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아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청 건설업체가 징역형에 처해졌다. 법 시행 이후 부산에서 내려진 1호 판결이다. 그러나 '집행유예' 등 검찰 구형보다 낮은 형량 탓에 노동·시민사회는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 1년 6개월 만에 중대재해법 적용 1심 선고
21일 오후 353호 법정. 부산지법 형사4단독(판사 장병준)은 이날 열린 선고기일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 원·하청 업체 대표와 관계자에게 대거 징역형을 주문했다. 재판부는 원청인 A건설사 대표 B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A사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C사 대표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사와 C사는 각각 5000만 원, 500만 원의 벌금도 받았다.
A씨 등은 지난해 3월 부산 연제구의 한 신축공사 현장에서 난 사망사고와 관련해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주차타워 지하에서 단열재 부착작업에 나섰던 중국 국적의 이주노동자 D씨는 3.3톤짜리 리프트(차량 운반기) 균형추 작동에 의한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부산지검의 기소로 사건 발생 1년이 지나서야 첫 재판이 열렸고, 세 차례 공판기일을 거쳐 이날 1심의 최종 결론이 나왔다. 장 판사는 "피고인들이 모두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 등으로 전부 유죄가 인정된다"라고 판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도 부각했다. 장 판사는 "반복되는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지만, 피고인들이 이를 소홀히 했다. 그 결과에 대한 상응한 처벌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구형과 다른 형량에 대해선 피고인들이 혐의를 시인하고, 유가족과 합의를 본 점, 피해자의 일부 과실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선고는 검찰이 바란 구형과는 큰 차이가 있다. 엄벌을 강조한 검찰은 지난달 16일 결심 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2년,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대표에게 각각 징역 10개월, 원청과 하청업체에 각각 1억5000만 원, 하청 1000만 원의 벌금을 구형했다.
그러자 A씨 등은 "혐의를 시인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하지만 무조건 엄벌주의로 가선 안 된다"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결국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유죄로 판결하면서도 이를 참작해 검찰 구형보다 양형을 낮춘 셈이다.
재판 직후 A씨 등은 선고 결과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법원을 떠났다. 언론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A씨 대신 한 회사측 관계자가 기자들을 막아섰는데, 그는 "우리도 지금 힘들다. 사고를 내고 싶어서 냈느냐"라고 항변했다.
부산지법에 모인 노동시민사회단체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부산운동본부와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방청이 끝나자 바로 법원 앞을 찾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우려했는데 결국 현실이 됐다"라며 검찰의 즉각적인 항소를 촉구했다.
김도아 천주교부산교구 노동사목 가톨릭노동상담소 사무국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가 원청 대표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인데 산업안전보건법 형량보다 부족한 집행유예가 나왔다"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피해자 과실이 언급된 것도 논란이 됐다. 김 국장은 "안전모를 쓰지 않았다는 것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한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노동사안을 다루는 정상규 변호사 역시 "중처법 시행 전과 비교해도 처벌에 큰 차이가 없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정 변호사는 "지나치게 낮은 수준의 선고다. 엄벌 있어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날 재판의 한계를 꼬집었다.
검찰은 이들이 요구한 항소에 대해 일단 말을 아꼈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판결문을 검토해야 항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