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Johann Hari)의 <도둑맞은 집중력(Stolen Focus)>이 최근 화제였다. 책을 관통하는 요점은, 작금의 현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집중력이 상실된 위기의 상태라는 진단이다.
"우리는 단순히 집중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난당하고 있다."
저자가 꼽은 첫 번째 범인은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였다.
컴퓨터공학 교수인 수네 레만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0년 전에 비해 뉴스가 이동하는 시간이 빨라졌고, 그만큼 정보량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증가함으로써 개별 정보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의력 자원이 더욱 빠르게 소진되는 집중력 위기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추세를 바꾸지 않으면, 상류층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은 "조종에 저항할 자원이 적어서 컴퓨터 속 세상에 살며 점점 더 남에게 조종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디어가 바뀌면 감각과 지각이 다르게 반응한다. 음성언어를 사용하던 인류가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나아가서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사고의 폭이 점점 더 좁아졌다. 문자는 음성언어의 의미를 다 담지 못한다. 주역의 계사상전에서 공자는 "책은 말을 다 담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담지 못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 라고 했다.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인류는 5천 년을 문자시대로 살았다.
음성언어는 비선형인 반면 문자는 선형적이다. 전파를 이용한 전기 미디어는 다시 인류를 비선형, 불연속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래서 지구촌이다. 선형의 뉴턴역학에서 비선형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의 전환이다. 특히 반도체의 발명에 힘입은 20세기 중후반의 전자혁명은 정보화사회를 거쳐 21세기에 와서는 AI와 미디어의 결합 단계로 접어들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 9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CES24의 가장 주목받는 테마는 AI가 만드는 TV 생태계라고 한다. 나아가서 콘텐츠 기업들은 AI를 활용한 몰입형 경험(immersive experience)을 예고했다. 저자 하리의 우려와는 무관하게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질주 중이다. CES24에 참여한 기업들은, TV가 팬들과 교감하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텔리젠트 센터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디어의 진화는 이처럼 집중력을 훔쳐가는 원인이라기보다는 거부할 수 없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부작용을 경계하되 지혜롭게 활용하는 일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휴대폰에 중독되어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테크놀로지 기업들을 상대로 조직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페이스북의 유료화라든지 테크놀로지 기업의 공기업화를 제기했다.
페이스북이 1개월 사용료로 50센트나 1센트를 받는다면, 광고주가 아닌 우리를 위해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광고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구독료를 받는다고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수입에 페이스북 측이 만족할까? 정부가 기업들을 인수해 공기업으로 전환함으로써 자본주의 영역에서 빠져나오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실현 불가능한 상상이다.
실제로 해봐도 좋을 듯한 저자의 상상력
집중력 회복을 위해 주 4일제 근무로 전환하자든지, 건강한 식단을 장려해보자는 저자의 주장은 실제 시도해볼 만하다. 아이들에게 틀에 박힌 교육이 아니라 마음껏 뛰어놀게 하자는 발상도 좋다.
'가짜노동'이라는 개념이 있다.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철학자 예센이 <가짜노동: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에서 제기한 아이디어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 시간 중에서 실제로 업무에 전념하는 시간은 절반도 되지 않고 나머지는 가짜노동이라는 것. 이를테면 비생산적인 지루한 회의, 형식적인 보고서 작성, 프로젝트 진행 등이 해당된다. 그래서 저자들은 실제 업무를 제외한 노동의 일부를 휴가 기간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만약 하루 8시간을 매일 빡빡하게 '진짜 노동'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야말로 집중력이 저하되어 생산성도 떨어질 것이다. 육체노동도 힘들지만, 정신노동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뇌도 쉬어야 한다. 쉼 없는 육체노동은 산재 사고로 나타나고, 쉼 없는 정신노동은 마음을 상하게 만든다. 마음이 상한다는 것은 뇌의 정보처리 활동에 이상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집중력과 함께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개인은 피폐해질 것이다. 주 4일제 근무는 정치권에서도 간헐적으로 제기되는 사안이니만큼 논의해볼 만하다.
한편 책 13장의 '잘못된 ADHD 진단 - 유전자 탓을 하는 동안 우리 아이에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과학적 사실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를 집중력 상실의 보편적인 현상 중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이 책의 주제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관건은 이게 유전자의 영향이냐 환경의 영향이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유전자의 영향을 간과하면서 주로 환경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각성제 처방 대신 환경을 바꿈으로써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뇌 발달에 필요한 영양소는 부족하고, 집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설탕과 식용색소가 가득한 식단", 스트레스가 극심한 시험 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ADHD 증상은, 더 이른 나이에 나타났음에도 방치하다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문제가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된 사안이다.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선천적 유전자일까, 후천적 환경일까? 경험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사회과학이 대세를 형성하던 때에는 환경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인간게놈 연구가 결실을 보고 뇌 과학이 발달한 이후로는 유전자의 역할이 부각되었고, 지금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ADHD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이 역시 1차적으로 유전자의 영향이며 후천적으로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본다. 저자는 사회과학과 정치과학을 전공한 것으로 소개되었는데, 책에선 주로 경험주의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 하리는 결론 부분에서 집중력 위기의 수많은 원인 뒤에 가려진 사회체제의 원인으로 성장지상주의의 자본주의를 지적했다. 그래서 경제성장의 대안으로 안정상태 경제(steady-state economy)를 제안했다. 기후위기도 집중력 위기를 해결할 때라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기후위기와 직결된다. 확대 재생산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수정할 수 있을까?
저자는 8장에서 주장한 것처럼 집중력 회복을 위해서는 개인의 각성과 실천을 배척하면서 집단행동을 조직하자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개인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얄팍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들 각자의 노력과 집단행동 중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인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개인들을 상대로 한 교육과 동기부여가 선행되거나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빚어내는 것이다(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 이 유명한 말을 현대과학을 반영해 수정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인간의 모든 행동은 뇌의 작동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