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글이 제일 맘에 드는데요."
어떤 글을 좋아하냐고 묻는 B의 질문에 나는 그렇게 답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쓴 글이 제일 좋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작가는 자신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쓴다고. 그러니까 나는 나의 눈높이에 맞는 나의 글이 제일 맘에 든다. 내가 쓴 문장에 감탄해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고 계속 읽는다. 그리고 좋아요 도 꾹 눌러준다. 정말 좋아서.
요즘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작가분은 자신의 글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 글을 볼 때면 부끄럽다고 했다. 흑역사가 된 것인데 나는 나의 예전글을 볼 때면 오히려 감탄한다. 그때의 그 감정은 그 당시 느낀 것이니 지금 다시 쓰라면 못 쓸 정도로 맘에 든다. 이 정도면 착각도 유분수, 비웃을 수 있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기를. 나도 내 글이 다 맘에 들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랴. 내 글이 맘에 안 든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글도 쓸 수 없기에 스스로 다독이고 있는 것을. 비록 유치한 솜씨라도 내가 읽고 싶은 글을 나의 눈높이로 쓰는 중이다.
얼마 전 MBC 연예 대상에 개그우먼 조혜련이 축하무대를 꾸몄다. <아나까나>라는 노래였는데 무대는 난장판이었지만 축제 분위기였다. 무대가 끝나고 MC 전현무가 이런 말을 했다. "MBC에서만 오직 볼 수 있는 무대다. 옆방송국에서는 방송 금지로 절대 안 된다. 이유는 가사 수준 미달이다." 그 말에 모든 방청객이 웃음을 터트렸다. 보고 있는 나도 웃음이 터졌다.
가수 조혜련의 <아나까나>는 가사뜻이 없다. 그냥 아무 말 대잔치다. 처음 나왔을 때도 가수의 장벽이 무너졌다. 조혜련 가수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노래를 부르는 걸까. 참 유치하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에 든 생각은 다르다. 노래가 뭐 별 건가. 즐거우면 되지. 분위기에 맞는 웃음을 선사한 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본다.
사람들은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조혜련의 저 노래는 개그맨 이경규 딸 결혼 축가로도 불렀다고 한다. 수준의 등급이 누구의 눈높이로 정하는지 몰라도 무대 열정만큼은 어떤 가수 못지않다.
KBS는 '검열'을 통해 <아나까나>를 방송 금지했다. '검열'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검열이 주는 어감은 억압의 느낌이 강하다. 창작자에게는 독으로 보인다. 모든 방송국이 아나까나를 가사 수준 미달로 금지했다면 우리는 아나까나의 흥겨움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전 아나까나의 노래 탄생기 인터뷰를 기억해 보면 이랬던 거 같다. 외국곡을 발음 나는 대로 한번 써본 거라고. 어찌 보면 개그맨 다운 실험적인 노래다. 수준 미달이라는 오명으로 검열에 걸렸지만 신나게 노래 부르는 조혜련의 자신감을 보면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글쓰기 회원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이런 글을 써도 되나', '괜찮을까' 하는 자기 검열을 먼저 했던 것 같다. 다른 것도 아닌 창피하다. 유치하다. 이런 감정들의 검열이다. 그러다 보니 쓸 수 있는 글이 없었다. 송고를 못하고 서랍 속에만 채워뒀다.
자신감을 상실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 것도 없이 참을 수 없는 궁금증만 커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나를 먼저 검열해 포기한다는 것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도 도전했을 때의 이야기다. 실패는 두려운 게 아니라 다시 도전하라는 뜻일 텐데 스스로 정한 자가 검열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방패였다.
잘 쓴 글과 좋은 글은 차이가 있다. 자가 검열을 통해 정제된 글이 잘 쓸 수는 있으나 꼭 좋은 글이라는 법은 없다. 좋은 글은 쉬운 언어로 쓰여도 진심이 담긴 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글도 알아듣기 힘든 문장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저 잘 쓴 글 중 하나일 뿐일 텐데. 나는 왜 등급 높게 잘 쓴 글만 쓰려 시간을 쓰고 있었을까.
잘 쓴 글만 쫒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았다. 잘 쓴 다른 사람의 글이 좋아 보여도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따로 있을 텐데. 서툴더라도 꾸준히,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쓰다 보면 나도 언젠가 잘 쓰고 좋은 글을 쓰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매일 쓴다. 그러니 스스로 자신을 검열의 틀에 가둬 억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다른 방식의 검열이 생겼다. 어떤 문장을 써야 조금 더 쉬운 문장이 될까 다듬는다. 고심하며 문장의 배치를 바꿔 본다. 그 문장 아무리 바꿔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소한다.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가꾸는 셈이니 누군가 보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그럼에도 더 좋은 문장을 고르려 검열한다. 무슨 상관이랴. 결과가 두려워 서랍 속에 쌓아두는 것보단 낮다. 잘 쓴 글만 좋은 글은 아니잖나.(조혜련 유행어 버전)
자신감 하면 나는 언제나 오디션 출신 가수 그룹 위너의 강승윤이 생각난다. 지금은 최고의 가수지만 그가 상경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처음 나왔을 때 모 심사위원이 이런 말을 했다. "강승윤은 실력은 별론데 자신감은 최고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안다. 반면 **은 실력은 최곤데 자신이 못하는 줄 안다. 그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라고.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같다. 인상적인 평이어서 오래동안 잊히지 않고 기억한다.
스스로 자가 검열하지 않은, 두려움 없는 자신감이 강승윤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것이다. 나는 이제 나를 가두는 검열을 하지 않기로 했다. 두려움을 없애자 글은 더 풍성해지고 마음은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