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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고향은 출신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같은 하늘 아래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로 잠깐 낯설다가도 곧바로 안정감을 느끼는 마음의 공간이다. 일자리를 찾아, 원대한 꿈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각지를 떠돌며 밤낮없이 일에 매달릴 때에도 떠올리면 따뜻하고 언제나 그리운 곳이 고향일 것이다. 이처럼 여전히 고향인 경남 함양을 그리며 살아가는 향우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주간함양>은 매달 한 편씩 연재되는 '함양 향우를 찾아서' 특집을 통해 각지에 있는 고향 향우들을 만나 끈끈한 정을 느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노은식 디케이락(주) 회장
노은식 디케이락(주) 회장 ⓒ 주간함양
 
최근 재외함양군향우회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향우 디케이락(주) 노은식(66) 회장은 향우회와 향우들의 발전은 물론 고향 함양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케이락을 이끌고 있는 노 회장은 향우회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함양군-부산해운대구 우호교류 체결 지원 및 엑스포 지원 등 대외협력 사업 지원, 함양군 장학회·해강장학회 등 각 교육기관과 단체에 장학금 지원등 고향 함양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일자리 창출과 3천만불 수출탑 수상 등 기업활동을 통한 국가발전 이바지하는 것은 물론 네팔 고리지역 휴먼스쿨 건립을 통한 국제사회 공헌, 각종 기부단체 기부활동 등 출향인으로서 군 위상 제고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2021년 함양군민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주간함양은 먼 타지에서 함양이라는 이름을 빛내고 있는 향우 노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김해에 위치한 디케이락을 방문했다.


노 회장은 백전면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함양에서 대평초등학교를 졸업후 부산으로 떠나 동아중학교·건국고등학교·부산디지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시작부터 쉽지 않은 삶을 이어가야만 했던 노 회장은 부산으로 유학을 하면서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형님의 말을 듣고 1년 뒤 부산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부산에 6촌 형님들이 계셨고 형님들의 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죠. 학업과 일을 병행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때만 해도 다들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6촌 형님 회사에서 볼트와 닛불을 만드는 일을 18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해오다 1986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바로 '대광닛불상사'(현 디케이락)를 설립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 일을 하면서 언젠가는 내가 한번 직접 경영을 해봐야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경영에 대한 꿈이 더욱 견고해졌고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죠. 그동안 모아둔 돈 500만 원으로 작은 가게 겸 공장을 지은 것으로 출발했죠."

회사를 운영하면서 볼트와 닛불 대신 피팅과 밸브를 만들기로 결심한 노 회장은 5명의 직원들과 밤낮없이 일하며 회사 일에 매진했다.

"시작 1년은 주말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이제 38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오랜 세월 동안 아이템들도 많이 바뀌었고 꾸준히 발전해 가면서 2010년에는 코스닥 시장에 상장됐죠."

창립한 해인 1986년부터 오랜 세월 동안 발전을 이어온 디케이락은 현재 차별화된 기술력과 고객만족 서비스로 혁신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고 글로벌 선도사와 대등한 기술력과 고유 브랜드로 해외 50여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계측장비 및 반도체 분야 피팅 및 밸브 제조업체로서 오일·가스, 정유·화학, 기계·장비, 건설·EPC, 조선·해양, 반도체·디스플레이, CNG·NGV, 우주·항공, 수소 등 다양한 산업설비 배관에 설치되는 핵심 부품을 생산 중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2010년 11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 2014년 3천만불 수출탑과 2022년 5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하는 등 수출 지향형 강소기업으로 지속 성장을 이루고 있다. 또 미주와 유럽을 비롯한 중동,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47개국 117개 대리점을 갖추고 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는 디케이락. 이를 이끌고 있는 노 회장은 함양의 큰 자부심으로 거듭났다.

앞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 다양한 사업·고객, 글로벌 현지화, 지능형 스마트 팩토리 등 핵심 경쟁력을 기초로 경영비전인 피팅·벨브 글로벌 탑 3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다.

"고향만큼 푸근하고 정겨운 곳 없어"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디케이락을 이끌고 있는 노 회장. 재외함양군향우연합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만큼 고향 함양 또한 발전을 이루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더 크다.

"함양은 저의 뿌리이고 고향이다 보니 함양을 위한 향우회 활동을 하면서 지원을 이어가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또 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함양이 어려운 상황인 건 분명합니다. 지금 함양에는 젊은 층들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우리 함양 향우들이 고향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장학 사업 등 그런 부분들에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자주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다양한 방법으로 고향 사랑을 몸소 실천하면 우리 함양이 좀 더 살기 좋은 고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고 그렇게 되면 외부로 나갔던 사람들도 고향으로 귀향하고 해서 인구도 좀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류 공장이나 생산 공장들이 좀 많이 생겨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함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고 덧붙였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만큼 걱정된 마음으로 함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과거 함양에 있었던 기억을 되살리면 금세 또 좋은 추억에 젖어드는 노 회장이다.

"고향에 가면 예전하고는 참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곳곳에 향수들이 배어 있는 게 사실이죠. 저도 해외 출장을 자주 나갑니다만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그래도 우리 고향만큼 푸근하고 정겨운 곳이 잘 없지 않습니까? 그런 고향이 있다는 거만 해도 참 살아가는데 엄청난 행복이고 언제든지 또 가면 옛날 추억이 떠오르니 항상 특별한 느낌을 받곤 하죠.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고향에 가면 시골 친구들이 귀향을 해서 동네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고향에 가면 그 친구들과 밥도 한 그릇씩 하면서 반가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겨운 고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노 회장은 끝으로 향우연합회 회장 활동을 하면서 전국 향우들이 함양에 좀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향우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만큼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 창원 등 많은 분들과 어울려 모두가 고향 함양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또 애정을 느낄 수 있게끔 나름대로 많은 노력들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고향을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립니다.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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