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2억 7천만 년 전에 살았던 생물로 화석으로 발견됐다고 한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중 하나로 잎, 열매, 뿌리, 껍질까지 약용수, 가로수, 공원수로 많이 쓰인다.
모든 사람에게 오늘날까지도 폭넓게 사랑받는 나무이지만, 이래저래 교통 방해도 한다는 말을 듣고 있어 이 나무의 여러 가지 속내를 알아보려고 한다.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날씨에 일 따라 내려간 눈 쌓인 남쪽의 은행나무 가로수 길은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비 없는 날에 마른 땅에 떨어진 잎은 조용하다.
노란 은행잎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을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고, 쌓인 잎 위를 걸으면 푹신하고 포근했으리라. 하지만 비바람이 불고 나면 사정은 확 달라졌으리라.
그날도 그러했지만, 눈이 온 뒤라서 그러했겠지만 바람에 날려 쌓여 모인 노란 잎들의 색이 제 빛깔을 잃어가고 있었다. 가는 길 위 고인 웅덩이 위로 차바퀴가 가을을 으깨고 지나가면서 남긴 찌꺼기, 온갖 더러움이 달라붙은 차바퀴로 조금 남은 노란 가을의 낭만은 찾을 길이 없었다.
"요즘 일기예보를 들어 손해 볼 것 없더군요" 하던 옆집 지인의 말처럼 어제도 대로에서 맞은 물 폭탄은 아랫바지를 후줄근 세탁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차바퀴로 으깨어진지 모르는 선물은 역시 귀찮았다. 신발에 달라붙은 우윳빛 섬유질의 찐득이는 거리를 더럽히는 민원이고 "쓸고 나도 그때뿐, 헛일이여" 라던 비 든 아저씨들의 원망은 길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은행나무 원성은 다른 식물처럼 한곳에서 정착하지만 암수가 달라 암나무에만 열매가 열린다.
얼마전 모 협회의 세밑 모임에 가서 보니 차바퀴는 얼씬 못하는 공원이라서 지난날 떨어진 채 노란 가을을 업은 잎들이 나날의 노황(老黃)을 눈보라에 나눠 받아 때때로 하늘로 날리고 있었다.
하늘로 올라간 노란 이파리 잔치로 3시간을 깨끗한, 반듯한, 싱그러운, 내음의 향연을 맡아가며 우리 회원들은 얼굴 맞댐을 마쳤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민원 소리가 내 귀속에 되살아났다. 바퀴에 으깨지고 깨진 은행들이 쪼그라든 참상과 통행인들에게 주는 고맙지 않은 물 폭탄은 매일 같이 일어나는 도시 사람들의 온갖 민원이니 무엇으로 보상을 받나 하는 현실.
이런 괴로움(민원) 등을 받아들여 당국에서는 새마을 운동 무렵인 1960년대부터 잘 자라는 플라타너스 심어 가로수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교통 표지판을 가려서 방해한다는 애물이 되자 그 자리에 풍치 좋은 은행나무를 심자는 의견에 현행과 같이 전국에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등장하게 됐다는 게 지인의 설명이었다.
사실 은행은 깨지면 지독한 악취가 나고 비로 쓸어도 깨끗하게 치워지지 않는다.
근래 들어서는 높아지는 민원을 잠재우기 위해 형편 따라 커다란 바구니를 나무 주위에 둘러쳐 낙과를 한군데 모으거나 중기를 동원해 가로수를 뽑아내고, 박피접(薄皮接)이라는 접붙이는 기술을 이용하는 등 담당 부서에서도 대처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 못하고 이동 못하고 호흡도 같이 못하며 자라는 식물이라 하더라도 천래(天來)의 생식기능을 못하게 하는 것은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다같이 생각할만한 가치 있는 공동 과제이기에 제안하려고 한다.
최영종(처인구 고림동)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