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이 한목소리로 비판에 나섰다.
6일 세 신문의 사설 제목은 각각 "한 위원장이 책임지고 특별감찰관 임명, 총선 후 특검 추진을", "반대 여론 무릅쓴 거부권, 민심 수습책 나와야", "제2부속실·특별감찰관으로 '특검 민심' 돌릴 수 있겠나"로 세 사설 모두 여론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비판적인 만큼 이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거부권 행사에 <조선> "한동훈, '총선 후 특검' 추진해라"
특히 눈에 띄는 건 <조선일보>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대통령실이 언급한 특별감찰관 임명과 제2부속실 설치보다 더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할 뿐 그 대응책을 직접 제시하진 않았다.
반면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에서부터 '총선 후 특검'을 강조했다. 사설은 "김 여사 특검법은 민주당의 노골적인 총선 정략"이라며 민주당을 비판하면서도 "한때 국민의힘 내부에서 논의되던 총선 후 특검은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국민의힘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사설은 "지금 국민의힘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라면서 " 본인이 언급했던 대로 총선 이후 여야 합의로 김 여사 특검을 실시할 수 있다고 밝힌다면 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총선 후 특검을 추진하라고 조언했다.
한동훈 향한 <조선일보>의 꾸준한 조언, 총선 후 특검
<조선일보>의 이러한 '총선 후 특검' 논조는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박정훈 <조선일보> 논설실장은 "김건희보다 더 특검 대상이었던 김정숙"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김건희 특검에 대해 "야당은 선거 내내 공격할 것이고 여당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며 "총선에 영향 주지 않고 국민 여론도 설득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이 딜레마를 탈출할 유일한 방법이 '총선 후 특검'"이라고 주장했다.
"'한동훈 비대위' 앞에 놓인 세 가지 숙제"라는 제목의 12월 25일 <조선일보> 사설 또한 "'독소 조항을 없앤 뒤 총선 후 추진'하는 방안을 한 위원장이 적극 제안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 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 성의를 갖고 설득한다면 '총선 후 특검'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6일 사설과 마찬가지로 한 위원장이 총선 후 특검을 설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앞서 <조선일보>는 "'김건희 특검'은 여야 합의 추천하고 총선 직후 실시로"라는 제목의 12월 21일 사설에서도 "한동훈 법무장관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독소 조항을 제거하고 총선 후 추진'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김 여사가 떳떳하다면 특검을 통해 당당히 털고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한 위원장이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총선 후 특검'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냐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언급하는 한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달 19일 "다만 (야당의 특검법은 총선 기간에) 선전 선동하기 좋게 만들어진 악법"이라며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국회 절차 내에서 고려돼야 한다"는 발언이다.
<조선일보>는 20일 "'총선 후 김건희 특검' 급부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해당 발언에 대해 "총선 이후 문제 조항을 수정한 새로운 특검법을 낼 경우 수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보도했다. 당시 해당 발언에 대해 이러한 해석을 내놓은 매체는 <조선일보>가 처음이었다.
'윤석열 아바타' 비판 피하길 바란 <조선>과 달리 특검 거부 보조 맞춘 한동훈
하지만 <조선일보>의 이러한 해석에 대해 20일 한 위원장은 "어제 충분히 말씀드렸다"며 "어제 한 말에서 특별하게 해석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선을 그었다.
이후 25일 여권 관계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한 전 장관이 (김건희 특검법의) 독소조항과 시점을 제하면 (특검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기사가 유력 보수지에까지 나왔다"며 "대통령실에서 매우 격노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의 해석에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가 나온 25일 열린 고위 당·정·대 회의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은 총선 후 추진 등 조건부 수용도 절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 위원장 역시 27일 "총선용 악법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다"며 총선 후 특검 가능성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한 위원장은 "그 법을 가지고 총선을 치르는 것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1일)", "정쟁을 총선 정국 내내 끌기 위한 의도(4일)"이라며 김건희 특검이 총선용이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5일에도 "특검법 거부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한 위원장이 '총선 후 특검'에 대한 의지가 없음에도 <조선일보>는 한 위원장의 발언을 총선 후 특검으로 해석하고 지속적으로 한 위원장에게 총선 후 특검을 제안해왔다. 이는 <조선일보>가 '방탄 거부권'으로 비판받는 윤 대통령과는 차별화된 한 위원장의 모습을 바라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특히 25일 사설에서 "한 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 성의를 갖고 설득한다면 '총선 후 특검'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은 언뜻 보면 설득의 대상이 국민으로 보이지만 <조선일보>가 줄곧 민심이 특검을 원한다는 기조를 보인 만큼 설득의 대상은 국민이 아닌 윤 대통령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설득해 민심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였을 테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윤 대통령의 특검 거부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윤 대통령 역시 이념 논쟁을 멈추겠다며 반성하는 듯한 기미를 보이더니 한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운동권 카르텔 타파' 발언하자 곧바로 신년사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이권·이념 카르텔 타파'를 외치며 한 위원장에 맞장구를 쳤다.
이대로라면 한 위원장이 '총선 후 특검'을 제안하며 '윤석열 아바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꾀하길 바라는 <조선일보>의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질 가망이 거의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