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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이주민인권센터인 '이주민과함께'라는 단체가 있다. '2023년 대한민국 민주주의 대상'을 받은 단체이다. 이 단체에서는 '이주민 통번역센터 링크(Link)'를 운영하고 있다. 이주민 통번역센터 링크(Link)는 통번역 지원을 통해 이주민 스스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 언어장벽과 정보부족으로 인한 차별을 뛰어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링크는 이중언어에 능통한 이주민을 대상으로 통·번역자를 모집하고 교육하여 320명의 통·번 역활동가를 배출했고, 2023년 현재 18개 언어 50여 명의 이주민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의료통역에 있어서는 부산대학교병원 협력사업으로 '이주민 의료통역 전문과정'을 10여 년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문영역을 구축했고 이러한 시스템이 있었기에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이주민의 방역, 치료, 격리, 백신접종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한 부산시는 2012년 500만 원을 시작으로 2022년 1억 원으로 서서히 증액해서 예산을 지원해 왔다. 그런데 부산시에서 2023년 예산을 50%나 삭감해서 편성했다. 이용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만족도가 높아 그 성과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연구년을 맞아 미국의 한 대학에 초빙교수로 갔을 때의 일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립도서관에 자주 갔었다. 무심히 책을 보고 있는데, 도서관 한 쪽 귀퉁이에 갑자기 조그만 꼬마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쯤으로 보이는 어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볼륨의 밝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모여든 꼬마 아이들은 그 노래에 맞춰 앙증맞은 몸짓을 마음껏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그 노래 소리는 스페인어였고, 프로그램도 스페인어로 진행되었다. 알고보니 그 프로그램은 남미(South America) 출신 가정의 어린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남미에서는 대부분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데,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아주 어릴 적에 미국으로 건너온 아이들은 자신의 모국어를 잊고 영어에 익숙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미국의 도서관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스페인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두고 있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민들을 위해 이주민들의 언어를 미국이 가르친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더 그렇다.

2023년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22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1990년에는 9500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제결혼 비율이 10%를 넘나들고 있고, 농촌 총각 10명 중 4명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있다.

그런데 비영리단체 등에서 결혼이민자나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란 것들이 대부분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한국문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주거나 그들을 주체로 세우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만든다면 더 좋지 않을까?

이제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자. 한국에 적응해야 하는 외부인이 아니라 다양성을 가르쳐주는 우리 중의 한 사람으로 말이다.

#이주민#이주민과함께#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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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부터 동의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재직 중이며, 부산참여연대, 부산사회복지연대, 부산을바꾸는시민의힘민들레 공동대표, 포럼지식공감 상임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수영구지역위원장이여 관심 연구분야는 장애인복지정책, 차별과 인권, 지역사회복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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