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6일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이 사업장의 안전체계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법 시행을 1년 늦췄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추가로 2년의 준비기간을 더 주었다. 예정대로면 이 법은 올해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된다.
그런데 지난해 말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2년을 더 유예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3년 동안 손 놓고 있던 정부와 여당과 사용자 쪽이 막상 시한이 되자 준비 부족과 경제활동 위축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활동 포기법', '실업자 양산법'이 될 거라며 또다시 시행 유예를 요구한 것이다.
올 총선에 소상공인의 표를 의식하는 민주당은 정부의 공식 사과, 산업안전을 위한 계획과 재정지원 방안 마련, 2년 뒤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 약속을 조건으로 논의할 수 있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
지난해 11월 7일 환경부는 1회용품 규제 조치를 철회했다. 원래 2022년 11월 24일에 시행했어야 할 규제 조치를 1년 유예하며 계도기간을 두었는데, 시행을 앞두고 환경부가 규제를 철회해버린 것이다. 환경부의 '1회용품 계도기간 종료에 따른 향후 관리 방안'을 보면 종이컵은 사용 규제 품목에서 완전히 제외했고, 플라스틱 빨대는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으며, 비닐봉투는 과태료 부과를 철회했다. 지난해 9월 1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의무 시행을 백지화하더니 이번에는 1회용품 규제를 아예 포기했다.
환경부는 소상공인의 부담 증대를 철회 이유로 들었지만, 그동안 규제 시행에 나름대로 대비해온 소상공인은 오히려 혼란에 빠졌고 규제 시행을 전제로 생산을 해온 종이 빨대 제조업체들은 도산 위기에 몰렸다. 어렵지만 그래도 1회용품 퇴출 문화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환경부가 판을 엎어버렸다.
환경부가 1회용품 규제를 포기하고 뒷걸음쳤지만,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규제 철회를 발표한 후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1회용품 관련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1회용품 규제 정책 도입에 응답자의 81.4%가 동의했고 비동의는 14.9%에 그쳤다. 응답자의 77.1%는 일회용 종이컵 사용 규제의 강화를 택했고 완화는 10.8%에 그쳤다. 비닐봉지 규제 또한 강화가 73.7%로 완화 10.1%를 압도했다. 응답자의 88.5%는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고 심각하지 않다는 응답은 9.0%에 그쳤다. 환경부의 반환경적인 행보에 맞서 꺾이지 않고 친환경 행보를 계속하겠다는 시민들의 다짐도 눈에 많이 뜨인다. 무책임한 환경부 대신 시민들이 나선 셈이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3년 동안 정부·여당과 사용자 쪽이 법 적용에 필요한 대책 마련에 손 놓고 있을 때,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0인 미만 사업장 3곳의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지원했다. 게으른 고용노동부 대신 한국노총이 나선 셈이다. 그 결과 나온 '50인 미만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사업 성과보고서'를 보면 중소기업 3곳이 사업장의 전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 평균 3개월이 걸렸고 3100만 원가량이 들었다. 중대재해 방지와 노동자의 생명 보호 조치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법 적용을 또다시 늦추려 하지 말고 이제라도 50인 미만 사업장의 안전체계 구축을 위한 지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중대재해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사망사고 노동자 총 2292명 중 80.4%인 1843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숨졌다. 2020년에서 2022년까지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사고 비중은 매년 81% 수준이다. 이런 현실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추가 유예 조치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정부가 꺼낼 게 아니다. 2년을 더 늦추자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환경부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1년간 사용하는 1회용 종이컵은 248억 개, 비닐봉투는 235억 개, 플라스틱 빨대는 106억 개 정도다. 잠깐 쓰고 버리는 1회용품 생산과 처리에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와 비용이 들어간다.
특히, 종이컵은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재활용도 힘들다. 그린피스의 자료에 의하면 매년 종이컵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자동차 6만2201대가 내뿜는 탄소 배출량과 맞먹는다. 제대로 수거 처리하지 못해 우리나라 강산 곳곳에 널려 있는 1회용품은 자연생태계를 훼손하고 국민 건강도 위협한다. 이런 현실에서 1회용품 규제 포기는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할 정부의 도리가 아니다.
1회용품 사용은 생활양식의 문제로 해결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럴수록 정부가 솔선해서 꾸준히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게 중요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거꾸로 움직인다. 환경부가 '환경산업부'가 되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왜곡된 시각과 여기에 부화뇌동한 환경부 장관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은 "포장지만 바꿔 여론을 호도"한다는 노동계의 비판을 받았다. 신규사업이라곤 '공동안전관리전문가 지원사업'이 유일한데 그나마 부실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지난 3년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이 없다.
이렇게 허겁지겁 마련한 대책에 진정성이 있을 리 없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보여온 노골적인 친자본 반노동 행보와 이 행보를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고용노동부 장관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건강에 직결되는 노동과 환경 정책에 게으르고 무책임한 정부를 보는 게 참을 수 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