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오르는 이유는 나의 가치가 충분히 보상받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충분히 보상받는 것은 산의 경치와 오르는 사람들, 그 결들의 따뜻한 기운, 이방인을 반기는 산속의 것들, 때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산을 오르게 한다.
산에 오르면 등산객을 만나고 오롯이 정상을 향한 나의 한계를 만나기도 한다.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산의 매력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산은 그냥 내어 주지 않는다. 그 한계에 온전히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그 모든 감정의 기억들을 던져놓고 산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한 물음의 답을 찾아가는 것도 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 고마운 일이다.
작년에 영남알프스 6개 산을 완봉했었다. 올해는 8개 산을 완봉 위해 1월부터 올랐다. 영남알프스의 관문, 간월재를 시작으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으로 연결된 능선 따라 산행을 재촉했다. 하루에 세 산을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무리하면 다리에 무리가 갈 것이다. 필자는 간월산 ~ 신불산까지 가고 이틀 후에 영축산으로 향한 등산코스로 정했다.
산에 오르기 전 준비할 것이 있었다. 말레시아 원두커피 리베리카를 갈아 종이필터에 내리고 보온병에 담았다. 내가 내린 커피를 산에서 맛있는 느낌은 다르다. 커피와 에이스 과자, 김밥과 물, 수건 등을 챙겼다. 가는 길이 험난하지만 오르기만 하면 잘 왔다고 속 마음이 먼저 반길 것 같았다.
영남알프스 관문인 간월재를 가기 위해 울산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주암마을 배내정상 정류장 인근 배내 1 공영주차장에 주차했다. 집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아직도 초조했다. 가보지 않는 첫 산에 대한 기대치보다 무사히 도착하고 싶은 나만의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들머리인 사슴농장에서 출발하는 배내골 임도는 성인기준 1시간 30분 소요된다. 완만한 길이지만 보이지 않는 산 능선을 오르다 보면 지칠 때가 많았다. 쉬었다 갈 수 있는 벤치가 잠시 숨을 돌리게 했다. 간월재에 다다르면 그야말로 올라온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신불산과 간월산 사이에 잘록한 모양새로 자리 잡은 간월재는 배내골과 밀양 방면에서 언양 장터로 가기 위해 이 고갯길을 넘었다고 한다. 휴게소와 대피소가 있고 억새정원의 카페온 것처럼 색다른 겨울풍경을 선사한다. 거센 겨울바람을 맞으면 챙겨 온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인다. 천상의 억새정원에서 마시는 커피 맛이 달고 그윽함이 입 속을 채웠다.
간월재는 간월산(1083m)과 신불산(1159m)을 잇는 능선이다. 간월재를 기점 삼아 두 봉우리에 올랐다. 간월산까지는 30분 정도 걸리고 신불산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필자는 간월산에 먼저 들렀고 신불산으로 이동했다.
아이작 뉴턴의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라고 말했듯이 신불산 정상에서 본 탁 트인 영남 알프스조망은 넓은 세상을 가질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원점회귀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겨울 등산은 하산이 중요하다. 날씨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니.
이틀 뒤 다시 영축산으로 향했다. 이번 산행은 양산시 하북면 지산마을버스 종점인 마을주차장에서 출발했다. 지산 만남의 광장 구판장을 지나면 오솔길로 접어든다. 임도보다 산기슭으로 갔다. 바위길로 좁고 급경사로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오르고 오른 곳에 취서산장이 나온다. 정상까지 0.7km다. 가파란 능선을 오르다 보니 눈이 쌓였다. 하얀 눈을 볼 수 있는 것만 이라도 행운이었다. 해발 1081m의 영축산은 인도의 영축산과 산세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세가 멋스럽기 그지없다.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완봉하면서 영남알프스의 능선 따라 산에 준 느긋함이 온 세상을 가질 듯해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이다. 다시 산행길을 나설 때 또 다른 인연과 나에게 또 다른 기운을 심어줄 산들을 생각하면 설레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