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고치는 것이 아닌, 사회주의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
노동당 이백윤(47) 대표는 체제전환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자본주의 체제가 시작된 지 300여 년간 불평등, 기후위기 등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났지만, 해결되지 못하고 있잖아요. 이제는 자본주의 대신 사회 구조의 판을 바꿔 '사회주의'를 제시할 수 있는 상황에 왔다고 생각해요."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 노동당 후보로 나선 이백윤 대표는 유세 당시, '계속 이렇게 살 거야? 바꾸고 싶다면 사회주의!'란 슬로건과 '삼성전자 국유화'라는 이색 공약으로 주목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9월 노동당 대표직에 당선됐다. 그는 당 대표로서 자신의 임무를 이렇게 정의한다.
"노동당이 말하는 사회주의를 국민들의 선택지 중에 하나로 올려놓는 것, 노동당이 국민들에게 대안세력으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에요."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주의'라고 하면 독재 또는 북한, 중국 등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 대표는 우리 사회에 알려진 사회주의는 '변질된 것'으로, 노동당이 말하는 사회주의는 '다른 것'이라고 한다. 노동당이 말하는 '진짜 사회주의'는 무엇일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난 12월 15일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이백윤 노동당 대표를 만났다.
"사회주의, 역사적으로 변질...이제는 '진짜 사회주의'를 제시해야할 때"
국내 진보정당 중 하나인 노동당은 체제전환, 사회주의를 전적으로 내세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알려진 원로 좌파 지식인 홍세화(전 진보신당 대표) 씨가 노동당 고문을 맡고 있고, 대표적 좌파 논객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등이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노동당 하면 이름이 유사한 북한의 '조선로동당'을 떠올리지만, 노동당은 북한도, 친북 성향과도 연관이 없다. 노동당의 전신인 진보신당은 옛 민주노동당의 평등파(민중민주·PD) 계열이 친북 성향 자주파(민족해방·NL) 계열과 결별한 뒤, 창당한 것이다. 노동당은 진보신당 때부터 통합, 재창당 등의 다사다난한 길을 지나왔다.
노동당은 지난해 사회변혁노동자당(아래 변혁당)과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사회주의 대중정당을 만드는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무엇일까?
"누가 저한테 '사회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물건과 사회적 서비스를 국가와 사회가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답해요. 즉, 의식주부터 보건의료, 교육, 육아, 돌봄 등을 시장이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 공동체가 직접 제공하는 것이죠. 또 서비스를 받는 국민과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협의해서 필요한 제도를 만들고 운영해 나가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노동당이 말하는 사회주의에선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기업, 공장 등 생산수단을 특정 개인이 아닌, 사회가 소유한다. 사회주의의 '사회'는 노동자, 서민, 소수자 등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 모든 사람이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민주적 토론을 통해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노동자가 회사 운영·관리에 참여한다. 지금과 같이 시장 안에서 경쟁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게 아닌, 공립학교처럼 공공의 형태로 공동체 또는 사회가 운영한다.
인류사에서 이러한 사회주의를 처음 실현하려고 했던 곳은 러시아 혁명(1917년)을 통해 탄생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소련)'이었다. 하지만 1940년대 스탈린이 집권한 이후, 소련의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로 변질됐다. 스탈린은 당이 국가를 통제하고, 경제와 국민의 일상을 통제하는 공포 정치를 했다.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하고 세습을 당연시하는 북한 역시 이름만 사회주의를 내걸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반공 이데올로기까지 더해져 시민들이 사회주의를 제대로 논의할 기회가 없었다.
"현재 시민들이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자신이 주어진 경험을 기반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어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그 이외의 다른 시스템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런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도 노동당의 역할이죠."
다른 진보정당과 달리, 노동당은 각종 사회 문제의 원인을 '자본주의 체제'라고 지목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기업, 공장 등 생산수단을 개인이 사적 소유할 수 있고, 이윤을 극대화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 핵심적인 특징이다. 이에 따라 인간, 생명, 자연보다 이윤이 우선시 된다. 여기에 신자유주의가 결합해 민간 기업의 규제 완화, 공공 부문 민영화, 사회복지 축소 등이 심화됐다. 그 결과, 개개인은 무한경쟁, 각자도생에 내몰렸다. 불안정한 일자리, 불평등, 양극화 문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고 있다. 노동당은 진보 세력들이 자본주의 내에서 개혁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여전히 서민과 노동자의 삶이 달라지지 않은 점을 짚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들의 저항을 탄압하죠. 특히 신자유주의로 인해 파견·하청 등 불안정 노동자들은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이들은 생활을 충분히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임금도 지급되지 않는 상황에 극단적으로 내몰려지고 있죠. 그래서 노동당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직접 투쟁을 통해 세력화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정치적인 요구로 드러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노동당은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의 위기를 막을 수 없다고 봤다.
"진보정당 간에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이 있는데, 노동당은 기후위기의 일차적인 책임 집단을 '기업'으로 봐요. 기후위기는 기업이 이윤을 더 많이 내기 위해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들어낸 결과이니까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잉 생산, 과잉 소비를 지탱하고 있는 자본주의 소비 구조도 바꿔야겠죠."
노동당은 한국 사회의 체제전환을 위해 '15대 핵심 공약' 정책을 세웠다. 이는 ▲ 파견업 전면 금지 및 특수고용직과 기간제법 폐지 ▲ '지금 즉시 탈핵' 및 2050 탄소제로를 위한 사업정지특별조치법 제정 ▲지분으로 매년 2%씩 내는 토지보유세 신설 등이다. 그 중 '5대 공공 무상정책'으로 ▲국가공공무상주택 1000만 호 공급 ▲ 의료인 양성 국가책임제 및 무상의료 ▲ 국공립대학 평준화 및 무상교육 ▲ 버스·지하철·철도 등 대중교통 완전 공영화 및 무상교통 ▲ 통신 기업 공영화 및 무상통신 등도 내걸고 있다.
현재 노동당은 당원이었던 택시 노동자 고 방영환(55)씨의 투쟁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공공운수노조 택시 지부 해성운수 분회장이었다. 방씨는 해성운수(동훈그룹 계열사)에 임금 체불 등을 항의하고 택시 노동자의 '완전 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는 시위 중 분신해 숨졌다. 이에 노동당과 공공운수노조의 '방영환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는 ▲동훈그룹의 공식 사과 및 처벌 촉구 ▲전·월급제 시행 ▲체불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중과 노동자의 삶에 더 가까워지기"
노동당은 조직을 안팎으로 재정비하는 중이다. 노동자정치행동, 문화예술위원회, 생태평화위원회, 기본소득정치연대, 국제평화통일위원회, 장애위원회, 기후정의위원회에서 각각의 의제 기반 사회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여성·성소수자·청년 청소년 등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당원들이 새로운 모임을 만들고, 조직화하고 있다.
"당내에 여러 운동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 많이 없었어요. 노동당과 변혁 당이 통합하고 난 이후, 기후, 성소수자, 여성, 청소년, 청년 등 다양한 의제 운동을 하는 당원들을 조직화하고 있어요."
노동당은 더 나아가 새해부터 '민중과 노동자의 삶에 더 가까워지기'에 나선다. 지역 정치학교, 사회주의 관련 콘텐츠, 정당법 개정 운동을 벌인다.
"당장 새해 연초부터는 2년 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6년 6월)를 준비하면서 지역 정치학교를 열고, 사회주의 지역 정치 운동을 창출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해보려고 해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당이 지역에서 '풀뿌리 정치'를 해나가는 것이죠. 지역민들과 함께 사회주의적인 정치 의제를 갖고, 이를 지역 운동으로 뿌리내리려고 해요. 그 결과물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의 유의미한 '교두보' 형성하는 것이고요. 사회주의가 대중들에게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구상하고 있어요."
노동당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계획은 무엇일까. 노동당 소속인 이장우(56)씨가 울산광역시(울산) 동구 출마에 나선 가운데, 지난달 12일 예비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이씨는 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본부장이자 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이다. 지난 25년 동안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반대·하청노동자 처우개선, 염포산 터널 무료화, 비정규노동자 노동조합 설립 등을 추진했다. 울산대학교병원 노동조합 지부장, 전국의료연대 노조위원장, 울산건강연대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총선은 양당 통합(노동당과 변혁당)으로 당의 조직 정비 과정이 있었다 보니, 힘 있게 치러낼 만큼 준비 상태가 충분치 않아요. 하지만 출마한 지역구에서 노동당과 같은 급진 정당도 지역민들에게 높은 지지율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고자 해요.
또 총선 시기에 맞춰 노동당은 국민이 '대통령 소환권'과 '국회 해산권'을 갖자는 정치 캠페인을 펼쳐보려고 해요. 국민이 무능한 국회를 해산하거나 국회를 새롭게 다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권한이 없잖아요. '국민주권 시대'라고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어도 국민이 직접적으로는 탄핵을 못 하잖아요. 박근혜 퇴진을 요구할 때, 연인원 2천여만 명이 광화문 촛불 집회에 나왔지만, 결국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승인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지난해 12월 28일 이백윤 대표는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윤석열 심판, 한국 사회 진보정치의 새로운 도약 진보 4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공동 기자회견에서 진보정치의 이름으로 국민이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국회해산법' 운동 등을 제안했다.
노동당의 이런 노력의 목표는 딱 하나. 이 땅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가능할까. 이백윤 대표는 말했다.
"'어제까지는 자본주의였다가, 오늘부터 사회주의'식으로 천지개벽이 일어나진 않을 것으로 생각해요. 수십 년, 수백 년이 걸리는 과정일 수도 있죠. 다만 저는 인간 평등은 물론, '종차별'과 자연을 착취하지 않는 방향으로 혁신하는 과정도 '사회주의'라고 생각해요."