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불거진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는 장애인 콜택시(특별교통수단)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 교통정책에 있다. 애초에 정책입안자가 교통정책을 설계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도입했다면,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중요한 장애인 이슈로 대두되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인 콜택시를 몇 시간 동안 기다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영국,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탈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택시가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풀 대안으로 유니버설 디자인 교통수단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갈 길이 너무나도 멀어 보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택시
앞으로 본 기사에서는 블랙캡을 중심으로 영국의 장애인 이동권 사례와 한국의 장애인 이동권의 현주소를 비교해 본 뒤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라마다 도시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택시(미국 뉴욕의 옐로캡, 워싱턴 DC의 레드캡, 일본 도쿄의 재팬택시 등)가 있다. 영국의 수도 런던에는 블랙캡이 있다.
영국의 런던전기택시컴퍼니(London Electric Vehicle Company, LEVC)가 생산한 블랙캡(Black Cab)은 세계 최초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차별 없이 누구나 탈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택시를 말한다. 두꺼비와 유사한 외양에 검은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블랙캡이라 불리게 되었다. 블랙캡의 대부분이 런던에서 운행하고 있어서 런던 택시라고도 불린다. 2021년 기준, 약 2만 1000대의 라이선스가 부여된 블랙캡이 운행되고 있다.
블랙캡의 운전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범죄 기록이나 신체에 이상이 없어야 하며 'The knowledge'라고 불리는 엄격한 면허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해당 시험은 총 다섯 단계로 이루어져 있을 정도로 어려운 시험이다.
선발된 운전기사는 승객에 대한 예절 교육도 꾸준히 받는다. 그 덕분에 Hostel.com이 진행한 가장 친절한 택시 기사 설문 조사에서 영국 블랙캡 기사가 꼽히며, 서비스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블랙캡 차량 내부를 살펴보면, 뒷좌석 공간이 넓어 휠체어에 탄 채로 탑승할 수 있으며 최대 세 명과 합승도 가능하다. 승차 가능 인원은 운전기사 포함 총 6명이다. 차량 호출은 한국의 카카오 택시처럼 하일로(HAILO)라는 블랙캡 전용 호출 앱을 통해 가능하다. 기본요금은 10유로(£10)다. 한화로 약 1만 6000원 수준이다. 한편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고요한M을 운영하는 코액터스와 파파모빌리티 등 여러 모빌리티 플랫폼 업체들이 유니버설 디자인 차량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차량이 보편화하기까지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코액터스는 영국의 블랙캡(LEVC TX5) 두 대를 도입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호출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도입된 블랙캡 차량수가 단 2대밖에 되지 않아 폭발적인 수요를 따라잡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출발 일주일 전에 차량을 예약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또한, 블랙캡 운행 시간이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야간에는 차량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올해 3월 서울시는 블랙캡 도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25개 자치구에서 최소 한 대 이상의 블랙캡을 운영할 수 있는 안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또 블랙캡의 대안으로 꼽히는 파파모빌리티의 휠체어카 서비스가 있다. 2021년 파파모빌리티는 휠체어 슬로프 차량을 도입해 휠체어 사용자에게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야간에도 제한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6월 파파모빌리티의 위기설이 불거졌다. 정부 규제로 인해 운행할 수 있는 차량 수가 100대로 제한되어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정부에 증차를 요구했으나 정부는 수개월째 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토부로부터 가까스로 100대 증차 허가를 받으면서 파파모빌리티는 기사회생했다. 다만 파파모빌리티는 교통약자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국토부에 280대 증차를 요구했지만, 100대만 허가받았다.
유니버설 디자인 차량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을 보편화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플랫폼 모빌리티 사업자를 비롯한 택시 업체들이 휠체어 사용자를 포함한 모두가 탈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차량을 일정 수 이상 도입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둘째, 플랫폼 모빌리티 기업 및 택시 업체에 재정적 지원과 인센티브(법인세 인하, 취득세 인하, 차량 구입시 보조금 지급 등)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플랫폼 모빌리티 및 택시 사업자들이 휠체어 사용자 등 모든 사람이 탈 수 있는 차량을 도입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셋째, 리프트 없이는 휠체어 사용자가 탑승하기 어려운 승합차의 경우 플랫폼 모빌리티 및 택시 업체에 리프트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 업체에 리프트 설치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플랫폼 택시 및 일반 택시에 대한 휠체어 사용자의 접근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을 통해 플랫폼 택시와 일반 택시에 대한 휠체어 사용자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수 있다.
하루빨리 유니버설 디자인 택시가 보편화되어, 265만 장애인이 이동의 제약을 벗어나 누구나 차별 없이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