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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이미지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이미지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대를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래서 우리의 얼굴은 시대를 닮았다. 나의 전공 교수님은 학부 시절부터 교수 생활까지 똑같은 대학에 다니셨다. 여느 때처럼 평범한 수업 때 교수님은 이유 모를 질문을 던지셨다.

"너희 왜 학교 길바닥이 아스팔트인지 알아?"

시대가 변하면서 도로 사정이 나아진 걸까. 저마다 나름대로 추측을 던지는 학생들 사이에서 교수님은 코웃음을 치셨다.

"우리 때 하도 데모를 많이 해서, 바닥에 깔린 벽돌을 다 깨서 던졌거든."
"더 이상 데모하지 말라고 아스팔트를 깐 건데, 너희들이 어떻게 알겠냐?"


교수님 말씀이 맞다. 우리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민주화 운동 세대의 이야기였다. 더 이상 대학가에는 데모도,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노래도 없다. 게시판에는 대자보가 아닌 채용 공고가 빼곡하고 사회와 학교 정치를 비판하던 교내 언론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언론은 청년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했고 학부 총학생회는 매년 출마한 후보가 없어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됐다.

그 시대에 속한 내가 <서울의 봄>을 봤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가 주동하고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일으킨 군사 반란인 '12·12사태'를 모티브로 한 영화였다. 역사책에서 스치듯 배운 기억이 나지만, 그뿐이었다.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 속에 영화관을 찾았고, 나는 그곳에서 우리의 이름을 발견했다. '밀레니얼', 'MZ' 말고 우리 세대의 진짜 이름을.

2023년에도 오지 못한 서울의 봄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이미지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이미지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은 제5, 6, 7, 8, 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해 사망한 이후에 벌어진 이야기를 담았다. 권력에 눈이 먼 전두광(황정민 분)이 군부 내 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이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분)의 투쟁이 핵심적인 서사다. '전두광'이라 칭해도, 그의 까진 머리와 경상도 사투리는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독재자를 생각나게 한다.

<서울의 봄>은 '12·12사태'가 벌어졌던 9시간을 담았다. 전두광과 노태건(박해준 분)은 하나회를 중심으로 세력을 모아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고, 대통령에게 재가를 강제하고, 끝내 서울을 집어삼킨다. 그러나 서울의 봄을 앗아간 건 둘만이 아니다.

전두광과 노태건 뒤에는 함께 군사반란을 꾀한 제1군단장, 국방부 군수차관보, 여단장, 대령까지 수많은 인물이 있다. 박정희 사망 이후 불어온 민주주의 물결에 자기 자리를 잃을까 봐, 오직 권력 보존을 위해 반란에 가담했다. 끔찍한 건 그들의 욕망이 아니다. 이 캐릭터들은 모두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였다. 그들은 '12·12사태' 이후 국가 권력 내 주요 보직을 도맡았으며, 일부는 어떠한 재판과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지금까지 살아있다.

게다가 <서울의 봄>은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서 관객이 이미 결말을 알고 있다. 설령 영화에서 전두광이 군사 반란에 실패하거나, 처벌받거나, 고통스럽게 죽는다 해도 관객은 만족할 수 없다. "전두환이 자연사했다는 사실이 화가 난다"는 관람객 평처럼 그의 최후를 아는 한, 영화는 관객에게 어떠한 카타르시스도 줄 수 없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다가 화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서울의 봄>을 봐야 할까? 먹고살 걱정만 해도 버거운 시대에 전두광의 추잡한 욕망을 세 시간 가까이 청취해야 하는 이유. 그건 또 다른 전두광이 나타날까, 혹여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할까 매서운 현실을 직시하는 시민만의 마음이다. 영화관을 빼곡히 채운 관객 숫자는 현실 속 수많은 전두광을 감시하는 눈이다.

저는 세월호 세대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이미지
영화 <서울의 봄> 스틸 이미지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을 보고 나는 그 시절, 민주화 운동의 얼굴들을 만났다. 끝까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버틴 이태신, 그의 동료, 부하들까지. 결연하고, 동시에 단념하고, 희망의 불쏘시개를 던지는 얼굴들. 1979년의 봄은 그들의 표정에 남아 있었다. 그들은 세대의 얼굴을 가졌고 그 세대는 곧 재난이었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얼굴을 가졌을까. 우리 세대는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하나.

묘하게도, 나는 교수님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 있다. 학원 강사가 되어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던 때였다. 현장체험 학습을 간다며 설레하는 아이들이 귀여우면서, 동시에 이상했다. 분명 초등학교 때도 많이 가봤을 텐데 마치 처음 가는 사람처럼 신나 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너희 초등학교 때 체험학습, 많이 안 가봤니?"
"뭐더라, 세월호 때문에 그런 거 다 끊겼다는데요?"


세월호, 그 세 글자에 숨이 막혔다. 아이들은 2014년의 참사를 알지 못했다. 내가 민주화 운동에 대해 책으로, 뉴스로, 어른들의 슬픈 표정으로 배웠던 것처럼 아이들도 세월호를 배웠다. 나와 같은 세대라면 세월호를 잊을 수 없다. '전원 구출'이라는 허망한 헤드라인과 책임을 넘기기 바빴던 어른들,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했던 묵념. 그리고 나의 책가방을 따라다니던 노란 리본까지.

"너희는 세월호를 모르는구나, 나랑 다르네."

니들이 어떻게 알겠냐던 교수님과 같은 위치에 놓이자,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세대는 밀레니얼도, MZ도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가 겪었던 재난이 정답일지 모른다.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잊히지 않고, 잊지 않기 위해 분투하게 하는 일. 이제는 현대사에 대한 영화가 나오면, '영화관까지 가서 이런 거 봐야 하냐'라고 툴툴거리면서도, 빠짐없이 좌석에 앉던 어른들의 심정을 알 것만 같다.

나는 <서울의 봄>에서 세대의 이름을 찾았다. 마치 전두광처럼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과 이태신처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 그리고 그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까지. 그 사람들이 모여 한 시대를 만들고, 한 시대를 살아간다. 민주화 운동 세대에 바통을 이어받은 우리, 세월호 세대는 노란, 보라 리본과 함께 봄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서울의봄#전두환#노태우#세월호#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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