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위원회 위원 위촉부터 의제 선정까지 논란이 있었던 충북교육청의 공론화사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도교육청이 위촉한 공론화위원회 위원들은 '교육 주체(학생, 교사, 학부모)간 관계 회복을 위한 방안'을 주제로 결정했고, 세부 의제도 결정했다.
9월 두 번의 토론회를 개최한데 이어 지난 9일에는 200여 명이 그룹으로 나눠 각 의제의 찬반 주장과 근거를 제시했고 투표도 진행했다. 이들이 도출한 최종 결과물은 오는 12월 말 발표될 예정이다.
총 예산 4억 6천여 만 원이 투입된 공론화사업의 목표는 교육 주체와 도민 의견 수렴 및 토론을 통한 구체적인 갈등 조정 기준안 마련이다. 또 도교육청은 공론화 과정에서 나온 결과를 정책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중앙정부의 교육비 삭감으로 학급운영비마저 줄이는 어려운 형편에서 진행된 충북교육청의 공론화 사업의 의미와 문제점을 짚어본다.
이미 교육부·도교육청이 발표했는데 공론화 의제?
우선 3개월에 걸쳐 마련했다는 공론화 사업의 결과물부터 살펴보자.
도교육청에 따르면 공론화위원회가 결정한 의제는 ▲교육공동체 회복 ▲교육 민원 체계 및 제도 개선 ▲교사 훈육권 보장 ▲중재위원회 의무화 등이다.
각각의 세부 실천 방안으로는 ▲학생·교사·학부모간 상호존중의 약속문 작성 ▲학습권·교육권 제한 방지를 위한 교사의 민원 대응 업무 배제 또는 축소 ▲학생·교사·학부모가 참여한 교실 안팎의 문제 행동 사례 모음 제작 ▲교권 침해 등 발생 시 갈등 조정 과정 의무화 등 각 의제마다 3~4개씩이다.(사진 참조)
각각의 세부 의제를 살펴본 결과, 이미 지난 9월 교육부와 충북교육청에서 발표한 내용과 사실상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교육부는 '교권회복 및 보호강화 종합방안' 발표를 통해 교원 개인이 아닌 기관이 민원에 대응하는 체제로 개선하기 위해 학교장 책임하에 민원 대응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개별학교에서 다루기 어려운 민원은 교육지원청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교육장 직속의 통합 민원팀도 설치·운영하기로 했다. 교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통한 민원 요청에 응하지 않을 권리가 부여됐고 무엇보다 교권 4법이 통과됨에 따라 교육부 발표의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충북교육청 또한 9월에 '학교 현장 밀착형 교육활동 보호 종합지원'을 위해 5가지 사항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세부 사항은 ▲교사의 교육 권리 보장 ▲문제 행동 학생 대응 ▲교육 활동 보호 원스톱 지원 시스템 ▲충북형 민원 대응 ▲시스템 인식확산 및 자료개발 보급 등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공론화사업에서 토론을 통해 결정한 의제는 이미 교육부와 교육청이 '해야만' 하는 사업으로 결정된 내용이다.
특히 '학교장의 권한 및 책임 강화'는 이미 전교조 등 교원단체에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사안으로, '해야 한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사안이다.
물론 도교육청에서는 이에 대해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공론화 과정 속에서 참가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합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타당한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수십만 명의 교사가 더운 여름 수개월동안 아스팔트에 앉아 수없이 주장한 내용이고, 이에 따라 교육청과 교육부가 개선방안을 내놓을 것을 굳이 또 다시 예산을 들여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는 의제 선정 자체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세 번의 토론회에 모두 참가한 A씨는 "공론화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관심이 많아서 했는데 이제는 이미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다 대안을 발표했는데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은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한데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예산 낭비, 준비 부족
일부에서는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론화사업 예산은 4억6천여만 원이다. 예산 낭비의 단적인 예는 참가자들의 사례비다. 도교육청은 총 세 번의 토론회 중 두 번은 1인당 20만 원의 사례비를 지급했고, 12월 9일에 열린 토론회는 10만 원 정도를 지급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했을 때, 세 번의 토론회에서 사례비와 식비로만 5천만 원 이상의 지출이 예상된다.
예산낭비에 이어 참가자들의 준비 부족도 문제다. 학부모 B씨는 "용역업체에서 인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인원을 동원하기도 했다.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했지만 사례비가 없었다면 인원이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B씨는 이어 "가족단위로 많이 왔고 어르신, 학생 중에는 교육 3주체 뜻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며 "물론 관심이 많은 사람도 있었지만 공론화 사업이 왜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들과 이런 것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사례비가 없었다면 참석자 수가 크게 저조했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공론화한다면서 대화 없어
무엇보다 도교육청은 공론화사업을 진행하면서 정작 대화를 요구하는 교육주체들과는 대화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단재고 정상개교를 원하는 도민행동(이하 도민행동)이 대표적인 예다. 도민행동은 지난 4월부터 8개월간 도교육청에 교육감과의 대화를 요구했지만, 단 한번도 응하지 않았다며 도교육청에 크게 분노하고 있다.
청주시학교학부모연합회 또한 도교육청과 청주교육지원청에 교육공동체 회복과 관련해 대화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한 관계자는 "서이초 사건 이후 학부모로 선생님들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좋은 방안을 찾고 싶어서 대화를 요청했다. 하지만 청주교육지원청에서는 예민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거절했고 도교육청에서는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도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주체들의 의견을 모으고 서로의 입장을 모으는 과정을 통해서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론화 사업을 하는 이유는 상호존중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수업을 제대로 하고, 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도교육청 인성시민과 이정훈 과장은 지난 9일 3차 토론회 폐회식에서 "황금 같은 토요일에 8시간을 온전히 함께 호흡하면서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번 나보다는 똑똑한 우리를 경험했다. 오늘 모여진 정성들이 곱게 쓰여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