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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은 그 가문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윗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은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통음식은 계승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지만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전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집안의 전통음식, 옛 음식을 전수해 줄 함양의 숨은 손맛을 찾아 그들의 요리이야기와 인생 레시피를 들어본다.[편집자말]
해마다 전국의 바둑 고수들이 경남 함양을 찾는다. 함양 출신 노사초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노사초배 전국바둑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구한말 조선바둑의 일인자로 군림했던 노사초(盧史楚) 선생은 1875년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서 태어났고 광복을 맞은 1945년 생을 마감했다. 노사초(盧史楚)의 본명은 석영(碩泳)이며, 호는 사초(史楚)다.

노사초 선생이 바둑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백남규 국수를 만나면서다. 그는 30세가 지나 본격적으로 바둑에 정진하였으며,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바둑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 주었다.

노사초는 만년이었던 1942년 일본기원에서 입단한 청년 조남철과 기념대국을 가졌고, 1944년 일본의 기다니미노루와 여자프로 혼다가즈코가 방한했을 때 조선의 대표로서 혼다와 대국을 하여 백을 들고 일본식 바둑으로 만방을 이겼다.

노사초 선생은 약관의 나이로 진사시험에 합격했지만, 나라를 잃은 허망함에 더 이상의 대과출시를 포기하고 바둑을 벗 삼아 전국을 유랑하며 살게 된다. 바둑과 관련된 노사초 선생의 일화는 수없이 많다.

며느리의 산후 조리를 위해 보약을 지으러 나갔다가 친구를 만나 그길로 바둑유람을 떠나기도 했고, 헐벗은 사람을 보면 자신의 옷과 바꿔 입기도 했다. 집이나 논문서를 걸고 내기 바둑을 즐겼는데 돈을 따면 대부분 나눠주고 바둑에 지면 노참판댁 고택이 차압되고, 다시 풀리기를 무려 27차례나 반복했다고 전해진다.

노사초 선생은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노광두(盧光斗)로 호조참판을 지냈다. 흉년이 든 해엔 백성들의 세금을 탕감하게 해 준 강직하고 청렴한 사람의 후손답게 노사초 선생 또한 어질고 물욕이 없었으며 베풀기를 좋아했다. 선친의 가산을 정리하여 10만 냥을 국난극복자금으로 헌납하기도 했으며 하수와도 격의 없이 잘 어울렸다고 한다.

노사초 선생은 슬하에 2남2녀를 두었으며 장남 상국씨의 부인인 며느리 이정훈 여사가 노사초 생가를 지키고 있었으나 2016년(당시 92세) 별세하였다. 현재는 손주 노철환씨와 아내 이명희 여사가 노사초 생가에 기거하고 있다.
 
 노참판 4대손 며느리(종부) 이명희 여사
노참판 4대손 며느리(종부) 이명희 여사 ⓒ 주간함양
 
노사초 선생의 손주며느리 이명희씨

노사초 선생의 장손과 결혼한 이명희 여사는 선대 어르신의 일화를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녀의 기억 속엔 사람을 좋아하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활동을 묵묵히 내조해 온 시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이명희 여사가 바라본 시어머니는 단정하고 얌전하셨다. 문밖출입을 잘 하지 않는 분이었다. 마을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어울리고 즐기시곤 하셨지만, 시어머니는 그걸 마다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다.

"시아버지도 바둑을 좋아하셨어요. 사랑채에 손님이 끊이질 않았지요. 아버님은 저녁 무렵이 되면 손님들이 가실까 계실까 조바심을 내셨죠. 어머니께 저녁상을 준비해 달라고 말해야 했으니 눈치가 보이셨겠죠.

어둑어둑해 진 저녁이 되면 아버님은 그제야 식사하실 손님이 열분, 아홉 분 이렇게 인원수만 말씀해 주시죠. 그럼 어머니는 그 짧은 시간에 손님 저녁상을 보셨어요."


손님이 많아서 밥이 모자랄 땐 가족이 먹어야 할 밥도 내놓았다. 제철에 맞게 집에 있는 식재료로 손님상을 준비한 이정훈 여사의 음식 솜씨는 뛰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사는 시어머니로부터 음식을 배웠다.

"우리 어머님은 음식도 단정하고 얌전하게 하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로부터 음식을 배우긴 했지만, 어머니에 비해 부족함이 많아요." 

이명희 여사가 노사초 집안의 며느리가 된 지는 50여년 째. 결혼 이후 집안음식, 전통음식을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레 전수받을 수 있었다. 평소에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시어머니를 통해 전통음식의 경험을 쌓아갔다.

특히 이 여사의 친정어머니는 안동 하회풍산류씨로 음식솜씨도 남달랐다. 친정어머니 또한 음식으로는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셨기에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음식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역에 따라 음식도 특색이 있어요. 친정에서 보았던 음식, 어머니가 하셨던 음식은 매우 정교하고 화려해요. 고명으로 음식에 장식을 많이 하죠. 이와 반대로 함양의 음식은 식재료의 특징을 그대로 살리고 깔끔해요. 선비답게 반듯하고 정갈한 것이 음식에 배어있어요."
 
ⓒ 주간함양
 
풍류 즐기며 먹는 사초국수

바둑을 두게 되면 끝나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대국이 열리면 바둑을 두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바둑판 주위로 모여들고 그들이 머무는 시간도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바둑을 두는 노사초 선생 주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바둑을 두며 허기진 시간에 사초 선생이 드셨던 국수가 현재 '사초국수'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초국수는 국수이셨던 할아버지가 드신 국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사초는 할아버지의 호입니다."

사초국수는 일반 국수와 차이가 있다. 사초국수는 면기보다 밥공기에 담길 만큼 양을 적게 하여 상에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사초국수는 양이 많은 국수가 아니에요. 사초국수는 식사 때가 되기 전 간식처럼 드시는 것으로 국수로 배를 채우기보다 약간의 허기를 가시게 할 정도로만 담아냅니다. 대신 사초국수에 곁들인 상차림에 내 놓은 음식이 다양하죠."

다과상을 차려놓고 바둑을 두며 맛과 멋에 취해 풍류를 즐긴 노사초 선생이 눈 앞에 그려진다. 사초국수와 어우러진 다과상에는 그때그때 계절에 맞게 메뉴를 정하고 한 상 가득 차려낸다. 시어머니께 음식과 사초국수를 배운 이명희 여사가 현재로는 유일한 사초국수의 전수자이다.
 
ⓒ 주간함양
 
사초국수, 가장 중요한 것은 육수
 

몇 해 전 사초국수는 종가음식의 대표 요리로 선보이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사초국수를 상품화하여 판매할 것을 추천하기도 했다.

"사초국수는 만드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단가가 비싸 판매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이것이 사초국수를 알긴 하지만 먹어본 사람이 드문 이유이기도 하다.

사초국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수. 양지머리로 소고기 육수를 내고 담백한 맛을 내는 피문어가 들어간다. 황태, 무, 다시마, 표고버섯, 생강, 새우 등을 넣고 간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집간장으로 하며 마지막에 마늘을 넣어준다. 끊이는 시간도 센불에 한 시간, 약불에 두 시간가량 우려내 육수를 완성한다.

사초국수와 어울리는 음식으로는 두릅을 넣은 수란, 무 피를 떠서 속을 채운 무 만두, 산초장떡, 육전, 죽순전, 닭겨자채, 더덕구이. 특히 임금님 수라상에 올린다는 황태보푸라기는 귀한 손님이 오면 꼭 올리는 음식이며 술안주로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구절판도 빠지지 않는다.
  
음식은 그 사람을 기억나게 한다

10남매의 맏이와 결혼한 이명희 여사는 시부모님의 사랑도 많이 받았기에 형제들에게 베풀며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었다. 언제나 찾는 이가 많아 북적이던 이 집안이 형제자매들로 북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시누이, 시매부, 조카들까지 가족이 많은 만큼 식성도 다양하다.

이명희 여사는 가족들 중 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알게 된다고. 그래서 그녀의 냉동고는 일년 내내 모아둔 식재료가 가득 쌓여있다. 대문을 열며 불쑥 찾아 오는 손님을 위해 정성을 모아놓는 그녀의 마음이다.
 
ⓒ 주간함양
 
사초국수 레시피

재료 (10그릇 기준)

황태 1개: 황태는 잡냄새를 없애준다.
피문어(중자 크기) 1개: 함양 지역에서는 음식 할 때 피문어를 많이 사용한다. 문어는 약간 텁텁한 맛이 나는데 말린 문어는 담백한 맛이 난다.
양지고기(양지머리) 1근, 큰 무 3토막, 생강 2쪽, 다시마, 새우(말린 새우) 300g, 표고버섯 5~6개, 간장, 간마늘, 국수면, 고사리, 계란지단, 물

육수 만드는 법

1. 처음에 피문어를 넣는다. 피문어는 아무리 끓여도 맛이 다 빠져나오지 않는다. 국물이 진하게 오랫동안 나온다. 그래서 옛날 양반집 아랫사람들이 피문어를 먹으려고 기다리곤 했다고 한다.
2. 황태(대자 하나), 무(큰 것 세 토막), 새우(300그램)를 넣는다.
3. 표고버섯(~6조각)을 넣고 생강 두 쪽을 넣는다.
4. 양지를 넣는다. 양지는 젓가락으로 찔러보고 익었으면 꺼내야 한다. 끝까지 몇 시간 끊이면 고기가 퍽퍽해지고 국물도 탁해진다. 건져낸 양지는 국수 고명으로 사용한다. 양지는 약 한시간정도 뒤에 꺼내면 된다.
5. 다시마를 넣는데 다시마는 10분 가량 지나면 꺼낸다.
6.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집 간장으로 간을 한다. 처음부터 간을 하면 짜기 때문에 육수가 어느 정도 만들어지고 나서 넣는다. 약간만 간을 하고 다음날 아침 육수를 다 끓인 후 다시 간을 보면 된다.
7. 물을 가득 담고 졸인다. 육수가 팔팔 끓기 시작한 후 한 시간 가량 센불에서 끓이다가 약한 불에 2시간 더 끓이면 된다.
8. 마늘은 국물을 다 내고 나서 넣는다. 마늘도 많이 끓이면 육수가 탁해진다.
9. 육수가 다 끓었으면 마지막 간을 한다.

국수 만드는 법
 

1. 국수면을 삶는다.
2. 국수면에 고사리와 계란지단, 김, 육수 끓일 때 쓴 표고버섯과 양지를 알맞게 썰어 올려준다.
3. 육수를 담아준다.

다과상 요리 설명

- 무 피를 떠서 안에 만두 속을 넣어서 만든 무만두
- 전복을 간장에 절여놨다가 찌는 형태로 한 전복요리
- 산초장떡, 산초는 부드럽고 예쁠 때 전을 굽는다.
봄에 미리 뜯어 놓는 산초를 이용한다.
- 보쌈김치와 육전
- 수란은 주로 봄에 두릅이 처음 날 때 해 먹는 음식이다.
두릅이 없을 때는 쑥갓을 사용해도 된다. 식초와 잣을 넣고
간을 맞춘다.
- 김부각, 죽순전, 산적, 더덕구이
- 닭가슴살을 삶아서 겨자에 넣어 만든 닭겨자채
- 황태 보푸라기. 귀한 손님이 오면 만드는 요리, 이바지에도
꼭 들어가는 음식이다
- 죽순, 달걀, 오이, 고사리, 고춧잎, 표고버섯, 도라지 등으로
꾸며진 구절판, 구운 전병은 치자를 이용해 색을 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사초국수#이명희#노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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