우침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었다. 치우치거나 기울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더 들여다 보게 되는 것 같다. 기사나 정보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고, 그런 마음으로 어린이·청소년 연극을 고민하고 전공하고 있다.
- 중대재해처벌법이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법이긴 하지만, 막상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주제를 어떻게 정하고 준비하게 되었나?
최귀웅 : 먼저 '생명안전후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악저지 공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강은희 변호사를 만나서, 법의 주요 내용이나 최근의 동향, 판결 등에 대해 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 기소 사건이라고 알려진 두성산업 독성간염 사건에서, 유사한 상황의 대흥알앤티는 불기소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대흥알앤티의 불기소 사유가 로펌들을 통해 회자되면서, 이렇게 하면 처벌을 모면할 수 있다는 식으로 활용된다는 얘기를 듣고 분노, 답답함, 놀라움 등을 느꼈다. 그래서 그 뒤에 판결문, 기소와 불기소 이유서 등을 찾아보고, 국회에서 법 제정 과정이나 이후 국정감사 등에서 나온 자료 등도 찾아보면서, 이 이야기로 시작하자고 뜻을 모았다.
양진규 : 각 회사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자연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홍보 영상의 문구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런 사고를 낸 회사에서 저런 홍보 영상이라니.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정과 감각이 있었는데 이런 점들을 관객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이 홍보 영상이 우리 극에도 활용된다. 기대하셔도 좋다.
- 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산업재해를 다룬 다른 연극들에서도 어쩔 수 없이 길게 설명하는 부분을 넣는 경향이 있다. 아예 강의 장면을 차용하거나 랩처럼 구사한 연극도 있었는데, 이번 극에서는 어떻게 접근했나?
최귀웅 : <만나면 좋은 친구 :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및 신분을 이유로 행한 차별 진정 건>이라는, 중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에 대한 연극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 때 대사가 엄청 길었다. 한번에 한 바닥씩 쭉쭉 읽어야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하지만 15분의 짧은 연극을 그렇게 하면 '가르치려는' 것으로만 흐를 것 같아서 조금은 다르게 하고 싶었다. 열악했던 사업장 상황이나 사고가 발생하는 실제 상황을 연기로도 보여드리기도 하고, <꼬꼬무>나 <그것이 알고싶다>의 중간 정도되는 형식으로, 시간을 따라 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최근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정부가 50인(억)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를 연장하려는 시도까지 담았다.
양진규 : 사건의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 기사를 검색해 봤는데, 언제부터인가 대흥이라는 회사 이름은 들어가 버리고, '가짜 세척제' 문제가 핵심으로 떠올랐다. 물론 세척제 제조 업체도 잘못이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사용한 회사들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걸 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런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묻어 버리고, 덮어버리려는 시도들. 아까 말한 회사 홍보 영상처럼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마음이 들었다. 극을 보시면서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우리도 경험했던 그 감각을 관객들이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다.
공연을 준비한 이 젊은 연극인들은 관객들에게 '관심 있는 분들이 오실 거다. 여러분들이 하는 얘기와 같은 마음을 연극으로 한 거라고 생각하고 연대라는 마음으로 봐달라. 연극으로도 떠드는 사람이 있으니 힘 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이 만든 단막극 <중대재해처벌법 : 대흥알앤티 집단독성간염 사건을 중심으로> 는 11월 17일 저녁 7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생명안전후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악저지 문화제 다짐'에서 상연된다. 문화제 다짐은, 2022년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50인(억) 미만 사업장 적용을 2년 더 유예한다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마음을 모아 열리는 문화제로, 무료로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