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거 뭐야?"
집에 특이한 식물이 새로 들어왔다. 엄마가 모임에서 가져온 작은 식물은, 곧 죽을 것만 같았던 첫 인상과는 달리 그늘진 집 한 켠에서 꿋꿋이 살아남았다. 퇴근 후 식물의 상태를 살피고 물을 주는 엄마를 보며 나의 황폐한 식물 연대기가 떠올랐다. 강낭콩 싹부터 딸기 모종, 튤립까지. 키우기에 실패하고 결국 모조리 흙으로 돌아간 그들은 내가 식물을 키워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알고리즘에 플랜테리어(planterier·식물+인테리어, 식물을 이용한 인테리어)가 뜨더니 사무실 책상 위에 반려식물을 키우는 친구들의 사진이 SNS에 보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반려식물', '식집사'등의 키워드가 화면을 물들이자 스멀스멀 식물을 키워보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올랐다. 이번엔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주변에 식물을 키우는 사람을 수소문해, 지난해 가게 문을 연 '식물 분양소'를 운영하는 지인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식물도 몸살을 앓는다는 것, 이들 또한 이유 없이 언제든 초록별로 갈 수 있다는 사실 등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는 "주 고객층이 20, 30대 분들이다, 식물은 내 성향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 식물을 키우는 게 힙한 문화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혹시 나와 같은 초보 식집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해서 몇 가지 정보를 공유한다. 다음은 경기 수원에 위치한 '반려식물 편집샵 서식지(seosikji)'의 식물지기와 나눈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식물을 돌보는 일은 곧 나를 돌보는 일
- 지기님은 어떻게 식물을 키우게 되셨나요?
"제가 과거 한 4년 정도 침대에만 누워서 무기력하게 지내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만난 지인이 스킨답서스라는 식물을 줬어요. 그 때 살던 집은 아주 잠깐 해가 드는 집이었거든요. 식물은 빛을 쬐어야 하니까, 빛이 스치는 잠깐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물도 갈아 주다 보니 집에서 조금씩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누워있을 땐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고여서 '내 생각'에 매몰됐었는데, 이젠 스킨답서스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식물이 언제 물을 필요로 하는지, 내보내기에 적당한 온도인지, 건조하거나 너무 습하지는 않은지.
식물을 생각하다보니 내 주관에서도 벗어나는 거죠. 저는 그래서 식물을 돌보는 일이 명상 같다고 느껴요. 그렇게 하나 둘 식물을 돌보다 보니 식물을 돌보는 일이 곧 나를 돌보는 일처럼 느껴졌고요, 저처럼 외롭고 힘든 분들이 서식지에 와서 반려로 삼을 식물을 만날 수 있도록 소개하는 일까지 하게 됐어요."
- 사람들이 왜 요즘 식물을 '반려식물'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인간이 참 외로운 존재인가 봐요. 생명을 곁에 두고 싶은데 동물은 환경이나 여건이 까다롭고… 그래서 곁에 두는 식물에게 반려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 같아요. 코로나 뒤 식물을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의지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같고요. 또 반려는 자신의 반쪽 같은 존재에게 붙이는 말이잖아요. 식물을 그저 키움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을 주고 애정을 주는 대상으로 본다는 의미가 담긴 게 아닐까요."
- 명칭의 변화만큼 서식지를 찾으시는 분들에게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요즘엔 어떤 분들이 서식지를 찾아 오시나요?
"명확한 생각과 마음을 갖고 찾아 오시는 분들이 늘었어요. 개업한 지인에게 선물을 하러 오시는 분이 있고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때론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인테리어에 맞는 화분과 색감까지 큐레이팅을 문의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 식물을 인테리어에 많이 활용하나 봐요.
"요즘엔 에어비앤비, 레스토랑, 스튜디오 어디를 가도 식물이 있어요. 유튜브에도 식물을 배경으로 하는 영상이 많고, 제가 자주 가는 김밥천국 체인엔 호프셀렘이라는 친구가 있어요(실내공기정화식물). 식물은 공간의 분위기를 채워주거나 심지어 견인하는 역할까지도 해요. 디자인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것, 즉 식물의 확장성이 요즘 트렌드인 것 같고요. 동시에 인기의 방증인 것 같아요."
- 식물의 확장성이라니까 '식테크'라는 단어도 떠오르는데요, 이 현상은 뭔가요?
"말 그대로 식물로 돈을 버는 건데, 희귀한 개체를 잘 키워서 촉을 나누는 거예요. 촉을 나눈다는 건 제가 처음 식물을 받은 것처럼 한 식물을 여러 개로 나누는 걸 말해요.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개체도 있어요."
- 희귀한 개체라는 게 키우기 어려운 종을 말하는 건가요?
"개체수가 적거나 무늬종 같이 고유하고 독특한 개체를 말해요. 대표적으로 몬스테라 무늬종이 유명해요. 동물 중에서 알비노가 있는 것처럼, 식물도 초록색이 없는 부분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저도 아프리카괴근이라는 친구를 하나 데리고 있어요.
식물 말고 촉 뿌리를 잘 내리는 배합법도 SNS를 타고 유명해졌어요. 티티배합법이라고 하는데, SNS를 통해 시장과 정보가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시나요, 식물도 몸살을 앓는다는 사실
- SNS가 주요한 역할을 하나 봐요.
"저희 주 고객층이 20, 30대 분들이세요. 서식지 SNS 글을 보고 찾아와주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식물을 키우는 게 힙한 문화가 된 것 같아요. 식물은 내 성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거든요.
반대로 저도 SNS로 다른 식물을 찾아보기도 해요. 유명한 카페로 입양갔던 식물이 있었는데요. 그 친구가 잘 사는지 카페 SNS를 자꾸 보게 되고 상태를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건강해 보이면 기분이 좋아요. 공간이 바뀌거나 분갈이를 한 뒤에는 식물이 활착, 그러니까 새로 뿌리를 내리기까지 몸살을 앓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요양 오는 친구들도 있어요."
- 식물도 몸살을 앓는다는 게 신기해요.
"그럼요, 식물 키우는 사람은 장기 해외여행도 쉽지 않아요. 부모님이 와서 돌봐주셔도 원래 보던 사람이 아니라는 걸 식물이 눈치를 채거든요. 식물을 돌보는 건 식물과 교감하는 작업이에요. 제가 아는 분은 스튜디오를 옮기면서 큰 나무들을 후임자에게 인계했는데 후임자가 똑같이 물을 주고 가꿔줬는데도 잎이 다 떨어지고 다시 났대요. 자기를 돌보는 사람의 변화를 느끼는 것 같아요. 이만하면 내새끼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 식물도 주인을 알아본다는 얘기군요. 저처럼 꼼꼼하지 못한 사람도 식물을 돌볼 수 있을까요?
"저도 꼼꼼한 성격은 아니에요. 저에게 편한 식물을 찾는 거예요. 제가 손님들께 늘 드리는 말씀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식물은 누구나 들일 수 있어요!'라는 말이에요. 꼼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듯 식물도 다 달라요. 나와 비슷한 성향인 친구를 들이면 돼요. 식물은 모시는 게 아니에요. 식물만큼 나도 편해야 해요."
- 저 같은 '식물 킬러'와도 잘 살 수 있는 식물을 하나 추천하신다면요?
"스파티필름이라는 식물을 추천드려요. 제가 클래스 운영하면서 마음이 힘든 분들께 가장 많이 추천하는 식물이에요. 그러면 '며칠에 한 번씩 물 주면 돼요?' 라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는데, 건조한 봄과 장마철 여름의 상황이 같을 수가 없어요. 제일 좋은 건 흙은 만져보고 주는 거예요. 예민한 친구들은 하루 차이로 죽기도 해요.
그래서 드리는 두 번째 말씀은 '줄까 말까 할 땐 주지 마세요.'예요. 식물을 분양 받아 가시는 분들 뒤통수에 대고 몇 번이고 말씀드리는 말인데, 고민될 때 웬만하면 물을 안 주시는 게 좋아요."
- 조언 감사드려요, 저도 식물 잘 키워볼 수 있겠죠?
"모든 식집사분들께 한말씀 드리자면, 식물이 시들거나 죽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흰 식물이 죽으면 '초록별로 간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이 우리가 식물을 키우는 이유예요. 초록별 가기 전까지 여정을 함께 하는거요. 식물이 초록별로 가는 이유는 정말 많아요. 베테랑 농장 사장님도 '어쩌다가 그냥 죽어'라고 하시거든요. 내 잘못도 아니고 이유를 명확하게 진단할 수도 없어요.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에요.
식물을 들이려는 분들께는 비싼 식물, 유행하는 식물보다 내가 사는 집, 공간, 내 라이프스타일, 내가 원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엇보다 식물을 편안하게 돌봤으면 좋겠어요. 이별이 두렵지 않은 친구를 입양하시길 바라요."
이제 식물을 만나볼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빨리 서식지에서 나와 닮은 식물을 입양해오고 싶어졌다. 편안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식물을 찾게 될 것만 같은 설레는 기분이었다. 그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식물이 생각보다 꽃이 많이 피어요. '꽃이 피면 이렇게 꽃도 피워준다고?' 라는 생각이 들어 감격스러울 거예요."
매일 저녁 집에서 식물을 살피던 엄마의 손길을 떠올린다. 하루의 끝과 함께 찰나의 감격과 식물에 대한 대견함을 정돈하던 그 손길. 그 비밀을 알게 된 나도, 이번엔 더 좋은 식집사가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