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2월 13일은 제 사랑하는 아들 김의현의 31번째 생일날입니다. 지난해 참사가 없었더라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으면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겠죠. 그 평범한 일상을 지내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연기같이 사라졌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인 김호경씨는 김동연 경기도지사를 향해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김씨는 "참사가 일어나면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두 번 다시 그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되는 게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이라며 "그런데 그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을 왜 유가족들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차가운 도로 속에 칼바람을 맞으면서 부르짖어야 하는 거냐"고 물었다.
김씨는 또 "저희 유가족을 더 이상 차가운 도로로 내몰지 말아주시기 바란다"면서 "159명의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그날의 진실을 밝혀주기를 여기 모이신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김동연 지사는 13일 도담소(옛 도지사 공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 등 유가족 21명과 간담회를 열었다.
유가족들은 이날 김동연 지사 부부에게 보라색 목도리를 선물했다.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유가족들만 메는 보라색 목도리인데, 이날 간담회에 응해준 김 지사에 대한 감사의 선물이었다. 이미 김동연 지사는 일부러 보라색 넥타이를, 부인 정우영씨는 보라색 자킷을 입고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공권력이나 인권유린이 양태와 방법만 달리할 뿐 많이 있어"
이날 유가족을 만난 김동연 지사는 참사의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통과 지지 의사를 거듭 밝혔다.
김동연 지사는 "당에다 몇 번 얘기했는데 다시 한번 강력한 입장을 당 지도부에 전하도록 하겠다"며 "특별법 통과를 계기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소재를 분명히 하고, 희생당하신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재발 방지 및 보상 등의 문제가 다 풀려야 피해자나 유가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선진 사회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29 참사 이후 공직자로서 부끄럽다는 사과 말씀을 드렸고, 추모 공간을 마련해 정부 지정 기간보다 길게 운영했다"며 "온라인 추모공간도 마련하는 등 10.29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에 대한 추모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런 공권력이나 인권유린이 양태와 방법만 달리할 뿐 많이 있다"며 "세월호 사건이나 10.29 참사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들이 정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고, 희생자들에게도 떳떳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도지사의 진정성 있는 위로와 공감을 유가족분들과 함께 느끼고 위안을 받았으면 해서 오늘 간담회를 요청했다"며 "특별법으로 농성을 하는 등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오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감사하다"고 답했다.
이날 간담회는 참사 1주년을 맞아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방문한 김동연 지사에게 유가족이 경기도 방문 의사를 전하고, 이를 김 지사가 수락하면서 마련됐다.
김동연 지사는 참사 이후 올해 2월 4일 참사 100일 녹사평 분향소 방문, 4월 5일 10.29 진실버스 수원 현장 방문, 6월 21일 특별법 제정 촉구 동조 단식 현장 방문 등 유가족들을 수 차례 만나 위로한 바 있다.
행사는 유가족의 지친 마음에 안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팝페라 공연 관람에 이어 간담회 순으로 진행됐다. 유가족과의 간담회 시간에는 유가족 건의 및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참사의 진상‧책임 규명 등의 내용을 포함한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와 재발 방지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이날 유가족을 맞이한 도담소 잔디마당에는 경기도 온라인 추모관에 게시된 추모‧응원 메시지가 담긴 그림 작품이 함께 전시됐다.
경기도는 지난 10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온라인 기억공간의 디자인을 개편하는 등 온라인 추모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1일 수원 경기도청사와 의정부 경기도 북부청사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방문이 어려운 도민을 위해 마련했다.
게시판 형태의 온라인 추모관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기억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만든 별도의 추모공간이다. 유가족과 지속적인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은 '10.29 참사 온라인 기억공간'(https://www.gg.go.kr/memorial)을 찾으면 된다. 이곳에는 '유족들 마음의 병이 치유됐으면 좋겠다. 하늘에 있는 별들도 그걸 원할 거다' 등 위로의 댓글들이 약 1만 개 게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