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이 있는 교실에서 특정 학생에게 정서적·인격적으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은 '공개된 대화'일까, 아닐까? 이것을 부모가 몰래 녹음하면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있을까, 없을까?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짐승 같은 아이" 등 발언을 해 정서적 학대 혐의로 1심과 2심(항소심)에서 유죄를 받은 교사의 사건이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됐다. 부모가 자녀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사의 발언을 몰래 녹음했는데, 대법원은 "증거능력이 없다"면서 2심(파기환송심)에서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초등학교 교사의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사건에서 벌금 500만 원의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부모가 교사 발언 몰래 녹음, 증거능력 있을까?
2018년 3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 3학년 7반 담임교사였던 A씨는 교실에서 전학생에게 "이 인간아", "1·2학년 제대로 나온 거 맞냐"라고 말했다. 피해 학생의 부모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자녀 가방에 녹음기를 넣었다.
이 녹음기에는 A씨가 그해 3~5월 피해 학생에게 한 발언이 고스란히 녹음됐다. A씨는 "인간은 인간인데 짐승 같은 인간이지", "바보 짓하는 걸 자랑으로 알아요", "(피해 학생) 머리 뚜껑 한번 열어보고 싶어. 뇌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냐", "헛소리할 것 같은데, 뭔지도 모르고 손드는 거야, 저 바보가", "빨리 읽어 인간아, 쟤가 맛이 갔어", "똥으로 밥을 비벼 먹어도 (피해 학생을) 쳐다보지 마" 등의 말을 했다.
A씨는 정서적 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2019년 3월 서울동부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후 서울동부지방법원 2심(항소심) 과정에서 녹취파일의 증거능력 유무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부모가 교사의 발언을 몰래 녹음한 것이 '누구든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14조 1항을 위반해 얻은 위법수집증거가 아니냐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2020년 1월 판결을 선고하면서,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 이유는 교사가 초등학교 수업 중에 교실에서 한 발언은 '공개되지 아니한 대화'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어 "학대행위에 관하여 의심할만한 정황이 있어 피해자의 부모가 상황을 파악하여 피고인의 학대행위 방지를 위하여 녹음에 이르게 된 것으로서, 녹음자(부모)와 대화자(자녀)를 동일시할 정도로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다"라고 판시했다. 또한 "피해자가 초등학교 3학년의 학생으로서 표현력이 제한되어 있고, 이 사건과 같이 말로 이루어지는 학대 범행의 특성상 녹음을 하는 외에는 피고인의 범죄행위를 밝혀내고 피해자의 법익을 방어하기 위한 유효·적절한 수단을 강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아동학대범죄를 신고할 의무자인 점, 아동학대범죄가 가져오는 사회적 해악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행위는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하여 그에 관한 증거를 수집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16차례의 발언 중 피해 학생에게 하지 않은 2차례를 제외하고 14차례의 발언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1심을 파기하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로 "피고인이 담임교사로서 피해자를 지도하고 보호하여야 할 위치에 있는 점에 비추어 죄질이 가볍지 않은 점,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는 등 피해자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언급했다.
2심 "증거능력 있다" → 대법원 "증거능력 없다"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과 다른 판단을 내렸다. 상고심에서도 녹취파일의 증거능력 유무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발언은 특정된 30명의 학생들에게만 공개되었을 뿐,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대화자 내지 청취자가 다수였다는 사정만으로 '공개된 대화'로 평가할 수는 없다"면서 "피해아동의 부모는 피고인의 수업시간 중 발언의 상대방, 즉 대화에 원래부터 참여한 당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결국 "이 사건 녹음파일 등은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하여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라면서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러한 녹음파일 등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원칙에 관한 예외가 인정된 바 없다"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측 "증거능력 판단일 뿐... 파기환송심에서도 '유죄' 가능성 존재"
이번 판결에 대해 "해당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오해를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는 것으로, 유무죄에 관해 종국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다"라는 게 대법원 설명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녹취파일이 이 사건의 중요한 증거인 것은 맞겠지만, 피해 학생의 증언이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이 있을 수 있다"면서 "파기환송받은 법원에서 다시 심리해 유죄가 될 여지도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